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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문지 에크리>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최성열 2019-08-13

김현 <사라짐, 맺힘>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광호 <너는 우연한 고양이> / 문학과지성사 펴냄

산문, 에세이, 수필… 다 비슷한 글을 일컫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주는 느낌은 제작기 다르다. 문학과지성사의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는 에세이보다는 산문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 일상생활이나 체험한 것을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글이 있는가 하면 소설과 시의 중간쯤에 자리한 것 같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산문도 시리즈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에서 ‘에세이는 자신의 영역이 지정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에크리는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쓰다’라는 뜻인데, ‘문지 에크리’가 쓰다를 강조하며 산문집을 엮은 이유는 작가들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현의 책은 작고한 그가 쓴 수많은 문학 비평과 잡문들 중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의 글을 묶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보다는 프랑스 문예에 정통한 70년대의 불문학자를 떠올릴 때 더 적합한 글들이 산발적으로 엮여 있다. 얼마 전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의 <여자짐승아시아하기>도 꼭 읽어야 할 산문집이다. 김혜순은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시하기’라고 칭하고 여기에 여자하기, 짐승하기, 여행하기를 더했다.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라고 덧붙였다. 여행하면서 나에게 익숙한 제도와 나라 밖으로 나갔지만 여전히 나이고, 시인이고, 여자이고, 짐승인 사람. ‘하기’를 통해 오히려 그것이 되지 않기, 나를 밀어내고 낯선 감각을 만나는 것을 김혜순 시인은 ‘글쓰기’라고 명명한다. 이 밖에도 김소연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광호 평론가의 <너는 우연한 고양이>까지 총 4권의 산문집이 시리즈 발간의 첫 책으로 꼽혔고 앞으로 이제니, 진은영, 나희덕, 정영문, 한유주, 정지돈 작가의 산문이 소개될 예정이다.

단상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고 싶다. 매일 나무 우거진 공원길을 산보하고 싶다. 오후 7시면 카페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맥주를 마신다. 그래 네가 그토록 원하던 모든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한가?(김현 <사라짐,맺힘>(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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