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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1931 흡혈마전>
진영인 2021-01-19

김나경 지음 / 창비 펴냄

과거의 여학교 소설들이 현대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억압적인 규율의 틈새로 학생들이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갈망하기 때문이리라. 그 갈망에 상상을 입히면 흥미로운 시대물이 탄생한다. <1931 흡혈마전>이 그런 소설이다. 1931년의 식민지 조선, 운 좋게 학업을 지속하게 된 학생 희덕은 현모양처를 키우고자 하는 여학교의 교육 이념을 벗어날 길을 꿈꾼다. 그런 희덕 앞에 새로운 기숙사 사감 계월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작은 마을에 별안간 등장한 소녀 일레븐이 초능력자였던 것처럼 <1931 흡혈마전>의 계월도 심상치 않은 존재다. 그녀는 흡혈귀이고,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기억을 삭제하는 능력을 발휘할 줄 안다. 우연히 계월의 비밀을 알게 된 희덕은 계월을 쫓아다니고, 그렇게 모험극이 시작된다. 희덕의 모험을 따라가며 독자는 한때 국사 시간이나 혹은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접한 사료의 조각들이 오밀조밀하게 맞춰진 경성의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조선인 학생들을 혐오하는 일본인 선생, 은근히 연민의 마음을 보이는 서양 기독교인 교장. 부유하고 말쑥한 일본인 동네와 대조적인 꾀죄죄한 변두리의 조선인 동네. 경성 시내에는 전차가 다니고 모나카와 빙수 같은 디저트와 백화점이 유행이지만 태극 무늬는 검열당하는 시절. 한편 산자락에는 상해로 군자금을 보내는 비밀 모임이 숨어 있다.

십대 학생에 대해 계월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쓸데없이 활기가 넘치고, 떠들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울거나 웃고, 겁이 많고, 한편으론 겁이 없고, 귀찮게 굴었다.” 활기 넘치고 떠들썩하다는 표현은 이 소설에도 딱 어울린다. 학교의 비밀 장소에 불온서적을 숨겨놓고 읽는 친구 경애와 남몰래 독립운동에 가담한 경애의 오빠 일균, 인간 아닌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는 무당 백송까지 희덕의 모험에 함께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끈다. 어쨌거나 뱀파이어조차 그 시대의 여성에게는 결혼을 벗어난 자유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존재다.

기도

“하나님에게 부디 경성에 있는 흡혈마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간청하는 동안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기도인지 의문이 들었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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