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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영화비평] 보수적이고 완벽한 자기관리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이 실패하고 J. J. 에이브럼스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성공한 이유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프리퀄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3부작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이야기도 있고 자기만의 아름다움도 있는 작품들이다. 다들 죽이고 싶어 하는 자자 빙크스도 굳이 싫어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 캐릭터에 반영된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매력 없고 짜증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집중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당연시된다면 우리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헤이든 크리스텐슨? 로렌스 올리비에의 재림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구박은 좀 심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프리퀄을 옹호하려고 해도 이 세 영화가 그렇게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J. J. 에이브럼즈의 속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가 이들 세편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스타워즈>스러운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크리에이터인 조지 루카스는 실패하고 에이브럼스는 성공한 부분은 어디인가? 한번 머리를 굴려보자.

(1)작가적 능력

뛰어난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기술적으로 뛰어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상상력과 대담함, 추진력이 작가적 능력보다 우선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고 세계가 커지면 결국 이야기와 대사를 통제하는 작가적 능력이 필수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루카스는 로렌스 캐스단과 같은 유능한 파트너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프리퀄에서 그는 거의 혼자였다. 프랜차이즈 부활에 경험이 만만치 않은 작가인 에이브럼스가 캐스단을 파트너로 불러들여 클래식 3부작의 분위기를 살린 속편을 만들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루카스의 만용이 지나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2)프리퀄 vs. 속편

처음부터 프리퀄이란 건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오리지널 텍스트에서 프리퀄 파트를 이야기하지 않은 건 처음부터 그게 별 가치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프리퀄이란 이미 완성된 캐릭터와 스토리를 향해 수렴되는 형식이기 때문에 아주 노련한 작가가 아닌 이상 통제하기가 어렵다. SF의 경우 과학의 반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스타워즈>는 70년대의 과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90년대에 이 시리즈의 프리퀄을 만들면서 90년대의 상상력을 그대로 투영한다면 시리즈의 균형은 어떻게 될까.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균형을 잃는 건 당연하다. 에이브럼스는 여기서 훨씬 조심스럽다.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속편인 <깨어난 포스>는 타이 전투기와 밀레니엄 팔콘의 인터페이스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유혹도 피해간다. 그는 <스타워즈>가 복고적인 상상력에 바탕을 둔 SF라는 사실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3)세계 vs. 이야기

루카스의 가장 큰 실패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무게를 지나치게 믿었다는 것이다. 물론 <스타워즈>의 세계는 SF 장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이곳이 그렇게 설정의 밀도가 높거나 독창적인 곳인가? 오리지널 3부작의 인기가 과연 이 세계만이 가진 특유의 매력 때문이었나? 그렇지 않았다. <스타워즈>의 매력은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자체에 있었고 이것은 얼마든지 다른 세계에 이식될 수 있었다. 세계의 매력 역시 광선검이나 우주선처럼 주로 디자인적 특성이 더 강했다.

루카스에게 프리퀄은 그가 관리해왔던 확장우주와 함께 세계 만들기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다. 오리지널 3부작의 배경은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겼기 때문에 그럴싸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이 배경에 논리와 디테일을 더해 1편부터 6편까지가 자연스럽게 톱니처럼 맞물리는 기계처럼 되길 바란다.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이고 오리지널 3부작의 매력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에이브럼스는 이 배경을 무시해버린다. 확장우주는 사라졌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의 동료 캐스단도 에이브럼스와 마찬가지였다. 캐스단은 아직도 캐넌이 뭔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는데, 그런 태도야말로 <깨어난 포스>가 가진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몇 십년 동안 공장생산된 그 자질구레한 설정을 파는 건 덕후들에겐 재미있겠지만 작가에게 그딴 것들은 쥐약이다. 프랜차이즈의 속편이 나올수록 지루해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설정에는 수명이 있다. <깨어난 포스>에서 <스타워즈>스러움은 배경이 <스타워즈> 우주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이 영화의 <스타워즈>스러움은 <스타워즈>스러운 캐릭터들이 나오고 <스타워즈>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데에 있었다. 프리퀄의 요다를 보라. 생긴 거나 말투는 우리가 아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요다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람쥐처럼 날아다니며 두쿠 백작과 광선검 결투를 하고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워진 파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초록색 CG 캐릭터는 이야기의 논리에는 맞을지 몰라도 이상하고 낯설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완 맥그리거의 젊은 오비완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가 오리지널 시리즈의 오비완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나킨에 대해서는 그냥 말을 말기로 하자. 하지만 <깨어난 포스>를 보자. 일단 오랜만에 등장한 레아와 한 솔로를 보라. 딱 우리가 30여년 전에 떠나보냈던 그 캐릭터다. 배우가 같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레아와 한 솔로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단지 거기에 연륜이 들어갔을 뿐이다. 새로 등장한 레이(데이지 리들리), 핀(존 보예가), 포(오스카 아이작)와 같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말려들어간 모험은 어떤가? 우리가 <스타워즈>에서 기대하는 적당히 단순하고 신나고 유쾌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딱 그만큼 적당히 단순하고 신나고 유쾌하면서도 전작의 신화성을 잃지 않은 모험담이다. 신화를 이야기하는 대신 역사를 쓰려고 했던 프리퀄에서는 이중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논리가 캐릭터를 앞섰기 때문이다.

(4)시리즈의 무게

애당초 <스타워즈>는 그렇게까지 진지한 무언가가 아니다. 물론 영화사적 중요성은 크다. <스타워즈>의 우주를 자기 세계보다 더 깊이 알고 더 사랑하는 덕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시리즈는 70년대의 특정한 시기에 튀어나왔던 팝컬처의 산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재료이고 재미있는 장난감이다. <스타워즈>가 가장 훌륭할 때는 이 재료들이 적절한 기술을 통해 좋은 이야기에 수렴되었을 때다. 프리퀄의 문제점은 루카스가 이 재료를 과대평가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쓰려 했을 때부터 자명했다. 이전에 이미 이를 시도했던 아시모프에겐 심리역사학이라는 거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지만 루카스에겐 뭐가 있었던가? <플래시 고든>과 ‘칼과 마법사’ 판타지가 짬뽕이 되어 만들어진 놀이공원이었다. 다행히 에이브럼스의 야심은 이 놀이공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안에 머문다. 은하문명의 거대한 역사도 없고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고찰도 없다.

단지 지금까지 언급한 속편의 상대적 장점들은 곧 잠재적 단점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프리퀄에서 루카스는 자신이 씹을 수 없을 만큼을 씹었다. 그가 갖고 있던 기술, 소재, 주제는 모두 미완성이거나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그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에이브럼스는 딱 자신과 <스타워즈> 팬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그 결과물은 매력적이고 친근하고 생생하지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오리지널 3부작의 매력이 그 도전정신에 있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깨어난 포스>의 보수적이고 완벽한 자기관리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새 시리즈만의 비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의 그림자를 떼어내고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다음 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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