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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툼레이더>
2001-07-05

쾌락의 비트

<툼레이더> O.S.T/ 엘렉트라 발매

지금 시대의 음악을 규정하는 건 ‘비트’와 ‘저음’이다. 저음으로 가슴을 쳐주고 비트로 온몸을 떨게 하는 것이 지금 음악의 쾌락적 원칙이다. 그러한 원칙은 특히 ‘게임음악’일 경우 기본적이다. 게임음악은 예전의 단순한 ‘뿅뿅’ 사운드에서 큰 스케일의 사운드 스코프를 가진 테크노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의 게임음악들을 들어보면 정말 장난 아니게 신경써서 만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테크노적인 음악의 구성 자체가 게임의 구성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점이다. 우선, 게임처럼 테크노음악도 흐름을 중시한다. 물론 모든 음악이 다 그렇지만, 테크노는 특히 ‘흐름의 지속’을 생명으로 여기는 음악이다. 또 하나, 함정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테크노는 흐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소리의 ‘중첩’(레이어링)을 이루는 단층들을 두텁게, 얇게 하면서, 한마디로 넣었다 뺐다 하면서 진행되는데, 그건 마치 레이스 게임 중에 나오는 함정들이 음악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듣는 사람의 긴장을 유발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테크노는 일종의 소리와의 게임이다. 서로 쫓고 쫓기면서, 소리를 통해 어딘가를 다녀오는, 버추얼한 공간 시뮬레이션이다. 이젠 음악이냐, 게임이냐, 영화냐 하는 구분이 별로 의미없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버추얼한’ 어떤 세계의 구성을 통해 쾌락을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툼레이더>처럼 게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의 음악으로는 테크노가 제격이다.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의 추리와 활약을 통해서지만, 영화를 통해 계속해서 드러나는 음모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주인공의 활약은 하나의 스케일 큰 비디오 게임의 진행을 연상케 한다. 그 ‘큰 게임’의 진행감을 주는 데는 테크노음악 이상이 없다. 물론 테크노의 기계적인 소음들도 이 영화에서 한몫한다. 효과음과 음악의 경계선상에 있는 그 소리들은 시공간을 ‘버추얼한’ 어떤 세계로 새로 짜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 영화의 음악스코어를 쓴 사람은 그레엄 레벨(Graeme Revell).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사운드트랙을 맡았었고 테크노 명인들을 등용시켜 성공적인 O.S.T를 만든 <스폰>, 또 음울하고 차가운 고딕에서 인더스트리얼까지 섭렵한 O.S.T로 유명한 <크로우> 같은 영화에서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주로 블록버스터형의 웅장함과 테크노적 모던함이 결합하는 스타일을 발휘해왔다.

한 가지 재미난 건,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의 완성도가 영화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것. 사운드트랙은 U2의 모던한 록에서부터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강력한 인더스트리얼, 심지어 독일 출신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과격함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이 O.S.T의 핵심은 테크노 주자들의 음악에 있다. 유명한 팻 보이 슬림은 자신보다 더 유명한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를 맞아들여 영화 내러티브의 핵이라 할 <일루미나티>라는 제목의 인상적인 빅 비트를 선보이고 있다. 케미컬 브러더스의 테크노는 늘 신선한 사운드를 제공한다. 거기에 미시 엘리엇이라는 걸출한 흑인 여성 래퍼의 절제되고 담백한 힙합 사운드까지 들을 수 있다. 그 밖에 딥 디시 레이블의 총아인 워싱턴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주자 BT, 신비로운 에스노 퓨전의 분위기를 테크노와 섞고 있는 델러리움,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흥겹고 인상적인 샘플링을 통해 유쾌한 파티 느낌을 만드는 베이스먼트 잭스, 모비,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2인조 레프트필드, 트립합과 정글을 오가는 그루브 아마다, 꼭 우리나라의 이박사 같은 느낌을 주는 보스코… 이름난 테크노 주자들이 다 모여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