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비틀거리는 소>

아이바 히데오 지음 /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펴냄

역 앞 선술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두명의 피해자는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수의사와 폐기물 처리업자. 범인이 어설픈 영어로 “머니, 머니”를 외쳤다는 목격자 증언에 따라 이 사건은 외국인에 의한 강도 살인으로 단정되어 초동수사가 진행되고 이내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주위로부터 탐문 수사, 신변 조사의 달인, 사냥개 같은 형사라는 평가를 받는 경시청 수사1과 다가와에게 이 사건이 재배속된다. 수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지만 승진하기보다는 현장에 남아 미해결 사건을 전담하는 계속수사반에서 일하는 다가와는 늘 하던 대로 상점가를 발로 뛰며 탐문 수사에 임한다. 한편 지방 상권을 잠식하고 정재계를 이용해 몸집을 불려 경제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대형 쇼핑몰 옥스마트의 비리를 조사하는 쓰루타 기자의 에피소드 역시 살인 사건과는 다른 방면에서 전개된다.

이렇게 형사의 살인 사건, 기자의 산업 비리라는 서로 다른 사건이 별도의 것처럼 전개되지만 ‘소’라는 접점을 만나며 두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주택지도를 가지고 모든 번지를 훑으며 모든 사람을 만나 탐문하는 것이 수사의 매뉴얼이라고 믿는 우직한 다가와 형사의 등장으로 첫장은 시작된다. 처음은 정의로운 베테랑 형사의 전형적인 추리물로 여겨지지만 뒷장을 넘길수록 소설은 경찰 소설의 성격을 띠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

경제부 기자 출신이라는 작가의 경력을 모르고 읽어도 노련하게 산업 전반을 훑고 유통과 원유 가격, 가격경쟁과 마진율, 식품 업계와 가공육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밑바닥까지 틈입하는 문장에는 거침이 없다. 대형 유통업체가 어떻게 입점사의 고혈을 뽑아 수익을 얻고 몸집을 키워 독과점 형태를 만들며, ‘동네를 망치는지’,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자본주의의 이면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일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작가가 그려둔 인물과 사건 구조도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뚜벅뚜벅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비틀거리는 소에 다다를 것이다.

디플레이션의 화신

“싸구려 식품에 길들여진 소비자에게 섬세한 미각 따위는 없어.” “옥스마트의 매장을 봐! 반액 세일을 하자마자 몰려들어 줄을 서는 멍청이가 얼마나 많아. 그들이 맛을 구분할 수 있겠나!” 쓰루타는 떨리는 손으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저렴하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다는 소비자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실태를 너무 모릅니다.”(207쪽)

예스24에서 책구매하기
씨네21 추천도서 <비틀거리는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