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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2001-02-02

설이 즐거워지는 추리만화 8편

어려서 추리소설 한권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치밀한 탐정 셜록 홈스와 함께 범인을 뒤쫓기도 하고, 신출귀몰한 괴도 루팡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가 깔아논 복선을 더듬으며 주인공과 함께 범인을 추리해가는 것이 추리물의 재미. 그러나 범인은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뜻밖의 인물인 경우가 많다. 올 설에는 스릴과 재미넘치는 추리만화의 세계에 빠져보자.

■ 소년탐정 김전일 (글 가나리 요자부로,그림 사토 후미야)

‘소년탐정 김전일’은 90년대 일본 추리만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만화가 연재된 <주간소년매거진>의 400만부 시대를 열며, <주간소년매거진>이 <주간소년점프>를 제치고 1등 자리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몫을 한 일등공신이다. 만화는 물론 TV드라마, 극장용 애니메이션, 홈비디오, 게임 등 관련 전 분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탄탄한 스토리와 스릴 넘치는 연출로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과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주인공은 IQ 180의 천재소년 김전일. 명탐정이었던 ‘코우스케’의 손자로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뛰어난 두뇌를 갖춘 데다 승부욕과 정의감마저 겸비했다. 그런 김전일이 그를 따라다니는 조수격의 친구 미요코와 함께 말려든 갖가지 사건들을 명쾌한 추리력을 발휘해 경찰보다 먼저 해결한다는 줄거리.

이 만화는 두 가지 시점으로 나눠 관찰하면 두배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잔혹하고 엽기적 사건을 저지르는 범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사건을 풀어가는 주인공 김전일의 시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 만화에 나오는 각종 범죄가 김전일에 의해 밝혀지고 나면 너무 지능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에 독자들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울문화사)

■ 명탐정 코난(아오야마 고쇼)

<주간소년매거진>에 ‘소년탐정 김전일’이 있다면 <주간소년선데이>에는 ‘명탐정 코난’이 있다. ‘명탐정 코난’은 ‘소년탐정 김전일’과 함께 90년대 일본만화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추리만화다. 주인공은 신이치로 고등학생인 김전일보다 더 어린 꼬마로 등장한다. 그러나 신이치가 원래부터 꼬마는 아니었다. 김전일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으로 명탐정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지만 어느 날 악당들에 의해 어린 꼬마로 몸이 줄어들어버렸다.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꼬마 탐정 코난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에 있다. 어린이만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어른처럼,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처럼 느낄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제공해준다. 어린이인 주제에(?) 어른보다 훨씬 뛰어난 머리 회전이 그렇고, 반면 생김새는 영락없는 어린이인 주인공 코난은 미묘한 위기감을 지니고 있다.

그 미묘한 위기감이란 바로 그 꼬마탐정 코난이 언제 정상적인 고등학생 신이치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 이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이 곧 연재 종료를 의미할지도 모르지만 매번 사건이 끝날 때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작품에서 이러한 중심 줄거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베스트셀러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서울문화사)

■ 마스터 키튼(우라사와 나오키)

<야와라> <해피> <파인애플 아미> 등의 인기작을 잇따라 낳아 ‘90년대의 히트작 메이커’라 불리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추리만화.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이치 히라가 키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본업은 고고학자로 도나우 문명의 존재를 믿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그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보험사고가 터지면 보험사의 의뢰를 받아 출동하는 보험조사원으로 활약한다.

영국특수부대 SAS 서바이벌 전문 교관 출신으로 옥스퍼드 출신의 수재인 그가 세계 곳곳 의문의 현장을 뛰면서 펼치는 ‘맥가이버식 활약’이 이 만화의 기본구조. ‘마스터 키튼’에서 ‘마스터’는 SAS에서 교관한테 붙여주는 칭호다.

‘마스터 키튼’에는 화려한 액션도,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여주인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하게 읽는 사람에겐 다음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의 매력을 제공한다. 동·서양 문명으로부터 극한 상황 생존술까지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스토리 작가 가쓰시카 호쿠세이의 박학다식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다.

마지막권에서 숨겨진 재산을 둘러싼 암투로 자신뿐 아니라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상황 속에서 키튼이 던진 “용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마”라는 대사야말로 작가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이다. 18권 완결.

(대원씨아이)

■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는 <마스터 키튼>과는 또다른 맛을 안겨준다. 이 만화는 미국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된 샘 셰퍼드 살인혐의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도망자>를 연상시킨다. 이 만화 또한 살인혐의 누명을 쓴 채 쫓기는 의사가 도망다니면서도 사랑의 인술을 펼치는 줄거리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독일의 뇌외과의학계에서 앞날이 촉망되던 일본인 의사 덴마. 빼어난 수술 솜씨로 병원 원장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그는 어느 날 “시장의 수술을 우선하라”는 원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윤리에 따라 요한 남매를 먼저 수술한다. 그뒤 원장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자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 만화는 동독 정부가 붕괴 직전 냉혹한 인간 즉 ‘악마’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가설을 채용하고 있다. 그 결과 탄생한 ‘악마’가 바로 덴마가 목숨을 구해준 요한이다. 덴마는 이런 악마를 살려냈다는 죄책감에 요한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뒤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한 악마가 아니다. 처음에는 요한이 곧 악마인 것처럼 등장하지만, 나중에는 이중인격자임이 드러난다. 악마성에 질린 요한 속의 또다른 요한은 “내 속의 몬스터로부터 나를 구해달라”고 덴마에게 부탁한다. 웅장한 스케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스터리의 연속, 탄탄한 스토리 전개, 치밀한 묘사…. 95년부터 6년에 걸쳐 장기 연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잃지 않은 채 이 만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힘이다.

집요하게 덴마의 뒤를 쫓는 독일연방수사국 수사관인 룽게 경감과 뭔가 출생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한 요한의 쌍둥이 여동생 니나의 존재는 이 만화를 읽는 또다른 재미다.

(세주문화사)

■ 미스터리극장 에지(글 안도 유마? 그림 아사키 마사시)

사이코메트러(psychometrer 영능력자)를 소재로 한 만화. 주인공 에지는 고등학생이지만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다. 다른 사람의 신체의 일부를 만져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거나 어떤 물건을 만져 그 물건 소유자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것. 이 에지가 경찰청 수사1과의 시마 경위를 도와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활약을 펼치는 것이 이 만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그러나 나중에는 국가권력의 탈취를 꿈꾸는 경찰 내부의 ‘음모’를 분쇄하는 장대한 스토리로 발전한다.

이 음모를 주도한 것은 치안총감과 엘리트 경찰인 나가오, 유능한 수사관이었던 콘도 등. 천재 범죄자 아키라 또한 목적은 다르지만 이 계획에 동참한다. 국가권력의 핵심에 있는 경찰들이 이 음모를 꾸민 것은 확실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향하도록 궤도수정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조직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정치가나 관료들을 장악하는 한편,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제거해버린다. 이 과정에 경찰들도 희생된다.

하지만 이들의 음모는 죽은 것처럼 위장해 이들과 싸운 쿄스케, 아베 감식과장, 에지, 시마 경위, 그리고 에지의 친구인 강천, 또다른 사이코메트러인 기도와 적수의 활약으로 무산된다. ‘일본에서는 단 한번의 쿠데타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시마 경위의 말이 미리 복선을 깔아놨듯이.

시마 경위가 경감으로 승진한 축하파티에서 시마가 에지의 뺨에 사랑의 키스를 하는 순간 컴퓨터에 ‘또 만나자, 제군’이라는 메시지가 뜨며 2부의 서곡을 알린다. 1부 25권 완결.

(학산문화사)

■ 지뢰진(다카하시 쓰토무)

‘지뢰진’은 형사가 주인공인 미스터리 추리만화다. 하지만 주인공이 형사라고 해서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상을 연상해선 곤란하다. 이 만화의 주인공 이이다 쿄야는 그런 영웅적인 형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이이다 쿄야는 한마디로 비정한 형사다. 사건이 터지면 몸사리는 일 없이 열심히 수사에 임하지만, 사명감이나 정의구현 같은 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직업이니까 하고, 마치 사람들(특히 범죄자)을 괴롭히고 싶어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형사라는 직업은 인간들을 파괴하고, 상처를 안겨주고, 건물을 폭파하고, 자동차를 박살내는 등 자신의 폭력본능을 합법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 같다.

이 이이다 쿄야가 며느리와 손녀를 성폭행하는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살하는 아들, 상인과 자살을 교사하는 초등학생 소녀,동급생 몸을 불로 지지는 여고생들, 이 여고생들 몸에 문신을 새긴 채 죽여 복수하는 친구 등 자고나면 강력사건이 몇개씩 터지는 도쿄에서 몸을 던져 범죄진압과 사건해결에 나선다.

총구를 머리 가까이 대고 쏜 탓에 뒷벽에 뇌수와 피가 뿜어져 흐르는 장면이나 숨이 끊어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클로즈업한 묘사 등 잔인한 장면이 많아 이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들리지만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파괴본능을 자극하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살인은 막아도 살의는 막을 수 없다”는 대사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세주문화사)

■ 아키바의 사건 파일(고테가와 유아)

‘아키바의 사건 파일’은 사이코 서스펜스물이지만 일반 추리만화와는 분위기가 조금 차이가 난다. 그것은 아키바라는 특이한 주인공 설정에서 기인한다. 아키바는 쿠가야마서에서 일하는 형사. 하지만 <지뢰진>의 이이다 쿄야와는 대조적으로 평소에는 싱겁고, 짓궂고, 색을 밝히는, 한마디로 ‘믿음이 안 가는’ 인물이다. 다만 “수사에 착수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주위의 평처럼 사건만 발생하면 사람이 일변한다.

이 아키바가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인 쿠보 미즈호와 함께 계속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줄거리. 아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미즈호가 범죄자를 불러들이는 ‘미끼’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조금씩 사랑의 감정이 싹터감으로써 연애물의 성격도 띠고 있다.

만화 속 사건의 피해자들은 여자가 많다. 그것도 대부분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살인범들은 대부분 부정을 저지른 여자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지닌 남자들이다. 그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까닭은 ‘여자가 얼마나 추한 생물인지를 세상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수수께끼의 살인귀 다치바나 케이고는 이 만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주인공. 시체를 검사하는 검찰의사이자 아키바의 술친구였지만 젊은 여자 17명을 죽인 살인범으로 아키바에 의해 체포돼 감옥생활중이다. 그러나 그는 감옥 속에서 수많은 살인을 교사한다. 작가는 이 다치바나와 아키바의 뭔지 모르지만 ‘특별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어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학산문화사)

■ 어둠의 인형사 사콘(오바다 다케시)

<고스트 바둑왕>으로 국내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오바타 다케시가 뜨기(?) 전에 그린 만화. 제목만 봐서는 전혀 탐정물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싸늘하고 음산한 게 마치 공포물을 연상시키는 추리물이다. 제목에 나오는 인형사란 일본 전통연극 중 하나인 분라쿠, 즉 꼭두각시 인형 연극에서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이 작품의 주인공 사콘은 인형사로 항상 우콘이라는 인형을 데리고 다닌다. 사콘의 성격은 조용하며 신중한 반면, 우콘은 떠벌리며 까불어 사콘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항상 함께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콘을 또 한명의 인격체로 인식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콘과 사콘은 반대의 견해를 내면서 사건의 범위를 좁혀가다가 마침내 해결하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소한 것들이 실마리가 되어 풀리는 전형적인 해결 패턴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 주인공 사콘의 우콘이라는 형태로 분열된 자아일 것이다. <싸이코>라는 히치콕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언뜻 보기엔 사콘의 정체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탐정만 아니라면 정신분열증으로 진작 병원신세를 져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우콘의 숨겨진 진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100년 전에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한 소년의 화신’이라고. 또한 ‘우콘이 단지 영혼이 없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형일지도 모른다’고.

(서울문화사)

김이랑/ 만화평론가 dreamy21@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