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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의 아들
이다혜 2017-02-20

<평양의 영어 선생님> 수키 김 지음 / 디오네 펴냄,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당신이 없이는 우리도 없다. <평양의 영어 선생님>의 원제는 그렇다. 부제도 있다.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저자 수키 김은 재미동포 소설가로, 2003년 첫 장편소설 <통역사>로 펜 헤밍웨이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통역사>도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말해보고 싶은 작품이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먼저 떠올린 이유는 역시 김정남의 피살 뉴스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내가 사는 곳이 휴전국가였지, 분단국가였지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모든 뉴스의 중심 화제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김정남이 아니라 그 아들 김한솔 때문에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다시 생각했다. 김한솔은 지금 마카오에서 중국의 보호하에 있다고 하는데, 그전에는 파리정치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2013년 장성택 처형 이후 그를 포함한 북한 출신 유학생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파리정치대학에 다닌다고? 공부를 잘하는 모양이다 생각했고(프랑스에서도 최고 엘리트 코스다), 왜 공부를 계속할 수 없나 딱하게 생각하다가, 북한에서 자유 없이 지내는 그 무수한, 내가 이름을 한평생 알 기회가 없을 사람들에 생각이 미쳤다.

그럼에도 그렇게 드물게 노출되는 고위층 자제들(대체로 유럽에서 유학을 하다가 갑자기 종적을 감춤으로써 존재가 발각되는)에 대한 상상은 이어진다. 정이현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수록된 <영영, 여름>에서는 일본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외국의 국제학교를 전전하는 와타나베 리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리에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라 한국말을 제법 하는데, 새 도시, 새 학교에서 메이라는 학생과 친구가 된다. 알고 보니 한국말을 한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느날 메이가 사라지기 전에는. 메이는 부모나 친지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들과 거대한 집에서 철저한 보호 아래 살고 있었다. 메이의 정체를 알게 된 리에의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한다. 한국은 한국인데 한국이 아닌 곳에서 온 메이.

<평양의 영어 선생님>은 수키 김이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개교 첫해에 교사로 근무했던 2011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수키 김은 김정일 사망이 발표된 2011년 12월19일 이튿날 평양을 떠났다). 논픽션임에도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대부분 바꾸었는데, 혹여나 보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쓰지 않겠다는 계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자이자 총장은 그녀를 비난했다. 잠입저널리즘에 대해 수키 김이 굳이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이 그녀가 아꼈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렸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2015년에 책이 나오자마자 읽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수키 김은 중국 국경마을에서 탈북자를 면담하고 글을 쓴 일이 있었다. 탈북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북한 사람들과 그녀의 학생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녀의 학생들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는 만수대거리와 통일거리의 집에 살고,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있던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고위층의 삶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남한이나 다른 세계 그 어디의 사람들과도 비슷할 수 없다. 수업 중에 ‘참 또는 거짓’ 게임을 하는 대목을 예로 들어보자. 한 학생이 참이나 거짓인 진술을 하고, 다른 학생들은 참인지 거짓인지 맞히면 된다. 한 학생이 일어나 “나는 작년 방학 때 중국에 갔다”고 하자 반 학생 전체가 웃음을 터뜨리고 “거짓!”이라고 외쳤다.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특권층이라고 하지만, 갓 대학에 들어온 젊은 남성들조차 머리에 흰머리가 있는 영양 결핍 상태다. 특권을 누리는 이들조차 이렇게 살고 있다면, 2500만명인 북한의 ‘일반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다. 그들이 바깥세상에 대해 알게 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 수키 김은 쓴다. “정부의 계획에는 나와 있지 않는 방향으로 학생들을 계몽해 간다는 것은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ps. 북한 거주 중인 작가가 원고를 어렵사리 반출해 출간된 반디의 소설 <고발>이 재출간되었다. 여행제한조치로 노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하고, 김일성 초상화에 경기하는 아기 때문에 난처해지고, 공개재판을 당하는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영어판을 <채식주의자>의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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