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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추방된 영혼들의 축제
2001-07-26

영화음악 <슈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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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의 커플은 `미녀와 왕자` 커플의 변종이다.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끝에 야수가 미녀와 키스하는 순간 왕자로 변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야수는 결국은 왕자인 셈이다. 왕자로 이상화되는 존재의 내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그런데 <슈렉>의 구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야수의 상대인 미녀가 결국 추녀로 변하는 것이다. <슈렉>이 놀라운 건 전통적 이야기 구조의 완전한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뭘로 뒤집나? 대중문화적 코드를 동원하여 뒤집는다. 미녀는 핀업 걸이고 그녀를 흠모하는 난쟁이 왕의 거울은 TV이다. 슈렉의 짝인 당나귀는 수다쟁이 에디 머피이다. 이 모든 이미지들에 환멸을 느껴 늪지대에 칩거하는 자폐증 환자가 괴물 슈렉이다. 융의 아니무스-아니마 이론에 버금하는 이중 삼중의 원형적인 뒤집기는 결국, 아주 단순하게는 ‘안티 다이어트’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미국적인 혼란스러운 뒤집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로큰롤이다. 동화적 캐릭터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자폐적인 얼터너티브 록밴드 일즈의 음악이 흐르고 그들이 즐거울 때 캘리포니아의 스카 펑크밴드 스매시 마우스가 흥을 돋운다. 러퍼스 바인라이트의 <할렐루야>가 환희의 송가이며 밥 딜런의 노래를 제이슨 웨이드가 다시 부른 <You Belong to Me>가 은은하게 울릴 때 이 중세를 연상케 하는 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서정적인 순간에 돌입한다. 이 영화의 관점 자체가 그렇게 얼터너티브하다는 걸 음악들이 알려준다. 슈렉의 늪지대 앞에 모인, 백설공주에서부터 오즈의 마법사에 이르는 경이로운 동화 캐릭터들 모두가, 진저맨 쿠키를 잔혹하게 고문하는 파콰드의 성으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주류 현실세계에서 추방된 사람들이다. 그 추방된 영혼들이 잔치를 벌이는 슈렉의 정원은 언더그라운드 록클럽의 분위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거꾸로 로큰롤의 현재적 위상을 이 영화를 통해 점검할 수도 있겠다. 이제 로큰롤은, 아무리 얼터너티브한 것이라 한들 주류 대중문화의 명백한 일부이다. 얼터너티브한 로큰롤을 중심 음악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 중세 동화에서 경험하게 되는 혼란 중의 하나는, 못되고 반사회적인 말썽꾸러기의 이미지, 망친 아이의 이미지가 미국이란 나라에서는 주류 대중문화의 중심 이미지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들의 이미지를 동원해 주류문화의 이야기 구조를 뒤집고 있지만, 실은 그것이, 적어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 주류문화의 중심 방법이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해리 그랙슨-윌리엄즈와 존 파웰이 함께 맡았다. 해리 그랙슨-윌리엄즈는 <슈렉>말고도 <치킨 런>과 <앤츠> <티거 무비> 등의 만화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한 바 있다. 특히 존 파웰과는 <치킨 런>과 <앤츠>에서도 공동작업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슈렉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장난감 악기로 연주하는 듯한 애교있는 익살스러움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웅장함을 섞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미국 애들은 참 좋겠다. 이처럼 매혹적인 컴퓨터그래픽 캐릭터와 신나는 로큰롤이 결합된 만화를 자기말로 즐길 수 있으니. 슈렉이 파콰드의 성을 방문했을 때, 정적을 깨고 나타나는 장난감 병정들의 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때 흐르던 노래도.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를 동원하여 더빙한 그 노랫소리도 귀에 쟁쟁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야! 하고 탄성을 올리던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도 쟁쟁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