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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의 영화비평] 인간의 본질이 감정에 있다

픽사가 공들여 세운 상상의 나라에서

<인사이드 아웃>

11살 라일리의 전전두엽 컨트롤타워 근무자는 논리•합리•윤리의 이성 3형제가 아니다. 지식•지성•지혜의 지능 3종 세트도 아니다. ‘기쁨’(joy), ‘슬픔’(sadness), ‘까칠’(disgust), ‘버럭’(anger), ‘소심’(fear)이라는 이름의 감정 5남매다. 성인인 라일리 부모의 뇌 속 통제본부도 이성이 아닌 감정이 제어장치를 책임지기는 마찬가지다. <인사이드 아웃>의 이와 같은 설정이 나오기까지는, 최근 30여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신경과학, 진화학 등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의 공이 컸을 터다. 인류가 이성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인간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개입하는지 알게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간 이성이 애써 내린 판단이라고 알아온 것들도 이기적 유전자들이 본성에 충실한 결과였다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는 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픽사는, 있지도 않은 공포를 조장해 콩고물을 취하려는 에너지 기업과 여기에 공생하는 정치권력을 대놓고 지적한 <몬스터 주식회사>(2001) 이후, 가장 시의성 짙은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소녀의 배후에 하나의 소우주를 건설하고 그 안에 영역별 직업 근무자들을 배치해 이 우주를 유지•운영시킨다는 점에서 <인사이드 아웃>은 <몬스터 주식회사>의 후속편 격이기도 하다.

더불어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성인 관객의 감성을 가장 가까이서 건드리는 작품으로 점찍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이를 둔 부모 관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우중충한 집으로 이사 간 첫날, 전에 없이 뇌 속이 시끄러운 와중에 엄마 아빠의 심정을 2할쯤 헤아린 라일리가 종이 뭉치로 하키를 시작할 때부터, 뭇 부모들의 감정 중추는 눈물샘 버튼에 손을 얹게 된다. 영화가 끝날 무렵 딸의 하키 경기에 워리어 분장을 하고 응원석에 앉은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는 관객은, 한 차례 성장통을 의젓하게 이겨낸 라일리를 위해 며칠 전부터 떨었을 부모의 뇌 속 호들갑을 생각하며 함께 눈물 흘리게 된다.

잠시 <트루먼 쇼>(1998)를 떠올려보자. 두 영화의 관객은 비슷한 종류의 심정으로 트루먼-라일리를 응원한다. 신생아 때부터 성장과정을 쫓아가며 이입해온 까닭도 있지만, 등장인물이 인지하기 어려운 일상을 전지적 시점에서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영화의 스튜디오식 구조 때문이다. 그러고는 트루먼-라일리의 삶에 조력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동안 주인공이 모르는 몰래카메라가 돌아간다. <트루먼 쇼>의 카메라가 상업방송을 위한 거대한 음모인 데 비해 <인사이드 아웃>의 뇌 속 카메라는 오직 라일리를 지지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른을 위한 우화로서 <인사이드 아웃>은 이렇게, 어린 시절 잃어버린 세계로 관객을 이끌기 위한 프리 프로덕션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여 세운 상상의 나라다.

감정의 다른 이름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5남매는 머릿속 제어판의 성실한 운용자들이지만 ‘솔직함 97%’나 ‘유머지수 85%’ 하는 식으로 뇌를 세팅할 수는 없다. 본부 밖 드넓은 우주, 그러니까 라일리의 뇌가 적절히 작동하는지 지켜보고 도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스스로도 감정에 지배받는 존재로 자기 캐릭터에 쉽게 도취되는 인간적 결함을 안고 산다. 수십억개의 뉴런이 나노 기술에 의해 모인 듯한 외양을 한 감정 5남매는, 라일리의 작업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고 이중 어딘가에서 껌 광고 영상이 튀어나오며 생각기차가 뇌를 가로지르는 데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각자가 그저 자기 역할을 수행하면 되는 하나의 생태계로서 <인사이드 아웃>이 묘사하는 뇌는 10살을 넘긴 소녀의 자아가 지나치게 무시돼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뇌과학자들은 아마도 기억 구슬이 선반 형태로 쌓여 저장되는 설계가 우선 거슬리겠지만.) 피트 닥터 감독은 그러나, 도리 없는 테스토스테론의 포로인 라일리의 아빠가 딸의 이상행동과 마주했을 때 ‘군사적 대응’을 고민 없이 선택하는 등 성인의 의사결정 역시 별다르지 않음을 강조함으로써 근거를 받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은 감정적 결정에 좌우되는 동물이다. 감정을 뜻하는 영단어 ‘emotion’은 ‘밖’을 의미하는 ‘e’에 ‘motion’(움직임)이 합쳐진 말이다. 개체의 외부를 향한 움직임은 다름 아닌 식물과 구분되는 동물의 본질이며, 이로 인해 진화 과정에서 뇌가 생겨나고 뇌가 만들어낸 감정은 다시 개체의 속성을 규정한다. 인간의 본질이 감정에 있다는 작품의 세계관은 안에서 밖을 향한다는 의미의 제목, 즉 감정의 다른 이름인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에 고스란히 담겼다. 생명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모자라 끝내 캐릭터들의 정체성까지 찾아내며 활유법의 대가를 이뤄온 픽사의 이력으로 보자면, 이번 작품은 화룡점정인 셈이다.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감정 5남매 중 까칠이와 소심이는 보다 원초적인 생존과 관계가 깊고,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적절히 느낀 개체가 자연선택돼온 과정) 기쁨이와 슬픔이, 버럭이는 무리를 이루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동물의 특성에 좀더 가깝다. 슬픔이의 공감 능력과 기쁨이의 긍정 에너지는 이미 여러 글에서 충분한 언급이 이뤄졌으므로 말을 더 얹을 필요는 없겠다. ‘기쁜 김에’나 ‘슬픈 김에’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지만 ‘홧김에’라는 관용적 어휘가 있는 것만으로 버럭이가 라일리의 가출을 감행토록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기쁨이가 일을 추진하고 결정적 순간에 슬픔이가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역할 분담을 보고 있자면, 이를 이용해 요즘 유행하는 감정 사용 설명서를 쓰는 일도 가능할 듯싶다.

생각의 동력이자 창의의 원천인 상상력

이제 ‘빙봉’을 얘기할 차례다. 신난다. 빙봉은 솜사탕 몸체에 코끼리, 고양이, 돌고래 등이 합쳐진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다. 울 때는 사탕 눈물을 흘리는데 캐러멜 눈물이 떨어지면 주변에 권하기를 잊지 않는 정 많은 친구다. 이런 사랑스러움이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니, 이 소녀를 응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린 시절 형제 없는 라일리를 혼자놀기의 달인으로 만들어준 빙봉은, 이제 라일리가 잘 불러주지 않는 까닭에 기억저장소 골목 어귀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처지다. 빙봉의 배낭은 용적 제한이 없어서 라일리의 기억과 상상의 장난감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을뿐더러 라일리를 위해 목숨 바칠 남자친구도 수천명은 넣을 수 있다. 상상력은 이토록 힘이 세다. 길을 잃은 기쁨이와 슬픔이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각기차를 태워주는 것도 빙봉이고, 아직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는 라일리의 생각 상자를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것도 빙봉이다. 결국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기쁨이와 슬픔이를 제자리로 보내주는 빙봉은, 상상이 유년 시절의 놀이 친구일 뿐만 아니라 생각의 동력이자 창의의 원천임을 상기시키는 반가운 캐릭터다. 유년의 상상은 사라지지만 그렇게 성장의 연료가 된다. 빙봉은 라일리의 뇌에서 삭제됐지만 기쁨이와 슬픔이의 신경세포 속에 남아 우리에게 손짓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 혹은 로봇 모양을 하고 있었을 텐데, 도무지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 내 마음속 빙봉은 어쩌다 스스로를 삭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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