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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장르영화제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07-08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18년 8월 위촉된 지 만 3년 동안 두번의 영화제를 코로나19와 치르게 됐다. 하지만 이같은 변수는 일찌감치 디지털 액터나 글로벌 IP에 대한 꿈을 꾸며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했던 그에겐 영화와 영화제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도전을 꾀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천영화제는 OTT 플랫폼 웨이브와 손잡고 온오프라인 상영을 겸한다. 7월 8일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신철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3년 전 집행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당시 얘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프로덕션은 지속적인 수익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유지가 너무 어렵고 항상 불안하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지속적인 수익이 가능한 모델을 만들거나. 아니면 전우의 시체가 된다. 그래서 지난 20여년간 한국영화의 다음 모델을 만들겠다고, 브루스 리(이소룡)가 디지털 액터로 출연하는 <드래곤 워리어>라든지 <로보트태권V>의 다른 모델을 마련해보려고 했다. 처음엔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안 한다고 했다. 나는 못한다고. 그런데 영화제가 국제적인 커넥션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그렇다면 영화제는 잘 모르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부천영화제와는 예전에 인연이 있었다. 제1회 영화제 개막 전, 이장호 감독님이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있을 때 홍보 등을 어시스턴트했다. 그래서 이렇게 또 인연이 닿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제 입장에서도 <은행나무 침대> <구미호> <엽기적인 그녀> 등 다수의 흥행영화 제작자였던 신철 집행위원장의 합류가 새로운 변화를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만든 영화들이 부천에 딱 맞는다고 생각을 했다더라. 그러고보니 예전에 임필성 감독이 “선배님 영화는 전부 장르영화다”라고 한 적도 있다. (웃음) 사실 내가 예술성 높은 영화들을 계속 해온 건 아니다. 어린 생각에 예술가인 양하는 게 싫었고 거부감이 있어서 영화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영화제가 생긴 지 20년도 훨씬 넘었고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오히려 나처럼 거리를 두고 있던 외부자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든다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출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하려면 또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 영화제도 행정도 잘 몰라서 처음엔 적응하느라 되게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첫해엔 프로그래머들과 말이 안 통해 많이 싸웠다. 내가 영화제를 잘 모르고, 영화 제작은 일반 관객과 전쟁하는 일인데 여긴 전혀 다른 전쟁터를 상대로 하고, 타깃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까 투닥투닥했다. 그런데 이제 영화제를 조금씩 배워가면서 그런 논쟁도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지난 3년간 영화제에 대해 어떤 것을 배웠나.

=영화제는 숨어 있는 진주를 발견해 세상과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이자 모든 영화제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와 차별화되는 부천영화제만의 독특한 포지션이 있다. 기본적으로 부천영화제는 덕후들의 영화제, 마이너들의 영화제다. 서브컬처는 늘 표현, 장르, 미디어 등 경계를 두드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천영화제 초기의 대단했던 스피릿이 빛바랜 느낌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다시 빛나게 할 수 있을까,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영화제 초기의 스피릿을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들에게 “장르영화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유럽의 초기 장르영화제와도 개념이 많이 달라졌을 거다. 컨셉을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계속 제안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르영화제’의 개념이 있겠지만 외부에서 보면 영화엔 전부 장르가 있는데 도대체 장르영화제가 무엇인가 싶을 수 있다. 호러와 멜로가 섞이고, 모든 장르들이 매시업되는 시대다. 이제 관객은 매시업되지 않으면 아예 안 본다. 그러니 장르영화제에 대한 개념 정의도 다시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두번의 영화제를 개최하게 됐다. 2년 연속 온라인 상영을 겸한다. 이런 형태가 부천영화제의 마니아틱한 정체성과 어울린다고 보나.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지난해 함께한 왓챠나 올해 함께하는 웨이브 같은 국내 OTT들이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왓챠가 선택하고 있는 길이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의 목표는 4위라고 하더라. 자금 여력이 있는 웨이브는 CJ가 처음 출발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예전의 서울랜드나 코스트코처럼 다양한 확장을 꿈꾸는 플랫폼이라 보이는데, 아무쪼록 앞으로 글로벌 OTT들과 싸워야 하는데 잘해내서 그들을 이겼으면 좋겠다.

-부천영화제에서 트는 영화는 아무래도 오프라인에서 같이 소리 지르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요새 아이들은 게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바타로 소통하는 데에 익숙하다. 트래비스 스콧의 온라인 콘서트를 1천만명 넘는 사람들이 봤다. 앞으론 온라인 영화제에서 아바타가 리액션을 하면서 같이 영화 보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영화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 OTT 플랫폼의 성장과 코로나19로 인한 산업의 변화 등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갈 듯한데.

=한국영화가 탄생하고 김대중 정권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탄생한 후 지금 2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굉장한 성과를 거뒀고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전쟁을 해야 한다. 영화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다들 고민하고 있지만 이를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 갈등이 생길 수 있어서 쉽지 않다. 하지만 다음 세대 한국 영상산업을 생각한다면 지금 강제로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일본영화계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영화계에 큰 역할을 했던 <씨네21>도 함께해야 한다. 도대체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뭔가. 소설은 단편·중편·장편·대하 소설·웹소설 모두 소설인데 6시간짜리 영화는 영화, 6시간을 6부로 쪼개면 드라마라고 한다. 영화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진위 관할이고, 드라마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관할이다.

-확실히 영화와 시리즈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부천영화제는 이미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 시리즈나 드라마 <SF8>을 상영한 적 있다.

=그렇게 드라마에도 영화제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영화와 TV드라마 프로덕션은 완전히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드라마로 성공한 PD들이 자꾸 영화를 하려고 했다. 영화는 관객을 극장에 가둬놓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데 TV드라마는 딴짓하면서 보기 때문에 그러한 관람 환경의 차이를 굉장히 부러워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차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드라마를 보다가 일시정지해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와서 언제 어디서든 집중해서 볼 수 있다. 지금 2시간 러닝타임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제작·배급·극장을 가장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형태를 찾아가며 자리 잡은 시스템 때문이다. 극장에서 보는 2시간짜리 영화만 영화라고 하는 건 기득권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처음 돈을 받고 영화를 상영했을 때 파리에서 20분짜리 영화를 하루 20회 상영했다. 움직이는 그림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moving image)을 영화라고 했던, 그때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다. 우리가 지금 영화에 갖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OTT란 영상 스토리텔링을 보는 하나의 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가상현실(VR)도 유튜브 영상도 모두 영화가 될 수 있다.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영화는 결국 기술의 아들이다. 이젠 테크놀로지가 들어가 있지 않은 문화를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괴적 기술(destructive technology, 이전의 기술보다 더 낮은 혜택을 주지만 훨씬 더 싼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어서 종전의 기술과 비교할 때 혜택과 비용의 차이가 더 큰 기술.-편집자)이 들어오면서 영화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게임을 포함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엄청난 시장을 갖고 있다. 인공지능이 영화 연출도 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감독이나 배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제페토나 VR 챗 같은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부천 괴담 프로젝트’는 다양한 영상 스토리텔링을 위한 원천 콘텐츠(IP) 구축을 위한 것인가.

=부천시가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창의도시 중 하나다. 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 84개국 264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서 괴담을 수집해 영상화할 수 있다. 호러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는 장르다. 지금 영화는 한편 찍으려면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 메타버스 핵심 기업인 유니티 같은 회사와 이야기할 때 제발 글 쓰는 것처럼 혼자서 영화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돈이 많이 들면 투자의 노예, 배급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영화를 한편도 못 찍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사실 선배들이 사기 친 거나 다름없다. 웹소설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굉장히 반기고 있다. 리얼 타임 엔진이라든지 여러 기술이 합쳐지면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일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영화제는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는 탤런트들을 건져내는 일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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