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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경애의 마음>
김송희 사진 백종헌 2018-07-17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펴냄

마음이라고 쉽게 말하고 쓰지만, 사실 마음에는 형체가 없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순간 자칫 허황된 형용사와 쓸모없는 부사만 나열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슬펐다 정도로 간단히 설명하긴 아쉽다. 우리에겐 슬픔과 기쁨 사이 쪼개어진 마음들이 무수히 많기에. 김금희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은 뭉뚱그려진 마음을 실낱처럼 보여준다. 공상수는 요령부득의 회사원이다. 국회의원 출신의 아버지 덕에 입사했다고 의심받는 무적의 낙하산 요원. 관행보다는 규칙을 따르길 선호하고, 요령이라고는 새우젓 눈깔만큼도 없어 미싱을 팔러 가면서 실타래를 가방에 넣고 가는 팀원 하나 없는 팀장대리. 공상수에게 회사에서 마지못해 내준 팀원이 바로 박경애 주임이다. 파업 실패 후 회사로 복귀해 만년주임을 달고 있는 우리의 ‘경애씨’. 파르스름하게 머리를 깎고 파업농성에 나섰던 경애씨, 56명이 죽은 호프집 화재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고등학생 경애, 경애는 화재로 사랑하는 친구 E를 잃었고, 이 사건은 경애에게 상흔을 남긴다. 그때 E는 많이 괴로웠을까. 그가 좋아했던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러 갔다면 우리는 그 영화를 좋아했을까. 살아남은 경애는 대학도 가고 다시 연애도 하고, 쓰라린 실연도 경험한다. 힘든 일을 겪을 때 경애는 마음을 죽이고 무기력에 빠진다. 그때마다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에 메일을 보낸다. ‘언니’는 경애에게 짤막한 답메일을 보낸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경애에게 답신을 준 ‘언니’는 여자가 아니라 공상수씨였지만…. 서툴고, 귀엽고 애틋한 나의 경애와 상수. 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기가 만든 인물을 사랑하고 온전히 책임질 줄 아는 작가의 위로 덕분에 우리의 상실도 조금은 치유될 것이다.

산다는 것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 옥수수뿐이었다.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 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 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고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 것.(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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