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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랄프 타우너의 콘서트
2001-07-26

이순의 미학, ‘삑사리’마저 아름다운

지난 7월17일, 서울 영산아트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의 주인공은 재즈 기타리스트인 랄프 타우너(Ralph Towner). 그의 콘서트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약간은 의아했다. 글쎄. 관객이 많이 올까. 현대 재즈 기타의 거장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의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초대권을 받아 온 사람들도 꽤 있었겠지만 공연장의 1층은 거의 꽉 들어찼다. 더구나 공연이 끝나고 랄프 타우너의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런 걸 보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좋고 깊은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들의 수가 예전에 비해 은근히 많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 보이지 않는 팬층이 한 집단의 음악계를 풍성하게 함은 물론이다.

무대에는 클래식기타 한대와 길드사의 명품 12 스트링기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중간에 국내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같이 연주한 것 이외에는 모두 랄프 타우너의 솔로 연주였다. 1940년생이니까 벌써 이순(耳順)의 나이에 이른 랄프 타우너는 깊이있는 음악적 경지로 여유있게 텅 빈 무대를 채웠다. 약간씩 이른바 ‘삑사리’가 나는 대목을 목격할 수 있었지만 그만의 독특한 재즈 어법이 담긴 기타 선율들이 들려주는 내면의 세계에 흠집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거리낌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빈 마이크의 볼륨이 올려져 있을 것을 걱정했는지 그 마이크의 잭을 손수 뽑아버리고 나서야 안심한 듯 다음 곡을 연주하는 세심함도 보여주었다.

랄프 타우너는 주로 최근에 낸 작품인 <Anthem>과 <ANA>에 수록된 곡들에 많은 레퍼토리를 할애했다. 이 앨범들도 ECM레이블에서 나온 것들이지만 그는 거의 30년 동안 줄곧 ECM레이블의 간판 주자였다. 독일사람 만프레드 아이허가 출범시킨 ECM은 미국의 관점을 재즈사의 ‘중심’으로 칠 때 일종의 얼터너티브 재즈를 제공해온 대표적인 레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 ECM의 음악적 성향은 정통 재즈를 중심으로 유럽 현대음악, 월드 뮤직의 영역을 퓨젼하고 있다. 1970년대의 한때에는 뉴에이지적인 성향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룹 오레곤과 함께, 또는 솔로로 ECM에서만 40장에 가까운 앨범을 낸 랄프 타우너는 ECM의 얼터너티브적 성격을 대변하는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클래식기타의 명인인 칼 샤이트에게 배움으로써 정제된 유럽적인 기타 프레이즈를 자신의 재즈적인 바탕에 혼합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룹 오레곤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의 음악적 전통 바깥에 있는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재즈 안에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한때 그는 월드 뮤직과 뉴에이지의 경계에 가까운 어떤 영역을 개척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번 연주에서 확인한 것은 그가 1970년대에 보여주었던 드라마틱한 사운드 혁신의 면모는 아니었다. 클래식기타 사운드는 물론이고, <Solstice> 같은 명반에서 강렬한 쇳소리로 불협의 느낌을 제공했던 특유의 12줄 기타 사운드도 이번에 들으니 많이 정제되고 깊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대안적 사운드를 찾아 방황하던 한때를 지닌 뮤지션의 내면이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비비 꼬이는 그 화성들이 긴 손가락을 타고 복잡하게 뒤척이고 또 뒤척였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