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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경의 영화비평] 처절하게 아름다운 갈등

자객의 임무 앞에서 망설이는 섭은낭의 감정을 헤아려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객 섭은낭>

스승 가신공주의 명을 받고 고향 위박으로 돌아온 은낭이 어머니 섭전씨와 찻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섭전씨는 가신공주에게 돌려받은 옥결을 은낭에게 전해주며 황실에서 위박으로 시집온 계안의 어머니, 가성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나면 건너편에 앉아 있던 은낭이 옥결을 쌌던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숨죽여 울고 있다. 세간의 평처럼 ‘어느 장면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영화에서 이상하게도 은낭이 우는 이 한 장면이 영화가 끝난 한참 뒤에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영화엔 세번의 플래시백이 등장한다. 고향집에 돌아온 은낭을 위해 하녀들이 목욕물을 준비하는 장면이 지나가면 (갑자기) 봄볕이 내려앉은 들판에 긴 행렬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 보인다. 바로 이어지는 욕탕 안 은낭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이것이 은낭의 플래시백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익스트림 롱숏으로 물러앉은 카메라 탓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다. 은낭이 곧이어 불러온 기억은 칠현금을 연주하며 푸른 난조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가성공주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1.33:1의 화면 사이즈로 진행되던 영화가 이 순간 (허우샤오시엔의 말을 빌리자면 가로로 긴 칠현금을 화면에 담기 위해) 1.85:1로 확장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이 장면이 영화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강세’라는 점이다. 두개의 연속된 플래시백에서 익스트림 롱숏의 화면이 확장된 화면의 풀숏으로 넘어오는 순간, 첫 번째 기억 속 희미한 인물들 사이에 있던 가성공주를 ‘줌인’(zoom in)해서 본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지 은낭은 다음날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지어놓은 고운 옷을 입고서도 지난 밤 떠올린 가성공주의 모습을 다시 생각한다. 은낭에게 옥결을 준 가성공주는 고향에 돌아온 은낭이 유일하게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은낭의 옛 정혼자(이자 사촌)인 계안을 죽이라는 스승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영화의 관심사는 은낭이 과연 자신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계안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고, 위박에서 은낭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사람은 당연히 (가성공주가 아닌) 계안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은낭이 계안을 처음 찾아간 장면을 떠올려보자. 호희의 방의 인상적인 시퀀스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은낭은 영화에서 계안이 등장하는 첫 장면, 그러니까 그가 신하들과 회의를 하는 장면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신하들의 중심에 계안이 앉아 있다. 그런데 계안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숏에서 그가 어린 아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영화의 흑백 프롤로그에서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허우샤오시엔은 영화 타이틀이 뜨기 전, 그러니까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흑백의 프롤로그를 덧붙여놓았는데, 이것은 ‘은낭’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영화에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나침반’처럼 작동한다. 여기에서 은낭은 스승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들과 있던 남자를 죽이지 못했다. 말하자면 영화는 은낭이 계안을 찾아오는 첫 장면에서 프롤로그와 동일하게 계안 옆에 아들을 앉혀놓음으로써 은낭이 결국 계안을 죽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갑론을박하는 좌우의 신하들을 천천히 훑던 카메라는 계안을 거쳐 화면 왼쪽 끝에 앉은 은낭의 아버지 섭우후의 모습에서 멈추어 선다. 숏이 바뀌면 이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은낭이 2층 난간에 앉아 있다. 아버지가 된 계안의 모습은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번 더 확인하듯 계안이 아들과 장난치며 노는 장면을 바로 그다음에 배치해놓는다. 결국 은낭은 계안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라고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 오버(Game Over). 하지만 영화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명령을 어기고 존재를 드러내다

자신이 계안을 죽이지 못할 것임을 안 은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다시 계안의 궁궐에 찾아온다. 그런데 이번에 은낭이 찾아온 것은 (계안이 아니라) 계안의 아이들이다. 아이들 앞에 나타난 은낭을 계안의 본처 전원씨도 목격한다. 그녀는 계안에게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은낭을 보았노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앞에서 본 것처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은낭이 이 순간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침입한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은낭은 심지어 호위병들과 소란스러운 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 다시 한번 프롤로그로 돌아가보자. 아이와 놀던 남자를 숨어 지켜보던 은낭은 남자의 가족이 모두 잠들자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잠에서 깬 남자를 한번 쳐다보고 뒤돌아나온다. ‘몰래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자객(刺客)이 자신의 모습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건 반대로 그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프롤로그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자객’의 사전적인 의미는 ‘몰래 사람을 죽이는 자’다). 아이 때문에 남자를 죽이지 못한 은낭을 향해 가신공주는 “다음번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자가 가장 아끼는 것을 먼저 제거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니까 은낭은 지금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계안이 애지중지 아끼며 놀아주던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아이들이 귀여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전원씨의 대사,“하지만 (은낭에게) 악의는 없어 보였어요”). 스승의 두 가지 명령(계안을 죽이기 위해 계안이 아끼는 것을 먼저 제거하고, 계안을 죽여라)을 은낭은 모두 완수하지 못한다. 그럼 이제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은낭은 또다시 계안을 찾아온다.

<자객 섭은낭>

계안이 둘째 부인 호희와 있는 방에 은낭이 찾아온 이 장면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커튼 뒤로 둘을 바라보던 은낭이 탁자에 자신의 옥결을 내려놓는다(커튼 신1). 그리고 커튼을 걷어 계안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놀란 계안이 도망가는 은낭을 쫓아 칼싸움을 벌이지만 우리는 은낭에게 (더이상) 계안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발에 가까운 이 행동의 목적은 간단하다. 계안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다. 자신의 얼굴을 계안에게 보여준 다음 은낭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영화는 관객마저 따돌리려는 듯 호위병들이 사라진 은낭을 쫓기 위해 궁궐 밖으로 출동하는 장면을 넣어놓았지만, 화면이 바뀌면 은낭은 다시 호희의 방으로 돌아와 커튼 뒤 같은 자리에 숨어 있다(커튼 신2). 호희가 탁자 위에서 발견한 옥결을 계안에게 건네주자 그제야 계안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은낭임을 깨닫는다. “이제야 알았어. 은낭이었어. 은낭이 자신을 알아보게 하고 내 목숨을 거두어가려는 것이지.” 하지만 이 말의 절반은 맞고(알아보게 하는 것),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목숨을 거두어가는 것). 은낭이 계안을 다시 찾아온 까닭은 옥결을 전해 자신이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은낭’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커튼 신1), 계안이 그 옥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커튼 신2)이다. 이때 ‘옥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허우샤오시엔의 영화로선 거의 이례적으로 옥결이 클로즈업으로 두번이나 등장한다).

섭전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것은 가성공주가 장안에서 위박으로 시집올 때 오빠인 선황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위박이 황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결단, 決斷)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옥결’(玉)은 고리의 한 부분이 트여 있는 생김새 때문에 ‘결단’(決斷)과 동시에 인연을 끊는다는 ‘절연’(絶緣)의 의미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가성공주가 받은 이 옥결은 황실(선황)과 나눈 약속에 대한 ‘다짐’의 증표이자 동시에 가족-고향과의 ‘절연’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성공주는 이 한쌍의 옥결을 ‘약속’의 의미로 어린 계안과 은낭에게 나누어주었지만, 계안이 아버지의 명에 따라 전원씨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이 ‘옥결’은 둘의 ‘끊어진 인연’(絶緣)이 되었다. 은낭은 계안에게 옥결을 전해줌으로써 계안과의 인연이 이제 완전히 끝났음을 알린다. 하지만 계안은 옥결을 보고 오히려 은낭과 맺었던 (이루어지지 못한) 각별한 약속을 떠올린다.

죽임 대신 전하는 잉태의 소식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은낭의 이야기를 듣던 호희가 “은낭이 안됐어요”라고 말한다. 강제로 집을 떠나 자객으로 길러져야 했던 은낭의 마음을 이해해준 사람은 이제껏 그녀가 고향에 와 유일하게 떠올렸던 가성공주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성공주는 세상을 떠나고 은낭은 거울 앞에서 춤을 추던 ‘난조’처럼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은낭 앞에 자신의 ‘눈물’을 이해해주는 ‘벗’, 호희가 나타난 것이다. 이때 은낭과 호희 사이에 생겨난 ‘공감대’는 가성공주를 향한 은낭의 그리움과 정확히 공명한다. 둘째 부인이었던 가성공주의 자리 역시 호희에 의해 반복된다. 은낭과 호희(그리고 가성공주) 사이의 이와 같은 ‘감정의 연대’가 없었다면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은낭이 계안 없이 혼자 잠든 호희를 찾아온 장면은 은낭의 이런 마음에 대한 확인과도 같은 것이다. 호희에 대한 마음 때문에 은낭은 위박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러다 전원씨가 두 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하나는 지방으로 쫓겨가는 은낭의 이모부 전흥과 그를 호위하는 섭우후를 죽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임신한 호희를 ‘처리’하는 것이다. 죽음 직전까지 몰린 전흥 일행 앞에 은낭이 (갑자기) 등장할 수 있는 건 은낭이 전원씨의 음모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호희에 대한 두 번째 음모다.

첫 번째 음모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금빛가면 자객의 칼을 맞은 은낭은 마경 소년의 치료를 받는다. 기능적 대화 이외에 거의 어떤 말도 하지 않던 은낭이 불현듯 가성공주가 들려준 난조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반복하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은낭의 얼굴은 손수건으로 가린 채 옥결을 받아들고 울던 때의 얼굴에 대한 대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옥결 장면에서 은낭이 떠올린 이가 가성공주였다면, 지금 은낭이 거울 앞에서 외롭게 춤추는 난조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떠올리는 이는 호희다. 영화는 이 장면 바로 다음에 궁궐에서 춤추는 호희의 숏을 이어붙여 놓음으로써 ‘거울 앞에서 밤새 춤을 추었던 난조’의 이미지를 (호희의 몸으로) 재현해낸다. 춤이 끝나고 난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찬가지로 춤을 끝낸 호희를 기다리는 건 ‘종이인형’의 저주다. 호희를 떠올리며 난조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되뇌던 은낭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칼을 다시 차며 흐트러진 ‘자객의 의관’을 정돈한다. 그녀에겐 아직 자객으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호희를 살려낸 다음 은낭은 여전히 자신을 죽이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계안에게 ‘호희가 임신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우리는 알고 있다. ‘둘째 부인’이라는 가성공주의 불안한 자리는 아들 계안이 태어나고 아버지로부터 군주의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써 공고해졌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호희의 위태로운 입지도 마찬가지로 은낭이 전한 이 ‘소식’ 덕분에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은낭에게 남은 건 미련 없이 위박을 떠나는 일뿐이다.

허우샤오시엔이 ‘무협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에 ‘혹시 자객들이 모여 앉아 밥만 먹는 영화가 아닐까?’라고 했던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만큼 ‘독특한’ 영화가 된 것은 사실이다. 허우샤오시엔은 여러 인터뷰에서 ‘리얼리티를 갖춘 무협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대신 <자객 섭은낭>의 자객들은 좀더 ‘현실적’인 칼싸움을 보여준다. 9세기 당나라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해내려는 꼼꼼한 노력도 화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가족’관계를 부여함으로써 짧은 원작 소설엔 없는 풍부한 감정의 결들을 살려냈다는 데에 있다. 홀연히 등장한 비구니에게 자객으로 길러져 사람들을 죽이며 살아야 했던 ‘9세기 당나라 여자객’ 은낭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허우샤오시엔은 그녀를 ‘가족’의 이야기 안에 배치시킨다. 스승의 명령에 따라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오래전 역사 속 여자객의 감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가족’은 그가 가장 잘 이해하는 세계다. 어쩌면 그가 말한 ‘리얼리티’는 이렇게 얻은 ‘감정의 리얼리티’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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