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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의 1971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2018년 한국의 기자는…

기자는 ‘물먹고 반까이(挽回)’할 뿐이다

영화 <더 포스트>는 ‘물먹고 반까이(挽回)’하는 게 전부다. <뉴욕타임스>로부터 ‘물먹은’ <워싱턴포스트>가 ‘반까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부언하면, <뉴욕타임스>의 닐 시언의 특종에 ‘물먹은’ <워싱턴포스트> 전체가 전국담당 에디터 벤 백디키언의 인맥을 동원한 취재에 겨우 ‘반까이’하고 숨을 돌리는 영화다. 흠, 한 발짝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상대적으로)재정이 탄탄한 1급 정치신문 <뉴욕타임스>를 신뢰한 제보자가 7천페이지짜리 펜타곤페이퍼를 넘겼고, 석달 동안 보고서를 분석한 <뉴욕타임스>가 (예상대로) 흔들림 없이 특종 보도했으며, ‘물을 먹은’ <워싱턴포스트>가 법원의 보도중지명령 상황에서 국장과 언론 사주의 구속을 각오하고 투자자들의 투자 철회 등으로 닥칠 폐간 위기에도 굽힘 없이 ‘반까이’해 “기사의 수준이 수익을 결정한다”는 저널리즘을 위한 철학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영화다. 아무리 따져봐도, ‘물먹고 반까이’하는 게 전부다.

“물먹고 반까이하는 것”

2005년 겨울, 서른 넘어 입사한 늙은 신입사원이 수습 딱지를 떼는 날, 기자‘질’이 무엇이냐는 사회부장의 질문에 수습 교육을 책임지던 시경 캡(경찰팀장)은 “물먹고 반까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까. 하루 세 시간의 취침도 보장되지 않는,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수습 과정을 거치면서 심리적 포로가 돼버린 것인가, 그 뒤로 오리새끼마냥 각인효과가 있었던 것인가, 모르겠다. 십수년 동안, ‘물을 먹을 수 있다, 반드시 반까이 한다, 그게 도리다’ 이렇게 살았다. 기자로서, 저널리즘의 파수꾼으로 살아왔느냐, 라고 물으면 “저는 물을 먹고 반까이를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그 거친 명제의 실체를 의심하지도 못하고, 달렸다. 굳이 더하자면 ‘정부는 무조건 거짓말을 한다’ 정도가 보태졌을까. 이 정도라면 기레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겠다. 설명 같은 변명을 더하자면, 물을 먹는다는 것은 타언론사가 단독보도를 하고 뒤따른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반까이’(挽回)는 언론사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 잔재다. 사전적 의미는 ‘손실을 메우는 것’이지만 업계에서는 앞선 특종 못지않은 후속보도를 내야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기도 한다. 특종을 특종으로 되갚는다는 뜻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까이를 위해 내달리는 각 언론사의 분투로 앞선 (특종)보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특종은 <더 포스트>에 등장하는 개인(닐 시먼)이나 압도적인 취재력을 자랑하는 언론사(<뉴욕타임스>)가 하지만 일단의 진실을 더하고 그 다양한 빛깔을 드러내는 일은 반까이를 하기 위해 나선 전장의 모든 언론사가 나눠 맡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짓을 감추기 위한 정부의 위협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공동의 전선이 구축되기도 한다. 오롯하게 실체적 진실의 뿌리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이런 뜻이었을까. 건축전문기자로 더 유명했던, 당시의 시경 캡 구본준은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 물어볼 길이 없다. 형, 맞는 거지?

물을 먹고

물먹은 순간, <더 포스트>의 편집국은 <뉴욕타임스> 정독의 시간이다. 미국의 언론사라면 그날 어디든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때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탐사 저널리즘, 내러티브 저널리즘, 데이터 저널리즘, 참여 저널리즘 등 저널리즘의 성취들이 세월을 따라 굽이쳤지만, 타사의 특종이 터진 순간 기사를 읽어내는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의 청와대 비선실세 보도가 터진 그날,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뇌물리스트 폭로가 담긴 <경향신문>이 배달된 아침, <한겨레> 편집국도 경쟁지 특종에 아파하며(감탄해가며) 밑줄을 그었다. 비선실세가 최순실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한겨레>였지만,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한 날의 풍경은 살벌했다(<한겨레>는 청와대 문건이 최순실의 사무실로 유출됐다는 보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고도 낙종을 했으니 더 뼈아팠다).

완독의 시간이 끝나면, 편집국장은 어김없이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주인공 벤(톰 행크스)이 말하듯 “일 좀 하자”고 다그친다. 다음 수순은 회사의 한 구석에 티에프팀이 꾸려진다. 늘 모이던 멤버들이다(언론사별로 티에프를 하고 싶어 하는, 할 수 있는 기자들은 거기서 거기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구성원은 대부분 남성일 것이고, 혹시나 모를 필요에 의해 여기자 한명이 배치될 것이다(그러고 보면 젠더 운운하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언론이다.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기자상부터 민주언론상, 관훈언론상까지 온갖 기자상을 휩쓸었다고 자평하는 ‘<한겨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티에프는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랬다). 이렇게 출발한 티에프팀은 ‘반까이’를 하기 위한 채비에 들어간다.

채비를 어느 정도 마치면 <더 포스트>에도 묘사되듯 비루한 일상의 연속이다. 편집국장 벤이 막내 인턴을 부르는 장면. 벤은 40달러를 현금으로 쥐어주며, 뉴욕으로 당장 가서 무엇이든 알아오라고 다그친다. 인턴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불법 아니냐”고 묻자 “고상한 일만 하려면 왜 신문사에 왔나, 애송이”라고 고함을 친다. 인턴은 무작정 <뉴욕타임스>에 뛰어든다. 맥락 없는 지시를 내리는 (그리고 운좋게 뭔가를 건지는) 편집국장 벤은 대한민국 언론사 어디에도 있다.

“뭐 하러 거기 있냐.”

10년도 더 된 얘기다. BBK는 이명박이 만든 괴물이라는 수십 차례의 보도에도 누구 하나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 2007년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따라 캡의 채근이 유난했다. 이명박 후보 소유의 빌딩에서 나올 얘기는 다 나왔으니 방심할 무렵이었다. 뭐든 하라는 지시, 막막하다. “불법은 아니냐”고 대들 수는 없다. 수습을 갓 뗀 경찰기자는 존재증명이 우선이었다. MB의 코 푼 휴지라도 줍자는 심정으로 건물을 뒤졌다. 늘 누군가가 지키던 지하 사무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일단 들어섰다. 거의 동시에 층계를 내딛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전화번호가 적힌 조직도를 떼어냈다. 세 갈래로 찢어졌다. 마주칠까 1층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쫓기듯 사무실 옆 화장실로 숨었다.

“도로 갖다놔.”

“직원이 있….”

“마!”

툭 전화가 끊겼다(당시까지만 해도 캡은 전화예절이 없었다). 종이 한장이지만 절도다. 사무실에는 직원이 있을 것이다. 알려지면 선거과정에서 언론사와 캠프 사이의 공식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수하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 권리를 앞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다시 발자국 소리가 났다. 화장실을 향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분의 볼일은 다른 데 있었다. 모지리 기자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고, 달포가 지나지 않아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령이 됐다(그날 조직도 사본은- 타인의 생리활동 중 복사할 용기는 또 어디서 났을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내 책상 한구석 파일 안에 기념처럼 모셔져 있다. 10년이 흘러 그 조직도 안에 들어 있는 인물 중 상당수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구속됐다).

반까이를 하는 것

617-597-4580.

<더 포스트>의 편집국이 ‘반까이’를 향해 달려가는 변곡점에 등장하는 전화번호 하나, <워싱턴포스트>의 전국담당 에디터 벤 백디키언이 <뉴욕타임스>에 펜타곤페이퍼를 넘긴 결정적 제보자 댄 엘스버그와의 만남이 성사되기 직전에 잠깐 등장한다(순간 나는 그 번호를 왜 외우려 했을까). 중요한 것은 다음 순간이다. 벤이 댄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으려는 바로 그 순간 소지품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진다. 허둥대다 놓친 수화기를 들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 있다. 4580을 외우며 다시 다이얼을 돌린다. 손은 떨리고 마음은 급해 투입구에 들어간 동전보다 바닥에 쏟아지는 동전이 더 많다. 그리고 그는 호텔로 달려간다. 거기서 벤은 댄을 만나 4천 페이지(<뉴욕타임스>보다는 3천 페이지 모자란)짜리 보고서를 입수한다.

010- **** - **** .

허둥대는 벤을 보면서, 결국은 펜타곤페이퍼를 입수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 전화번호가 떠올랐다(취재가 마무리된 뒤 약속대로 전화번호는 지웠고, 휴대전화도 바꿨다. 그래서 번호는 어렴풋하게 기억나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도 없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어느 것도 공개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건네받은 것은 2016년 11월. 10월 JTBC의 태블릿PC 보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결의 문제로 들끓었다. 제보 내용은 간명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남의 단골 미용실 미용사를 갑작스럽게 불러들여 올림머리를 했고, 그것을 하느라 한 시간여를 허비했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세월호 사건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2년 넘게 풀리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의 당일 행적, ‘7시간 미스터리’에 균열을 내는 결정적 제보였다. 박 전 대통령이 사고 발생 7시간 만에 대책본부에 나타나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했을 때, 이미 7시간 동안 정상적인 업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알았다. 미용시술설, 굿설, 밀회설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을 뿐 어느 누구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던 때였다.

당시 떨리는 손으로 누르던 010- 전화번호와 그 순간을 여전히 몸이 기억하고 있다. 감옥행을 각오하고 폭로 문서를 건네는 댄이 벤에게 “기사 내줄 거지?”라고 묻는 장면과 “보도하시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다 드리겠다”고 말하며 떨리던 그 제보자의 목소리는 묘하게 겹쳤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그도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제보자에게 제보가 복수의 증언에 의해 확인이 되지 않으면 기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해야 했지만, “쓸 수 있다. 꼭 쓰겠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의 불안과 떨림, 이를 넘어서는 용기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주 뒤쯤 ‘박 대통령, 세월호 가라앉을 때 ‘올림머리’하느라 90분 날렸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파장은 컸다. 보도도 되기 전 <한겨레>에서 박 대통령 7시간과 관련된 기사가 나온다는 지라시가 돌았다. 보도 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올림머리가 탄핵열차 티켓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며칠 뒤 국회는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제보자는 피해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려져 역사가 기억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올림머리 보도는 숨겨진 제보자 말고도 담당 기자의 실수로 드러나지 않은 공로자가 더 있다. <한겨레> 법조팀의 서영지 기자의 마사지사(현장 취재를 나가 마사지를 받았다. 피부트러블은 없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취재가 올림머리 미용사 취재까지 이어지는 밑바탕이 됐고, 무엇보다 정당팀 송경화 기자의 제보자 연결은 보도의 처음과 끝이었다. <더 포스트>를 핑계로 공치사를 늘어놨지만, <한겨레>가 보도한 올림머리 특종(말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숱할 것이다)에는 후배의 공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가로챈 선배의 비난받아 마땅한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더 포스트>의 마지막 시퀀스는 이듬해인 1972년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특종을 예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다시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해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을 이끌며 <워싱턴포스트>를 <뉴욕타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언론으로 성장시킨다. 워터게이트 보도 뒤 닉슨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워터게이트 특종은 <뉴욕타임스> 펜타곤페이퍼 특종이 있어 가능했다. 벤 브래들리는 저서 <워싱턴포스트 만들기>에서 “<워싱턴포스트> 내부에서는 펜타곤페이퍼의 경험으로 (사주인) 그레이엄 일가와 편집국의 신뢰가 견고해졌다”며 “펜타곤페이퍼 이후 우리가 함께 극복하지 못할 어려운 결정은 없었다”고 했다. 사주와 편집국과의 긴장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겨레>는 2018년 오늘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백하자면, (주)다스 내부 관계자의 목소리가 담긴 880개로 알려진 녹취(880개는 언론에서 과장한 수치였다)와 씨름하고 있다. 이는 “다스는 누구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기 시작한 JTBC, MBC에 ‘물을 먹고 반까이’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겨레21>은 <한겨레> 편집국과 티에프팀을 꾸렸고, 후배 김완, 정환봉 기자가 나섰다. 성과도 있었다. “MB 당선인 때 조카 이동형에게 ‘다스 맡아라’ 지시했다”는 내용의 보도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인이 돼서까지 다스를 챙겼고, 경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취재는 계속되고 있다.

올봄날, 이명박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설 것이다. 구속은 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감옥에 있다는 부담만 아니라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숨가쁘게 흘러온 비극은 막을 내릴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더 포스트>의 마지막 암전처럼, 펜타곤페이퍼 폭로에 뒤이은 워터게이트 사건 못지않은 불행이 들이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재조사가 임박한 2014년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2010년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직후인 2010년 어느 비오는 날,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언론을 의식하지 않는)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또렷하게 기억한다. 진실은 그 안에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이 원고를 송고하려는 찰나, 또 ‘물을 먹었’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2009년 미국 워싱턴 연수 시절, 록히드마틴 등 미국 방산업체 이권을 담당한 로비회사 직원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6개월을 넘게 쫓던 내용이었다. 가슴이 저렸다. 몇달째 만나주지 않는 제보자 소재부터 다시 파악해야 한다. 국방부를 출입했던 기자들은 알 것이다. 이것은 시작일 뿐 덧붙여 나가야 할 진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또 ‘물먹고 반까이(挽回)’해야 한다. 그게 전부다.

덧붙여.

<씨네21> 김성훈 기자와 함께한 <한겨레21>의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연속보도는 지난 2월 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엔터팀을 운영하며 영화계 전반을 흔들었다는 내용의 보도는 김 기자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정치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영화계를 장악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드러낸 <씨네21>의 연속보도는 전설로 남을 만합니다. 김 기자를 포함한 편집장 이하 <씨네21>에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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