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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영화비평] 참사는 반복된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를 냉정하게 진단한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

<업사이드 다운>

<업사이드 다운>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4명의 유가족과 16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제목인 ‘업사이드 다운’은 관객의 뇌리에 깊이 남은 뒤집힌 세월호를 가리키는 말이자, 이러한 참사를 배태한 한국 사회의 뒤집힌 가치체계를 꼬집는 말이다. 즉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월호 사건은 배가 기울게 된 원인부터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구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해경이나, 대형 오보를 터뜨린 것도 모자라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은 언론이나, 유가족을 범죄자처럼 고립시키며 비난했던 정부의 행위는 모두 뒤집힌 가치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린 시절 이민을 간 재미동포 김동빈 감독은 20대 초반의 다큐멘터리스트이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 유가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Vermont Fallen>을 찍은 후, 제작사가 제공하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던 감독은 외신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한다. 2014년 5월부터 보스턴의 언론인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촬영에 돌입한 감독은 카메라만 달랑 들고 한국으로 건너와, 7월부터 국회에서 노숙농성 중이던 유족들과 합류해 촬영을 시작했다. 그의 열정에 반응한 25명의 스탭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꾸려 작업을 도왔고, 십시일반으로 제작비가 모여 <업사이드 다운>이 만들어졌다. 외국에서 자란 젊은 다큐멘터리스트의 눈에 비친 세월호 참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반쯤은 외부자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사라진 304개의 세계

영화의 초반은 4명의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아버지들은 아이가 어떻게 잉태되고 탄생하였으며, 어릴 때 무엇을 좋아했고 장래 꿈은 무엇이었는지를 세세하게 들려준다. 평범하게 꾸며진 아이들의 방을 둘러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담담하다. 말을 이어가는 아버지들의 표정도 비교적 밝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가기 전 아이가 얼마나 들떠 있었으며, 어떤 인사말을 주고받았는지 말하는 아버지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그리고 이내 울컥하는 순간을 참을 수 없다. 어떻게 사고 뉴스를 접했고, 이후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와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비교적 짧게 축약된다. 그 안에 얼마나 큰 슬픔과 분노가 자리하는지는 먹먹한 짐작으로 가늠할 뿐이다. 영화가 아이의 잉태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사고 후 시신 수습까지의 과정을 짧게 줄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것은 감독의 영화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 영화에 출연한 유가족 김현동씨에 따르면, 감독은 유가족들과 생활하며 긴 인터뷰를 땄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많은 말들을 쏟아냈는데, 영화가 완성된 뒤 아이들에 대한 언급만 쓰인 것을 보고 좀 서운했다고 말한다. 감독은 유가족들의 입을 통해 슬픔과 분노가 직접 표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태의 본질이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으로만 흐르는 것도 감독이 원한 것이 아니다. 감독이 유가족의 인터뷰에서 전하려 한 것은 희생된 아이들이 단지 304명의 숫자로 환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아이들이 우주의 우연으로 태어나 가족의 축복 속에서 자라고, 자신만의 꿈과 사연을 지녔던 하나의 세계였음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들만 인터뷰에 참여시킨 것도 이러한 태도를 건조하게 유지하려는 감독의 의도와 관련이 있다. 감독은 가급적 담담하게 아이들의 죽음이 어떤 무게와 의미를 지니는지 이성적으로 설득해낸다.

시스템이 빚은 참사

감독의 절제된 태도는 16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영화는 배가 넘어간 원인부터 왜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를 짚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는다. 그러나 더 깊은 의혹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가령 배가 침몰된 원인으로 과적과 증축, 고박의 미비, 평형수의 부족 등으로 인해 복원력이 크게 상실된 상태에서 급변침이 겹친 것 정도로 진단한다. 세월호 사건의 최대 의혹인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관계나 해저 산악지형을 따라 지그재그로 운행한 기록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널리 알려진 침몰의 원인을 짚어주되, 이것이 누군가의 개인적 일탈에서 빚어진 일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는 일관된 시스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묘파한다. 왜 구조를 하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진단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7시간의 부재나 언딘과 유착된 비리, 누가 근처의 구조선들을 돌려보냈고, 왜 퇴선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왜 해경은 선수에 접안해 선원들만 우선 구조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첫 신고부터 배가 침몰한 2시간 동안 구조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짚어주며, 구조보다 의전에 신경 쓰는 공무원의 짤막한 무전과 민간 잠수사의 투입이 계속 보류되었다는 진술을 삽입할 뿐이다.

영화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거나 몇 가지 의혹을 깊이 파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소제목과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공통된 맥락을 지니고 있음을 짚어낸다. 그 맥락이란 한국 사회의 각 분야가 대단히 후진적이며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는 언론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국내 언론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생존 학생에게 “너, 네 친구 죽은 거 아니?”라 묻고, 구조작업 중인데 “여기서 사망한 사람은 얼마의 보험금을 받게 된다”는 보도가 나갔다는 변상욱 대기자의 말은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이후 유가족의 정당한 항의를 돈을 더 받기 위한 행위로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언론은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유병언 추적 드라마로 변질되었다. 사회적 관심을 사건의 본질에서 떠나게 한 일등공신이 언론인 셈이다. 조 버간티노 뉴잉글랜드 탐사보도기자가 들려주는 미국의 언론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 밖에 외국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사례들은 공통점을 지닌다.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나라들도 처음부터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참사와 희생을 통해 하나씩 제도를 바꾸어가며 현재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경우,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첫 자막과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 사회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수미쌍관법으로 강조한다. 영화는 세월호를 둘러싼 사회적 에너지가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 매몰되고, 세월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유가족을 외면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지적한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당시의 여론과 달리 실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사의 역치만 높아졌다. 이제 세월호 사건의 규모가 아니라면 참사도 아닌 것이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1년 후 메르스가 창궐하자 ‘경제부처’에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정부 발표를 내레이션으로 구성하며 끝맺는다. 304명의 생목숨이 수장됐지만,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정부의 태도는 똑같이 유지된다. 65분에 불과한 이 영화는 사태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한 바퀴를 돈 사태의 일단락을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아니 도돌이표에 해당한다.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영화는 각성의 주삿바늘을 찌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다음은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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