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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재, 다양한 시선
2001-05-24

애니메이션 신진작가(3)

(<애니메이션 저널>의 편집인 모린 퍼니스가 선정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조류를 소개하는 마지막 순서입니다.)

화면에 제법 큰 돌이 등장한다. 이 돌은 화가 잔뜩 난 한 젊은이가 들고 있는데, 그는 냅다 돌을 허공에 던진다. 그런데 공중에 날아간 돌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돌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15분30초짜리 애니메이션 <돌의 비행>(Steinflug: Flight of the Stone)은 이렇듯 공중을 나는 돌이 화자가 되어 자연과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다. 독일 출신의 감독 수잔 호리존-프젤은 3D컴퓨터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혼합해 작품을 제작했다. 3D컴퓨터그래픽이라고 하면 <개미>나 <슈렉> 같은 유려한 영상을 상상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와는 거리가 먼 거친 질감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자주 등장하는 실사영상은 다양한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돌의 반응을 묘사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돌의 비행>은 거친 황야에서 울창한 숲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그 속에서 꽃피운 인류의 여러 문화들을 차분한 시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적절한 템포의 조절이 돋보이는 편집은 전에 소개한 <인디비두>와 비슷하다. 최근 애니메이션계에 불고 있는 실사와의 통합 경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3D컴퓨터애니메이션 <와일드 카드>는 서구식 유머를 사용한 작품이다. 감독은 반 판. 작품의 소재는 트럼프 카드. 진실한 사랑을 찾아 나선 ‘하트의 여왕’이 주인공이다. 주위에 있는 ‘킹’이나 ‘잭’에 만족을 못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될 수 있는 ‘와일드 카드’를 찾아 떠난다. 간결하면서도 고풍스런 양식의 트럼프 카드 그림은 애니메이션에서 무척 사랑받는 소재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카드 군대는 대표적인 예이다.

<와일드 카드>도 이런 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드의 ‘퀸’이나 ‘킹’을 의인화해 그 사이에 인간사의 로맨스를 연결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반 판 감독은 기존의 컴퓨터그래픽 기법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시각효과로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3D컴퓨터그래픽 작품들이 배경이나 캐릭터에 치중한 것과는 달리, 그는 시각적 효과로 캐릭터의 내면이나 사건의 암시를 나타내는 데 성공했다. 의도적으로 첫점을 흐리게 한 화면으로 카드들간의 갈등과 반복을 암시하는가 하면, 평면적인 카드의 실루엣을 이용해 심리를 묘사하기도 한다. 영화 <스튜어트 리틀>의 작업에도 참여했던 반 판 감독은 지난해 8월 신작 <가족의 가치>를 완성했다. 인터넷영화 사이트 ‘아톰필름’www.atomfilms.com에 가면 <와일드 카드>의 완성판을 볼 수 있다.

서레이예술디자인학교 출신인 수지 템플턴의 첫 작품인 <스탠리>(Stanley)는 인형을 오브제로 이용한 애니메이션이다. 양배추 아기와 광적인 아내의 망상에 사로잡힌 스탠리란 남자의 모호한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탠리는 늘 잠자리에 들면 무섭게 커가는 양배추 아기가 요람에 든 채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악몽을 꾼다. 정신을 차리면 꿈인 것 같지만, 현실의 상황도 꿈속의 끔찍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쉽게 줄거리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 작품의 분위기는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접했던 인형애니메이션의 아기자기한 영상과는 달리 유혈이 낭자한 엽기적인 영상도 스스럼없이 등장한다. 매끄런 인형의 움직임이 오히려 보는 이를 더 불쾌하게 만드는데,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잠재의식 속의 공포를 ‘악몽’이란 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퀘이 브러더즈의 작품과 비슷한 점도 많다. 그동안 3주에 걸쳐 애니메이션계에서 최근 등장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퍼니스의 추천 작품에는 이외에도 <보다 좋은 쥐덫 만들기>의 크리스토퍼 레온 등이 있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과 큰 차이가 없어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소개하기로 한다. 김재범|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