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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의 태양을 머금은 소리
2001-03-13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후속 음반들

[Introducing…Ruben Gonzalez][Ibrahim Ferrer][Omara Portuondo] ...워너뮤직 코리아 발매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성공을 거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후속 음반들이 나왔다. 역시 ‘논서치’ 레이블에서 발매되었으나 왜 그런지 지난 앨범에서 프로듀싱을 했던 라이 쿠더는 기획자 명단에서 빠져 있다. 논서치 레이블은 그간 크로노스 콰르텟이나 존 존(John Zorn) 같은 이른바 아방가르드 성향으로 분류되는 뮤지션들을 주로 소개하면서 간간이 진보적인 월드 뮤직 성격의 음반도 기획하던 레이블이다. 이런 유의 음반을 기획하는 레이블치고는 유례가 없는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성공으로 단단히 한몫을 챙기기까지 한 것이 우리나라의 척박한 풍토에서는 부럽기조차 하다.

지난번에 나온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올스타 앨범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음반들은 올스타 멤버들의 개별음반들이다.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 보컬리스트 이브라임 페레, 여성 보컬리스트 오마라 포르투온도, 이렇게 세 사람의 음반이 나온 것이다. 이브라힘 페레는 74살에, 루벤 곤살레스는 무려 81살의 나이에 솔로 ‘데뷔 앨범’을 낸 셈이다.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줄곧 쿠바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대우받아오던 오마라 포르투온도만은 데뷔 앨범이 아니다.

모두 쿠바 음악의 진수를 담고 있는 것으로 봐도 좋겠다. 라이 쿠더가 ‘내 인생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치켜세웠던 루벤 곤살레스의 건반 터치는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명쾌하고 정확하다. 리듬 패턴을 구사하는 방식은 버드 파웰 같은 비밥 재즈 피아니스트들을 연상케 한다. 사실 40년대의 비밥 시절 디지 길레스피를 비롯한 흑인 뮤지션들이 쿠바적인 리듬을 받아들였을 때 아프로 쿠반식의 피아노 기법이 정초되었다. 루벤은 그 시절을 여전히 젊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자기 몸처럼 잘 알고 있는 멜로디들을 치는 오른손 역시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이브라힘 페레는 여전히 힘있는 목소리를 구사한다. 그의 목소리는 카리브의 태양을 머금고 있다. 또 오마라 역시 원숙한 쿠바 여성 보컬리스트의 최고 경지를 들려준다.

세 음반 다 지난번의 올스타 앨범보다 녹음이 좋아졌다. 스트링을 정교하게 동원하는 등 편곡도 세심해졌다. 그런데 느낌은 지난번보다 못하다. 거친 테이프 노이즈가 그대로 들렸던 지난 녹음은 정말 생생했다. 아니, 그야말로 ‘싱싱했다’. 그런데 이번 음반을 들으니 바야흐로 여기에도 돈이 투입되는구나 싶다. 좀더 국제적으로 프로모션하겠다는 의지가 음반 구석구석에서 보인다. 바로 거기가 기로다. 까딱하면 국제 대중음반 산업의 컨베이어 벨트에 비늘이며 아가미며 다 뜯긴 채 나중엔 통조림이 되어버리기 때문. 이 음악들이 내 귀에까지 닿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 그런 걱정까지 하는 건 좀 모순된 일일까.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