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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네권의 책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7-05-23

읽을수록 공간이 선명해지는 글이 있다. 5월의 북엔즈에서 소개할 네권의 책이 그렇다. <몬테로소의 분홍 벽>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미국의 목가> <벤트로드>까지, 제목에 서로 다른 지명이 담긴 네편의 소설은 특정한 지역과 공간이 지닌 분위기로 서사의 얼개를 잡아나가는 작품이다.

맑고 섬세한 문체로 사랑받는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몬테로소를 동화의 무대로 삼았다. <몬테로소의 분홍 벽>은 꿈에서 아름다운 분홍 벽을 보고, 그 벽을 직접 보기 위해 낯선 도시로 향하는 고양이의 사연을 담았다. 글과 함께 제시된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이야기에 활력을 더한다. 열기구를 타고 여행을 하는 연인, 행선지를 까먹을 만큼 매력적인 성격을 소유한 사자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뭇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실제 몬테로소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모든 이야기가 사실로 여겨질 만큼 환상적이다.

나치 독일에 맞서는 저술 활동으로 ‘바이마르의 양심’이란 호칭을 얻은 독일 작가 토마스 만. 그는 독일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괴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그가 생을 보낸 바이마르를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주인공이자 60대 노부인이 된 로테가 1816년 바이마르를 방문해 괴테와 재회했던 실재 사건에 허구를 덧붙여 재구성한 소설이다.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9년에 완성된 만큼, 작가는 괴테의 문학세계를 말하면서 독일이란 국가의 특성들을 진지하게 고찰한다.

미국적인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에 도취된 1960년대 미국을 그려내기 위해 뉴욕 근방의 소도시 뉴어크로 향한다. <미국의 목가>는 모두가 우러러보던 삶에서 일순간 몰락한 한 남자의 사연을 담았다. 여러 작품에 등장한 바 있는 작가의 문학적 분신, 네이선 주커먼이 화자로 등장해 영웅의 몰락을 담담히 회고한다. 가죽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뉴어크의 분주한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미스터리 소설계의 신성으로 통하는 미국 작가 로리 로이는 자신이 자고 나란 캔자스시티, 그중에서도 벤트로드로 불리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데뷔작을 썼다. 소설 <벤트로드>는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남자와 어딘가 뒤틀린 가족들, 배타적인 마을 사람들이 한마을에서 공존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세상과 떨어진 시골의 작은 마을은 서스펜스와 추리극에 더없이 적합한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