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벤트로드>
김수빈 사진 백종헌 2017-05-23

<벤트로드> 로리 로이 지음 / 하현길 옮김 / 비채 펴냄

1967년, 디트로이트에서 대규모 흑인 폭동이 일어나자 아서 가족은 귀향을 결심한다. 25년 전, 누나 이브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 한번도 발길을 들이지 않은 고향은 굽어진 도로가 있어 ‘벤트로드’라고 불리는 곳이다. 고향에서 아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건 어머니와 누나 루스, 누나의 남편 레이. 아서 가족이 마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꺼림칙한 일들이 일어난다. 늦은 밤 이들이 모는 차로 돌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얼마 후엔 마을에서 한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범인으로 의심하는 사람은 아서의 매형, 레이였다. 이브와 한때 연인 사이였던 레이는 25년 전 이브가 죽었을 때에도 용의자로 지목된 바 있다. 레이가 심각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이고 가정 폭력을 일삼기까지 하자 아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레이의 존재를 위협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는다. 오직 캐릭터, 배경, 플롯을 아름답게 직조해 독자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소설을 쓸 뿐이다.” 작가 로리 로이의 말대로 <벤트로드>는 속도감을 강조하는 추리물 혹은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에선 조금 벗어나 있다. 대신 수십년 동안 쌓아온 사연을 안고 있는 폐쇄된 마을과 마을에 녹아든 사람들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공을 들인다. 흥미로운 사건들을 계속 등장시키는 대신 인물들과의 관계 설명에 집중하며 작은 균열들을 만들어낸다. 느리고 꾸준한 보폭으로 만든 균열들은 후반부에 이르러 놀라운 반전으로 다가온다. 미국 문학계의 신성, 로리 로이는 이 작품으로 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1960년대 전후 미국 지방 도시의 공기를 담아내는 미스터리 소설들을 발표하며 고딕소설계의 한 지평을 다져나가고 있다. 고딕소설의 새로운 전범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 지난해 <그의 목소리에 죽다>로 에드거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딕소설계의 신성

시커멓고 커다란 형체가 도로를 가로질러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굵직한 팔과 둥근 등짝이 보였다. 두 다리로 뒤뚱거리며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엄마, 조심해요!” 대니얼이 소리쳤다. 엄마는 운전대를 힘껏 오른쪽으로 틀었다. 차는 시커먼 배수로를 향해 미끄러지다가 겨우 멈춰 섰다. 대니얼과 에비의 몸이 앞으로 홱 쏠렸다. 형체는 배수로로 굴러떨어졌다. 텀블위드들이 통통 튕기며 차를 향해 다가오다가 돌기둥 사이의 철조망에 걸려 차곡차곡 포개졌다.(12쪽)

루스 고모는 트랙터가 진입로를 가로지르며 굴러가자 두팔로 에비를 감쌌다. 아빠가 대니얼에게 절대 깎지 말라고 했던 웃자란 잔디를 트랙터 바퀴들이 먼저 뭉개고 지나갔다. (중략) 조너선이 제자리로 돌아와 트랙터 엔진을 끄자, 머리를 숙이고 있던 루스 고모가 벌떡 일어서서 심호흡을 했다. “녹색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에비가 물었다.(388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 도서 <벤트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