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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흑백 이미지, 중첩된 숏이 말하는 것

이미지의 생략을 읽어내기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는 어느 날 우연히 낡은 사진첩에서 발견한 추억이 담긴 사진처럼 정지된 흑백 화면들로 가득 찬 영화다. 이 영화는 ‘일상’이란 첫 번째 챕터를 시작으로 ‘계획-여행-작별-성탄절’까지 다섯개의 챕터로 나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섯개의 챕터와 프롤로그, 영화 속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 에필로그까지 모두 7장으로 구성된다. 시골(충청남도 금산)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은 보건소 의사에게 위암 선고를 듣는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울에 있는 아들 스데반(오정환)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아들과 함께 내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금산은 아내의 15주기인 크리스마스날을 상영일로 결정하고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주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자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금산’에 사는 주인공의 이름이 왜 하필 ‘금산’인가다.

지명과 이름의 반복. 다른 하나는 암 선고를 받은 금산이 아들에게 전화하는 대신에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설정을 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가?

주인공의 카메라가 촬영하고 편집한 것

우선 지명과 이름의 반복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영화의 도입부(챕터 ‘일상’)에서 카메라는 금산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금산의 일상을 보여준 카메라가 같은 장소를 방문할 때, 그 자리에서 금산이 보여줬던 행동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반복된다. 예를 들면 수영장에서 금산이 자영(전여빈)에게 보여줬던 물을 뿜는 행동을 자영이 혼자서 따라 한다. 또한 치킨 캐슬의 사장(유재명)은 금산이 벽을 보고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금산이 보낸 초대장을 보고 있다. 게다가 예원은 이발소에서 금산이 앉아 있었던 의자에 앉는다. 이들은 무심코 이러한 행동을 따라 하거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들 곁에 있었던 금산의 부재에 대한 그들의 감정의 표현이다. 감독은 지명과 이름의 동어반복을 영화에서 금산의 일상에 나타나는 반복과 변주로 변형시킨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변화를 말이 아닌 행동(이미지)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스데반이 예원과 함께 여로 다방을 찾아가서 쌍화차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이 장소는 금산이 아내를 처음 만났고 아내가 떠난 후 가끔 들러 쌍화차를 마시는 곳이다. 영화의 후반 스데반은 촬영된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한 것 외에 이 영화에서 직접 아버지의 행동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감독은 왜 예원에게 허락된 자리를 아들 스데반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을 아버지에게 듣게 됐는데도 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가? 이것은 금산이 암 선고를 받고 아들에게 전화하는 대신 그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스데반이 아버지와 같은 상황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그의 여자친구 예원을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의 촬영 장소인 들판에서 채플린을 패러디한 금산이 폭파 장치를 들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을 촬영할 때 스데반은 금산이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보고 웃지 않았다고 다시 촬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예원도 녹화 버튼을 안 눌렀기 때문에 어차피 다시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원의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영화의 후반 스데반이 그 촬영 장면을 편집하면서 예원이 녹화를 안 했다는 그 말까지 녹화된 영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후 촬영된 영상에서 금산 옆에 어색하게 서 있던 스데반이 아버지 금산의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장면이 보인다. 그는 영상에서 폭파 장치를 누르면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금산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 금산이 거실에서 강냉이를 먹으면서 스데반의 어린 시절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아들이 그를 향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할 때 울먹이다 강냉이가 목에 걸려서 거실 바닥으로 강냉이를 쏟아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스데반은 예원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서 금산과 만나게 된다.

생의 마지막 불꽃놀이

영화의 후반 예원이 금산의 방에서 그의 일기장을 꺼내 읽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은 이 장면 이전에 스데반이 예원의 집을 떠난 숏과 예원이 금산의 방에 들어오는 숏이 서로 대구를 이루도록 배치한 것이다. 스데반은 영화 상영에 앞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만 병원 로비에서 망설이다 그냥 돌아온다. 그는 출생의 비밀을 지금까지 숨겨온 아버지와 마주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원의 집으로 가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 나간다. 현관문이 닫힌 암전 상태에서 다시 밝아지면 이어지는 숏은 금산의 방이다.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예원이 들어온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스데반과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는 예원. 이 엇갈린 장면을 통해 감독은 스데반과 금산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장면에서 예원이 금산의 일기의 한 부분을 읽는다. 이어서 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장소들을 다시 보여준다. 이번에는 금산의 목소리로 그가 쓴 일기를 구체적인 날짜(12월 12일부터 23일까지)와 함께 들려준다. 다시 같은 장소의 반복. 하지만 금산은 부재하고 그가 머물렀던 빈 공간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 이것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다시 보여진다.

감독은 영화에서 7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 무성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의 전체를 다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이 된 금산은 강냉이 폭탄을 삼킨 뒤 몸에서 강냉이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끝내 꺼내지 못하고 폭파 장치를 누르게 된다. 그의 머리 위에서 불꽃이 터지고 강냉이 폭탄은 결국 불발에 그친다.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이 불꽃은 금산이 입원한 병실 밖의 불꽃놀이로 다시 돌아온다. 유리창 밖에서 터진 불꽃이 유리창을 통해서 금산의 얼굴에 비친다. 어쩌면 금산에게 이번이 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정확한 그의 상태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금산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들에게 감독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아내가 좋아했던 채플린이 돼서 그의 꿈이었던 연기도 했다. 금산이 불꽃을 바라볼 때 그의 얼굴 위로 불빛이 비치면서 희미한 미소가 번지는 그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은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1931)의 마지막 장면과 만난다. 이 영화가 마지막 장면의 클로즈업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클로즈업을 자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얼굴 클로즈업은 두 장면뿐이다.

또한 극적인 구조(암 선고, 출생의 비밀)를 설정했지만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은 예원을 통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이처럼 감독은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그들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시켰다. 그래서 지나친 감정을 표현하는 컬러의 이미지들과 카메라의 움직임보다 흑백 이미지들과 고정숏을 사용했다. 이 영화는 영화 이미지들 사이에 생략된 시간과 감정의 결을 읽어주기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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