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지독한 하루>
김은미(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7-07-18

<지독한 하루>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생후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두개골이 부서진 채 병원으로 실려온다.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한 증거가 온몸에 남아 있다. 아기 엄마는 지적장애로 인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담당 의사인 저자는 아기를 학대한 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드디어 나타난 아기 아빠는 ‘무언가 어긋나고 틀어진 느낌’의 섬뜩한 눈빛을 쏘아보내며 자신이 동거인일 뿐이라고 상황을 뭉갠다. 아동 학대로 경찰서에 신고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막막함을 느껴야 했던 이 사건에, 저자는 ‘악마를 만나다’라는 제목을 단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저자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을 마주한다. 저자가 조금이라도 판단을 잘못하면 환자는 금세 위험에 빠지므로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구토하다 피가 나왔다는 취객은 복부 장기에 문제가 없어 잠시 쉬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식도가 파열된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조직폭력배 우두머리가 칼에 찔려 실려왔는데,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향해 부하들이 어깃장을 놓고 주먹까지 휘둘러 결국 경찰을 불러야 했다. <지독한 하루>에서는 이런 답답하고도 긴박한 사건들이, 피부에 착 달라붙는 듯 감각적이고 날렵한 문장으로 묘사된다. 응급실에서 종종 마주칠 수밖에 없는 소방대원의 노고에 대한 기록, 중증외상 환자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 등이 책의 무게를 더한다.

저자는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가능한 한 삶의 영역으로 환자들을 잡아놓으려 치열하게 애쓴다. 프롤로그에서 의사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긋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수술 및 진단에 대한 의학적인 용어들과 지식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볍지 않은 단상들과 어우러져 풍부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만약은 없다>에 이어 남궁인 의사가 병원의 풍경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언제나 고뇌하는 순간

잠시 지혈되길 기다리는 동안 뒤편에서 방금 죽은 환자의 보호자들이 몰려와 곡을 하기 시작했다. 곡을 하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사람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대체로 높은 음계와 비슷한 언어로, 10여명의 중년 여성과 남성들은 각자 그들의 애통한 감정을 부르짖었다. 누가,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도 남은 사람들은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이 곡을 할 것이다. 앞으로도, 또 그 앞으로도. 나는 방금 한 의료행위로 인해 이 곡소리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앞으로 다가올 참담한 미래를 잠시 그려보았다.

다시 주사기를 가져와 두 번째로 동맥 채혈을 시도했다. 곡소리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소리는 하얗고 고독한 중환자실 배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내가 지금 맡은, 아직 살아 있는 환자의 혈관은 이번에도 주사기를 비껴나갔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팔목 조직에 바늘을 꽂은 채 휘저어 간신히 동맥을 찾았다.(74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도서 <지독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