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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하루키가 읽히는 이유
이다혜 2017-02-27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하루키 랜드에는 다방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주택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누구나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다방. 거기에는 다방 주인과 손님이 ‘기분 좋다’고 느낄 만한 인테리어 소품이 놓여 있습니다.” “주인장과 같은 세대=베이비 붐 세대 비평가들은 다방에 붙어살며 게임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아보다가, 곧 다방의 게임 속에 ‘1970년’, ‘전공투’, ‘상실’, ‘소외’, ‘자폐’, ‘다른 세계’, ‘죽음과 재생’ 같은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 중 1부, ‘문학 거품의 풍경’ 첫 번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일본 문단에 아이돌이랄 존재가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적절한 시작점이 어디 있겠는가. <노르웨이의 숲>(1987)은 발간 1년 만에 350만부가 팔렸다. 그의 신작은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어,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는 초판 100만부(1, 2권 각 50만부씩)를 찍기로 했다가 30만부를 증쇄하기로 출간도 되기 전에 결정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그렇게 많이 읽히는가와 더불어, 왜 비평가들이 다들 논하고 싶어 했는가를,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는 어른의 논리와 어린이의 논리, 문학의 언어와 비문학의 언어, 여자의 발상과 남자의 발상, 그리고 무엇이 새롭고 낡았나에 대한 생각이 격렬하게 불꽃을 튀기던(혹은 튀기다 만) 시대였다는 게 사이토 미나코의 생각이다. 문학 거품의 풍경(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에 이어, 여성 시대의 선택(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를 논하는 이 책의 큰 장점은 유머감각이다. 사이토 미나코의 <취미는 독서> 역시, 잘 팔리는 책들이 말해주는 시대의 분위기를 잘 잡아낸 바 있었다. 특히, 양비론을 택하지 않고서도 해당 이슈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을 고루 전달하며 작가나 책에 대한 상을 그리게 하는 데 재능이 있는 작가. <문단 아이돌론>은,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한국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호의적인 평이 중점적으로 소개되는 상황을 보완한다.

최근 페미니즘 서적 출간 붐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우에노 지즈코에 대한 일본 내 평가도 흥미롭다. 우에노 지즈코는 딱딱한 학문적 세계도, 부드러운 저널리즘/칼럼의 세계도 잘 다룬다는 평가를 받는데, 후자쪽이 인기에 큰 역할을 한 방식을 이렇게 분석한다. 담론 내용의 부드러움이 음담패설과도 통한다고. <오만코가 가득>이라는 글에서 ‘오만코’(한국어로 ‘보지’에 해당한다)를 외치겠다는 표현은 언론의 주목을 끌어내기 좋았고, 나이든 남성 평론가들이 그런 모습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논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의 글에 대해 ‘광고 대리점 감각’이라는 평도 있다. ‘신남류’, ‘여자의 네트워크’, ‘엔조이스트’ 같은 조어를 많이 만들어파는 마케팅 같다고. 사이토 미나코는 우에노 지즈코의 작명 센스나 음담패설 센스는 뛰어나지 않다고 지적하며, 왜 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것을(대단히 뛰어나지도 않은 것을) 비판의 포인트로 삼을까 묻는다. “그들은 우에노의 언어 감각에 황당해하면서도 그 재치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녀의 경박함을 아끼는 듯이 보입니다.” 사이토 미나코는, 결론적으로 부드러운 글을 쓰는 우에노 지즈코를 떠받친 게 아카데믹한 글을 쓰는 우에노 지즈코였으리라 결론짓는다. 그녀의 글은 의외로 딱딱해서, 남자들이 감상하기에도 적합했다. 더불어, 논쟁에서 특별한 강점을 보여 안티 페미니스트 가운데 그녀를 이길 수 있는 논객이 없었다. 우에노 지즈코의 활약 이후 요시모토 바나나식의 여성성이 출현했다면 1980년대 일본의 ‘여성 시대’는 무엇이었나 묻지만, 그 또한 선발대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활약이었다고 평한다.

<문단 아이돌론>은 1990년대부터 일본 소설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물개박수를 칠 만한 흥미로운 갑론을박으로 가득하다. 동시대에, 혹은 시차를 두고 이 책 속의 작가들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경우라면, 어떤 이유로 한국에서 주목받았을까를 함께 떠올리며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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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읽히는 이유 <문단 아이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