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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칸 마다 희.로.애.락
2001-02-16

<이웃의 야마다군>

굳이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친숙해진 이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 일본 애니메이션의 두 중견감독이 이끌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국내에 가장 많이 소개되고 또 유명세를 탄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 같은 ‘지브리’의 분위기는 결코 낙관적이거나 즐거운 편이 아니다.

지난 97년 <원령공주>가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세웠다고 하지만 그 이후 ‘지브리’는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아니, 발표를 했지만 ‘지브리’의 창설 이래 가장 처참한 참패를 맛봤다. 바로 미야자키 감독과 함께 ‘지브리’를 이끌고 있는 다카하다 이사오가 99년 큰 포부를 갖고 발표했던 대작 <호-호케쿄, 이웃의 야마다군>(ホ-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이하 <이웃의 야마다군>)이 저조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것이다.

<이웃의 야마다군>은 99년 여름 개봉해 겨우 8억2천엔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같은 해 개봉한 <포켓몬스터2>의 35억엔에 비하면 25%도 안 되는 실적. 더구나 <이웃의 야마다군>은 제작비가 23억6천만엔(약 260억원)이나 되는 대작이었기 때문에 수지면에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또 이듬해 열린 마이니치신문사 주최 ‘제54회 마이니치영화상’에서 애니메이션상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인랑>에 빼앗겼다. 작품성과 흥행 양쪽에서 항상 선두를 질주했던 ‘지브리’로서는 처음 겪는 뼈아픈 결과였다.

객관적인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웃의 야마다군>은 실패한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흥행성적이 처참했다고 해서 <이웃의 야마다군>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어져야할 그렇고 그런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동안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던 다카하다 감독의 새로운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애니메이션이다. 원래 <이웃의 야마다군>은 <아사히신문>에 연재되던 시사만화가 이시이 하사이치의 4칸 만화가 원작이다. 우리로 치면 <고바우>나 <두꺼비>, <왈순 아지매>처럼 일간지에 오랫동안 연재되던 장수만화인데 일본 서민들 사이에서는 “기사는 안 봐도 만화 때문에 신문을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널리 사랑받던 작품이다. 하지만 단행본이나 연재만화도 아니고 4칸 만화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지브리’ 내에서도 기획에 들어갈 때까지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시사만화는 4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결해야 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이나 복잡한 복선은 상상할 수도 없다. 첫칸에서 슬쩍 운을 띄우고, 둘째와 셋째 칸에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면, 마지막 넷째 칸에서 기발한 반전으로 독자를 웃기는 것이 전형적인 4칸 시사만화의 전개이다. 이를 위해 압축과 생략, 은유, 행간을 읽는 맛을 지녀야 하는 것은 필수. 전에도 <사자에상>이나 <간바레, 다부치군>처럼 4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만, 원작이 지닌 ‘촌철살인’의 맛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카하다 감독은 바로 이런 4칸 만화의 맛을 애니메이션으로 살리기 위해 무려 15만매의 그림을 사용했다. 그것도 셀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두 컴퓨터로 제작한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평소 배경으로 흘러가는 거리의 모습까지 정교하게 재현하는 극사실주의로 유명한 다카하다는 이 작품에서는 아예 웬만한 배경묘사는 생략하거나 간단히 특징만 잡는 과감한 생략을 시도했다. 이야기의 형식도 복잡한 얼개없이 8개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했다. 할머니 시이게, 아내 마쓰코, 아들 노보루, 딸 노노코, 그리고 가장인 다카시 등 5명의 가족이 등장하는 <이웃의 야마다군>에는 흔한 액션 장면 하나 없다. 시사만화와 거의 똑같은 캐릭터들은 물 흐르듯 유연한 움직임보다는 만화 속의 인물이 움직이듯 투박한 동작이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은 오히려 어느 작품보다 사실적이다. 이런 모습들은 일상사의 평범한 모습을 그린 이야기와 어울려 숭늉처럼 구수한 맛을 풍겼다. “우리 이웃에 야마다군이 있는 것이 너무 즐겁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일본사회가 잃어버린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다카하다 감독의 휴머니즘은 본토 관객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 어쩌면 올해 ‘실패한 대작’ <이웃의 야마다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작품에 대해 우리 관객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