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JIFF Daily > 제 21회(2020) > 2020 전주국제영화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15편 리뷰
씨네21 취재팀 사진 백종헌 2020-05-28

더이상 봄날의 전주가 아니다. 무려 4개월 동안의 대장정이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가 5월 28일부터 9월 20일까지 심사상영과 온라인 상영(웨이브) 그리고 장기상영회(극장)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관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 지침을 따르면서 관객과 창작자(감독, 제작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씨네21>은 올해 전주영화제 상영작을 미리 보았고, 그중에서 추천작 15편을 엄선했다. 온라인과 장기상영회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와 서울에서 차례로 진행될 전시회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를 미리 보기 위해 전주 팔복예술공장을 다녀왔다. <씨네21>은 이번 특집을 시작으로 영화제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다양한 전주영화제 기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영화제와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해 우리가 발견한 것>

<그해 우리가 발견한 것>

The Year of the Discovery

루이스 로페스 카라스코┃스페인┃201분┃2020년┃국제경쟁┃장기상영작

환경오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 도박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 젠더 문제를 짚는 사람, 과거 시위 현장을 회고하는 사람, 실은 독재자 프랑코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 스페인 카르타헤나의 어느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종다양한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카메라는 담배를 쥔 손과 음식을 먹는 입가를 클로즈업하면서 카페에 모인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다가 어느새 그들의 대화 속에빠져들게 만든다. 진솔한 대화에 일방적인 화자도, 일방적인 청자도 없듯이, 영화는 이중분할 화면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동시에 비춘다. 때때로 분할화면 한쪽에는 무심하게 그릇을 닦는 카페 점원이 등장하기도 하고,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이가 비치기도 한다. 카페에서 흩어지는 말들을 듣는 사람이 꼭 마주 보고 앉은 이만은 아니라는점을 카메라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이들의 대화는 불꽃 튀듯 빠르게 진행되고, 노인들은 성마르게 불평을 터트리는데, 사람들의 말과 말을 엿보는 재미가 크다. <그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거대 역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복잡한 심상을 깊게 들여다보는 수작이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틈이 없다.

<미끼>

<미끼>

Bait 마크 젠킨┃영국┃89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더이상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 시대지만, 최근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포함해 필름 작업이 영국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국 작가, 감독 및 프로듀서 데뷔상을 수상해 영국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평가받은 마크 젠킨 감독의 <미끼> 또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16mm 수동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다. <미끼>는 휴양지가 된 영국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마틴과 스티븐 형제의 갈등을 그린다. 마틴은 매일 바다로 나가 물고기와 바닷가재를 잡아 마을 사람들에게 팔면서 생계를 꾸리는 반면, 형 스티븐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배에 관광객을 태우는 관광 사업을 한다. 외지인에게 집까지 팔아넘긴 스티븐에 대한 마틴의 증오심은 크다. 게다가 주차와 돛에서 나는 소음 문제가 불거지면서 마틴과 스티븐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진다. <미끼>는 두 형제의 사연을 통해 최근 영국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휴양지 개발 문제와 그로 인해 불거진 현지인과 외부인의 갈등을 첨예하게 다룬다. 16mm 특유의 거친 입자와 인물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숏은 표현주의영화를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형식은 이 영화가 다루는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습한 계절>

<습한 계절>

Damp Season 가오밍┃중국┃107분┃2020년┃국제경쟁┃장기상영작

중국 남부 경제도시, 선전. 동과 주안은 권태기에 접어든 커플이다. 배우가 꿈인 동은 오래된 테마파크에서 경비원으로 일한다. 주안은 꽃가게에서 꽃꽂이와 배달을 한다. 어느 날 동은 테마파크에서 해고되고, 주안을 도와 꽃배달에 나선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새로운 관계가 생긴다. 동은 매일 호수를 찾아오는 여성 유안과 가까워지고, 주안은 매일 자신에게 꽃을 배달하는 중년 남성 롱에게 이끌린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동과 주안의 관계는 무더운 선전 날씨만큼이나 찌뿌듯하고 모호하다. 영화는 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마지못해 유지하는 관계를 답답하게 그려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관계에 관심을 내비치는 동과 주안의 욕망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습한 계절>은 다큐멘터리 <파이 구>를 연출한 가오밍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다.

<비디오포비아>

<비디오포비아>

Videophobia 미야자키 다이스케┃일본┃88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배우를 꿈꾸며 연기 학원에 다니는 젊은 여성 아이는 학원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자신의 성관계 영상이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본 아이는 큰 충격을 받고 경찰서로 향한다. 도움을 청해보지만 촬영자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익명의 다수가 비디오를 시청했을 거란 걱정이 아이를 엄습한다.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성범죄에 얽힌 문제들을 직시한다. 아이는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하진 않으나, 담담한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만으로도 그의 공포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지라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통해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고발한다. <밤이 끝나는 위치>(2011), <야마토>(2016) 등을 연출한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신작이다.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

The Shepherdess and the Seven Songs

푸시펜드라 싱┃인도┃99분┃2020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아름다운 여성 라일라는 양처럼 순한 남편과 결혼한 후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 이주해 지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복잡한 정치 사정으로 군경이 불쑥불쑥 산자락의 마을에 들이닥쳐 감시하는 일이 일상이 되고, 라일라는 군인 무스타크가 속삭이는 유혹의 말을 듣게 된다. 남편 탄비르가 무스타크의 욕정을 눈치채지 못하자, 라일라는 무스타크를 피하기위해 꾀를 낸다. 늦은 밤 무스타크와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도둑이 든 것 같다며 자고 있는 탄비르를 깨워 약속 장소에 데려가 두 남성이 대면하도록 만드는 것. 라일라는 남편이 그녀의 상황을 깨닫도록 덫을 놓아 무스타크와 심리게임을 벌이는데, 어느 순간 그녀 스스로도 무스타크와의 위험한 욕망에 매혹된다.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는 결혼, 이주, 후회, 믿음, 유혹, 깨달음, 금욕의 노래라고 이름 붙여진 7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보통의 결혼 생활을 요약한 7개의 열쇠말은 라일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길이 된다. 14세기 카슈미르 지역 전설을 바탕으로 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영화로 지혜롭고 용감하게 상황을 빠져나는 라일라에게 가혹한 장면을 허용하지 않는 미덕을 갖췄다. 2020년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담쟁이>

<담쟁이>

Take Me Home 한제이┃한국┃99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동성 커플인 은수와 예원은 한집에서 생활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타인 앞에서 조심스러운 은수와 달리 예원은 적극적으로 은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은수는 걸을 수 없게 되고, 동승한 언니 은혜가 사망하면서 조카 수민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같이 살게 된 은수, 예원, 수민은 크고 작은 마찰 끝에 퍼즐처럼 서로의 빈자리를 단단히 채워주는 관계로 거듭난다. 세 사람은 바다로 여행을 가는 등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지금과 같은 행복을 유지하기를 바라지만, 국내 법 체계 내에서는 가족의 형태로 삶을 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는 은수, 예원을 통해 관객이 동성 커플에 대한 현 사회의 제도적 한계를 목도하고,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자연스레 질문할 수 있도록 한다. 동성 커플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담쟁이>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물의 고민에 주목한 기존의 퀴어영화와 구별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함께할 미래를 염원하는 세 인물을 보노라면 이들이 어떠한 제약 없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란히 걸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한제이 감독의 데뷔작이며 경기도 다양성영화 제작투자지원작 및 경기 인디시네마 배급지원작이다.

<사당동 더하기>

<사당동 더하기33>

Daldongne 33 Up 조은┃한국┃124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에 살던 정금선 할머니 가족을 4대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7살이던 막내 손자 덕주가 가족을 꾸리고 마흔이 될 때까지 꼬박 33년의 시간을 좇았다. 가난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핏줄까지 스며들어 증손자 손녀에게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모습을 담았다. 둘째 손녀 영주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던 것처럼, 그의 딸 지현과 지선도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노래방 도우미로 취업한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약자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보고하는 작품이다. 사회학자 조은의 다큐멘터리로, 정금선 할머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그의 다큐 <사당동 더하기22>와 책 <사당동 더하기25>로 나온 바 있다.

<오바케>

<오바케>

OBAKE 나카오 히로미치┃일본┃62분┃2019년┃국제경쟁┃장기상영작

한 사람이 초록빛이 무성한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우주로 보이는 LCD 패널이 화면에 등장하고, 별 두개가 나타나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영화의 공간은 일본 국립영화아카이브로 이동하고, 별 하나가 “얼마 전 <풍경>이라는 독립영화를 인상적으로 봤다”고 칭찬한다. <풍경>은 <오바케>를 만든 나카오 히로미치 감독의 전작으로, 2018년 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오바케>는 별 두개가 화면 밖 소리로 등장해 나카오 히로미치 감독이 <오바케>를 만드는 과정을 중계하듯이 보여주는 영화다. 애니메이션, 무성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식을 자유롭게 오가는 <오바케>는 자기반영적인 독특한 메이킹 필름이다.

<홈리스>

<홈리스>

Homeless 임승현┃한국┃83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갓난아이 우림을 키우는 한결과 고운은 찜질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얼마 되지않는 전 재산은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당했고, 고운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림은 찜질방에서 다리를 다친다. 한결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고운은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일하지만 우림의 병원비 내기도 막막한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결국 세 사람은 한결이 자주 배달을 가던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결은 할머니가 미국으로 여행 가면서 잠시 집을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하지만, 고운은 한결의 말이 어딘가 미심쩍다. <홈리스>는 현세대의 가장 큰 화두인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기성세대에 기대지 않고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절망적인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어렵게 이룬 세 가족의 평화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안정된 삶에 대한 욕망과 양심의 끊임없는 충돌이 박정연 배우와 전봉석 배우의 얼굴 위에 선명히 드러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This is Cristina 곤잘로 마자┃칠레┃83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크리스티나와 수잔나는 학창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크리스티나가 별거 중이던 남편과 재결합할 기미가 보이자 수잔나가 이를 강하게 말린다. 화가 난 크리스티나는 수잔나와 크게 다투고 다시는 그녀와 만나지않을 것임을 통보한다. 연락이 끊긴 사이 수잔나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탕감해주느라 바빴고, 크리스티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했다.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두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다시 의지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는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다. <판타스틱 우먼>(2017)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던 곤잘로 마자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아담>

<아담>

Adam 마리암 투자니┃모로코┃101분┃2019년┃국제경쟁┃장기상영작

만삭의 임신부 사미아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고향을 떠나 떠돌고 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가정부 일을 할 테니 잠자리를 부탁해보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허탈하게 길가에 앉아 있던 사미아가 신경 쓰였던 여성 아블라는 밤이 되자 그를 데려와 하룻밤 재워준다. 도움을 준 아블라 역시 거리에서 음식을 팔며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상황. 하룻밤만 자고 집을 떠나기 로 한 두 사람의 약속은 사흘 밤을 지나고 일주일을 넘기게 된다. <아담>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리얼하게 그린 잔잔한 드라마다. 분주한 모로코 거리와 먹을 것을 준비하는 두 여성을 담아내는 화면이 시네마틱해서 돋보인다. 모로코 출신 마리암 투자니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9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빛과 철>

<빛과 철>

Black Light 배종대┃한국┃107분┃2020년┃한국경쟁┃장기상영작

때때로 운명은 가혹하다. 중앙선 침범 사고가 발생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운전자는 세상을 떠났고, 피해자로 추정된 운전자는 식물인간이 되어 기약 없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시간이 지난 뒤 가해자의 아내인 희주(김시은)는 고향에 돌아와 공장에 취직하며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 하지만 운명이 그의 발목을 계속 붙잡는다. 희주는 피해자의 아내인 영남(염혜란)이 같은 공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과 우연히 가까워지면서 희주는 그날 남편에게 생긴 사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희주와 영남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사고의 진실을 알아가면서 고통과 불행의 근원이 상대방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 가정불화, 우울증 등 사고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통해 희주와 영남, 두 여성 또한 같은 처지임을 드러낸다. <빛과 철>은 <계절>(2009), <모험>(2011) 등 단편영화를 연출한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보드랍게>

<보드랍게>

Comfort 박문칠┃한국┃73분┃2020년┃코리안시네마┃온라인

‘옥’(玉)자는 양반이 쓰는 이름이라 순옥은 안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맏딸의 귀한 이름을 순옥 대신 순악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일본 군인들은 순악 대신 사다코, 데루코, 요시코, 마쓰다케라고 불렀다. <보드랍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던 김순악이 일본군에 끌려간 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군산, 여수를 떠돌고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대한민국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주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로 따라가는 김순악 할머니의 삶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험난하고 억울했고, 그래서 보는 내내 울컥하게 된다. 카랑카랑 울리는 생전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그가 직접 그린 꽃그림은 여백이 많아 보드랍다.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Dispatch; I Don’t Fire Myself 이태겸┃한국┃113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퇴직을 거부해 ‘면벽 배치’됐던 정은(유다인)은 해안가에 있는 전기 송신탑 수리 하청업체에 파견된다. 서울 본사에서도 그렇고 하청업체에서도 그렇고 정은은 그저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하청업체에 파견되어서도 그녀에게 주어지는 일과 역할은 없다. 본사에서 정은의 월급을 책정하지 않자, 하청업체에서는 직원 수를 줄여야 하나 고민하고, 밤에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기 때문에 낮에 졸기 일쑤인 막내(오정세)가 잘릴 위기다. 노동문제를 단순히 피해자 서사로 그리지 않고 ‘노노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맥락을 잘 표현한 영화다. <혜화, 동>의 배우 유다인이 서사를 온전히 이끌며 뭉클한 감정과 눈물을 이끌어낸다. 단편영화 <복수의 길>과 <소년 감독>을 연출한 이태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KBS 콜렉숀: 익숙한 미디어의 낯선 도전'

2019년에 방영돼 화제를 모은 KBS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트-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이하 <모던코리아>)를 스크린으로 보는 기획전이 열린다. <모던코리아>는 1973년 창립한 이래로 공영방송 KBS가 축적해온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영상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로, 드라마와 예능, 뉴스 등 여러 장르의 푸티지를 감각적으로 혼합해 호평을 받았다. 작품은 88서울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요구와 통일 문제를 비롯해 해태 타이거즈 흥망, 대우그룹 해체, 삼풍백화점 붕괴, 수능제도 도입과 휴거 소동을 다룬다. ‘KBS 콜렉숀’ 기획전은 온라인으로 상영되지 않으며, 장기상영회를 통해 극장에서만 상영한다. KBS는 전주영화제 초청을 기념해 영화제 기간 동안 KBS 1TV를 통해 <모던코리아>를 재방송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