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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미카엘라야, 하고 불러보았다
이다혜 2017-04-03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단원고등학교 2학년 10반에 재학 중이던 이다혜 학생은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다혜양은 참사 일주일이 지나 발견되었다. 다혜양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곳은 다 곱게 나왔는데 손가락 있는 데만 벗겨져 있어서, 살아 나오려고 애썼을 흔적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2학년 10반 21명 중 단 한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나와 이름이 같은 이다혜양을 잊은 적이 없다. 잊을 수가 없다. 고작 이름 석자 같다고 이렇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유가족이라고 불러도 될지 망설이던 때였다)들이 구조되지 못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팽목항을 걷는 영상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돌아오라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그 모든 감정이 담긴 울부짖음 같은 호명이 울음으로 뭉개져 밤의 팽목항을 울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느꼈던 것은 고통이었다.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불릴 때, 도로 떠오를 기약이 없이 캄캄하고 깊은 물속에 잠긴 느낌을 받은 사람은 나 하나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를 골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단편이 근사한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 나는 또 하나의 아는 이름을 발견했다. 단편 제목은 <미카엘라>. 딸과 엄마의 시점을 오가며 상황이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엄마는 교황의 방문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서울에 왔다. 딸은 내내 시큰둥하다. 엄마는 미용실에서 다리가 퉁퉁 붓다 못해 혈관이 튀어나온 채 단단해지도록 일을 해 딸을 키웠다. 엄마는 아는 언니네서 자겠다고 말한다. 딸은 바쁜 처지에 엄마가 무작정 올라온 일이 원망스럽다. 엄마는 딸을 세례명대로 미카엘라, 라고 부른다. 미카엘라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없자 아는 언니를 만났겠거니 믿어버리기로 한다.

여자는 미카엘라네 집에서 잘 거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었다. 입고 있는 한복은 빌린 것인데,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돈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여자는 자신이 똑똑한 미카엘라에게는 처지는 엄마였다고 생각한다. 딸은 전처럼 달려와 안기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미카엘라에게서 받은 사랑은 잊지 못한다. 미사를 보고 나서 미카엘라에게서 전화가 없자, 여자는 딸을 귀찮게 하지 않고 숙소를 찾기로 한다. 중식당처럼 생긴 모텔 숙박료는 주말이라고 8만원이나 한다. 찜질방에 가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선다.

미카엘라는 엄마와 아빠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 엄마의 성당 친구에게 전화해보니 “너희 집에서 주무신다고 하던데”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말을 듣는 미카엘라의 눈에, TV뉴스가 들어온다. 광화문 광장의 전경,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 부스, 그 부스 뒤의 텐트, 그 텐트 아래의, 엄마. 엄마 왜 저기 있지? 미카엘라는 뛰어나간다. 그리고 엄마가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 가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자는 찜질방에서 어느 노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교황 이야기로 말을 텄다가 갑작스런 노인의 눈물에 당황한다. 딸이 맞벌이를 해 손녀를 애지중지 키우던, 자매 같던 동네 친구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 생때같은 손녀가 그렇게 가버렸는데 그이라고 무슨 수로 견디겠나. 그애 마지막 모습을 보고 그이 딸은 하던 일도 다 팽개치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지.” 오늘도 그 친구를 찾으러 광화문에 간다고. 죽은 그 아이 이름을, 노인은 도무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저, 친구도 그렇게 불렀다는, 미카엘라, 라는 이름만 떠올릴 뿐. 미카엘라는 내 친구의 죽은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매년 기일이 되면 미카엘라의 이름을 적은 편지를 쓴다. <미카엘라> 속 두 미카엘라들에 대해 읽으면서, 304명의 이름 중 아는 이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발견하지 못할 한국인이 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엄마를 찾으러 광화문에 간 미카엘라가 엄마인 줄 알고 처음 말을 건 이의 얼굴 역시 엄마와 모든 면에서 비슷해 보이는 여자의 그것이다. “아가씨,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내 딸을 잊지 마세요. 잊음 안 돼요.” 이곳의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도 단 하나의 생명도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잊지 않는 것뿐이다. 최은영은 누구라도 아는 이름과 얼굴을 팽목항과 광화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들려준다. 엄마. 미카엘라. 서로를 발견한 순간의 호명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그만큼 슬프게 메아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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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라야, 하고 불러보았다 <쇼코의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