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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주면 됐지, 뭐!
2001-05-31

<톰과 제리>

지난 해 봄, 북한에서 미국 애니메이션이 수년 동안 방송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방송되는 ‘만수대 TV’를 통해 88년부터 방송한 이 애니메이션은 매주 일요일 1∼2편씩 방송했는데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중단됐다고 한다.

북한에서 방영된 제목은 <우둔한 고양이와 꾀많은 생쥐>. 무려 7년이나 방송된 이 애니메이션은 힘이 약해도 머리만 잘 쓰면 얼마든지 자기보다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이 평양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 뭐 이쯤 이야기가 나왔으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그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워너 브러더스사가 제작한 미국 TV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가 북한 주민이 좋아했던 작품이다.

<톰과 제리>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기회만 생기면 다시 방송하는 애니메이션의 스테디 셀러. 한동안 공중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더니, 최근 들어 케이블 TV의 애니메이션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 작품은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의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다지만, 국적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에 담긴 익살과 개그를 즐기는데는 그토록 강조되는 이데올로기가 그리 필요없었다는 점이다.

북녘 사람들도 좋아하는 <톰과 제리> 시리즈는 원래 TV가 아닌 극장용 단편에서 출발했다. 30년대 미국 영화사 MGM은 실사 영화에서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40년 MGM 소속의 애니메이터 윌리엄 한나와 조셉 바바라는 귀여운 고양이와 생쥐 캐릭터가 등장하는 <푸스 겟츠 더 부트>란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단편의 최고 인기 작품은 기발한 웃음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우드패커>(국내에서는 <딱따구리>로 소개). 하지만 한나와 바바라의 새 작품은 나오자마자 아카데미상 단편 부문의 후보로 오르는 등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인기를 모았다. 이 작품이 <톰과 제리> 시리즈의 원조이다. 이후 MGM은 1940∼67년까지 모두 153편을 제작했는데, 이중 가장 뛰어난 작품들은 역시 한나와 바바라 콤비의 작품. 전체 153편중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7편이 모두 두 사람의 작품이다. 이후 두 사람은 MGM을 떠나 애니메이션 회사를 세워 독립하는데, 그 회사가 지금 미국 굴지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으로 꼽히는 ‘한나 바바라 프로덕션’이다.

한나와 바바라 이후 <톰과 제리> 시리즈는 영화에서 TV로 주 무대를 옮긴다. 이때 새롭게 이 시리즈의 인기를 되살린 인물이 바로 척 존스. 척 존스는 말썽꾸러기 토끼 ‘벅스 바니’를 탄생시킨 택스 에이버리와 함께 미국 애니메이션을 말할 때 꼭 짚고 넘어갈 사람들이다. 물론 엄격하게 말하면 그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과 마찬가지로 ‘워너 브러더스’와 ‘한나 바바라’라는 거대 스튜디오 시스템에 속했던 작가이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에 속한 작가들이 ‘디즈니’라는 거대한 브랜드에 통합해 이름을 잃은 것과는 달리 자신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척 존스의 애니메이션에서 우선 눈에 띠는 것은 미국 코믹 문화의 전통인 개그와 익살에 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절묘히 혼합하는 것. 마치 ‘웃기지 않으면 애니메이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듯 메시지나 교훈 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웃음을 선사한다. 웃음을 위해 때로는 지나치게 과격한 폭력도 천연덕스럽게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택스 에이버리와 같은 다른 작가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지만, 척 존스만의 특징은 톰이나 그의 또 다른 히트작 <로드 러너와 코요테>에 등장하는 코요테처럼 작품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캐릭터에게도 독특한 매력과 귀여움을 부여한 것. 외관상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생쥐 제리나 ‘로드 러너’에게 늘상 골탕을 먹는 그들의 모습은 묘한 연민과 함께 애정을 갖게 한다. 선과 악에 대한 캐릭터의 구별이 철저하게 구분된 애니메이션에서 이처럼 악역에게 멋진 매력을 부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김재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