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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짐페이스’ 엄정화…영화든 음악이든 좋아해서 잘하고 싶고, 그렇기에 더 어렵다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1-08-14

“ ‘짐페이스’와 ‘엄정화’ 중 어느 한쪽이 먼저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음부터 엄정화씨를 염두에 뒀다. 제천이 고향인 영화인이며 무엇보다 가수와 배우 두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기 영역을 갖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조성우 제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제17회 제천영화제는 음악과 영화 분야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를 선정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짐페이스’(JIMFFACE)를 신설했고,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엄정화를 선정했다. 제천영화제는 엄정화의 작품 중 <싱글즈> <오로라 공주> <호로비츠를 위하여> <베스트셀러> <댄싱퀸> <미쓰 와이프> 총 6편을 상영하고 관객이 엄정화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짐프 라이브 토크-짐페이스’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엄정화를 보다 다채롭게 조명하기 위해 엄정화를 주제로 한 특별 전시도 영화제 기간 준비되어 있다.

1993년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와 해당 영화의 O.S.T <눈동자>로 배우와 가수의 길에 동시에 첫발을 내디딘 후, 엄정화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해운대> <댄싱퀸> <미쓰 와이프>를 거쳐 최근작 <오케이 마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로 분해 스크린 앞에 섰다. <댄싱퀸>의 정화가 그러했듯,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걸그룹 환불원정대로 데뷔 무대에 올랐고 곧이어 디지털 싱글 《호피무늬》를 냈다. 자신의 ‘열정’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이뤄놓은 성취에 안주하는 대신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언제나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가수이자 배우로서 새로운 ‘엄정화’를 그려낼 준비를 하는 사람. 제천영화제의 막이 오르기 전, 엄정화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이맘때 주연작인 <오케이 마담>이 개봉했고 올해는 제천영화제에서 배우 엄정화의 출연작들을 상영할 예정이다. 2년 연속 영화들과 함께하는 여름을 보내게 됐다.

=정말 좋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가 작업에 들어가기 굉장히 어려운 시기이지 않나. 그런 와중에 영화제에서 작품들을 상영하게 돼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제천영화제의 1대 짐페이스로 선정됐다.

=처음 영화제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되게 반가웠다. 예전에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제천영화제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장소가 제천이라 애정이 많이 가고 국내 유일의 음악영화제라는 것도, 영화제가 17년이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짐페이스 섹션 상영작이다. 영화를 떠올리면 극중 피아노학원 선생님인 지수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바로 연상되는데, 생각해보면 그동안 미디어에서 엄정화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는 걸 많이 접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지수 역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유하 감독님이 지수 역에 날 추천했다고 권형진 감독님이 이야기하시더라. 이런 감성을 잘 표현해줄 배우는 엄정화라고 하셨다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지수보다 경민의 이야기가 커서 누가 해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근차근 들여다보니 둘의 이야기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겠다고 했다. 피아노가 가장 큰 숙제였고, 크랭크인까지 남은 시간 동안 슈만의 <Träumerei> 등 지수가 쳐야 하는 곡들을 전부 외웠다. 당시 음악감독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고, 그때 산 피아노를 아직도 갖고 있다.

-지수는 스승의 연주회에 다녀오거나 제자인 경민이를 유학 보낸 뒤 화나고 슬픈 감정을 연주를 통해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면에선 그게 더 좋았다. 경민이를 떠나보내는 신은 지금 떠올려도 먹먹한데…. 그 신에서 지수가 첫 음을 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 않나. 지수는 경민이 하면 항상 떠오르는 곡이 <Träumerei>였을 거다. 그래서 <Träumerei>를 치면서 감정이 굉장히 고조됐다. 피아노가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동시에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줬다.

-재능과 성공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지수처럼 음악적 재능에 관해 고민한 적이 있나.

=당연하다. 그 고민은 항상 한다. 영화에서 지수는 피아니스트로서 화려한 삶을 사는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나. 그만큼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지수의 꿈이자 목표였던 거다.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나 역시 지수처럼 내 꿈을 향해 여전히 고민하며 달려가는 중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지수가 경민의 성장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댄싱퀸>은 정화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중 정화 역은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처음부터 이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하자고 해서 기다리던 차였다. 나는 꿈이란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여전히 내 꿈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할 만큼 지금도 열정으로 가득하다.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뚫고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어서,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댄싱퀸>의 정화에게 공감이 갔다.

-<댄싱퀸>에서 정화가 <슈퍼스타K>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 있다. 과거 <슈퍼스타K> 심사를 본 적도 있는데 입장이 바뀐 경험을 해보니 어땠나.

=심사할 때 출연자들을 보며 ‘나는 이런 자리에 절대 못 나간다’고 생각했다. 보면서 얼마나 긴장되던지. (웃음) 거기서 당당히 노래하고 춤추고, 결국 뽑힌 분들이 정말 대단한 거다. 오디션 신 촬영 자체는 재밌었다. 심사위원석에 길이랑 효리가 앉아 있었고 같이 연기한 라미란 배우도 너무 웃겼다. 춤춘 뒤에 숨차 하는 걸 더 오버스럽게 표현했던 기억이 나는데 재밌게 나왔다.

-턴하는 장면을 특히 많이 연습했다고.

=그 장면이 쉽지 않아서 열심히 연습했다. <댄싱퀸>에서 함께 데뷔한 멤버들은 다들 나이가 있기 때문에 10대 아이돌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팝적인 요소를 더 많이 넣고, 춤에도 재즈를 가미했다. 그 신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직접 안무 선생님도 추천해가며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다.

-남편인 정민(황정민)이 가수 활동을 말릴 때 “내 꿈은 꿈이 아니냐”라고 반박하던 장면은 유독 울림이 컸다.

=정화가 자신의 꿈에 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정화의 그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아이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잘 지낼 수도 있지만, 정화는 그 삶만큼이나 가수라는 꿈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그 꿈을 놓을 수 없는 정화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이 됐다. 황정민 배우가 화를 잘 내줘서 몰입하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웃음)

-극중 데뷔 무대에 섰을 때 처음 무대에 섰다는 일종의 설렘과 긴장감도 있었을 것 같다.

=긴장보다는 좋은 감정이었다. 실제로 네명이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을 때 모두가 같은 기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느끼는 기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 전부 잘 표현되길 바랐다.

-지난해 <놀면 뭐하니?>를 통해 환불원정대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했다. 음악방송 무대에서 내려온 뒤 긴장하며 방송을 시청하던데.

=노래를 부를 때 목 컨디션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다. 하지만 그 밖의 것들은 정말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항상 솔로로 활동하다가 멤버들과 같이 무대를 꾸미니 든든하고 좋더라.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에 신곡 <호피무늬>를 냈다. <호피무늬> 무대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엄정화는 언제나 트렌디하고, 가장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많다.

=<호피무늬>는 환불원정대를 준비할 때 받은 곡이었는데 스케줄상 <DON’T TOUCH ME>만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곡이 마음에 들던 차라, 올해가 가기 전에 혼자서라도 <호피무늬> 녹음을 하자고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화사와 함께하게 됐다. 선구자적인 역할이라는 평은 너무 좋다.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내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더없이 기쁜 일이다.

-선호하거나 추구하는 음악이 있나.

=명확히 정해놓기보다 그때그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려고 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예전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이 계속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영화 취향에 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데 최근 재밌게 본 작품이 있다면.

=<더 파더>와 <노매드랜드>가 기억에 남는다. 아카데미나 칸국제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된 작품은 꼭 챙겨 보는 편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전작에선 그렇게 웃거나 춤추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작품에서 보니 귀엽기도 하고 멋있었다. 엔딩 신의 슬픈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노매드랜드>도 구성 자체가 너무 좋았다.

-제천에는 언제 내려갈 예정인가.

=영화제 개막식 때 간다. 정말 오랜만에 가는 거다. (웃음) 제천에서 고1 때까지 살아서 구석구석 추억이 많다. 특히 의림지는 매년 소풍 장소였다. 많이 변했을 텐데 그 변화를 마주할 순간이 기다려진다.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심사위원으로서 영화제에 가는 것과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에 가는 건 확실히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심사하러 갈 때는 영화를 꼼꼼히 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다. 이번엔 좀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지금껏 내가 해온 영화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기 때문에 어떤 불안감 없이 편안하게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제에서 다른 좋은 작품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특별히 기대하는 영화가 있나.

=제일 보고 싶은 건 개막작인 <티나>다. 티나 터너를 워낙 좋아해서 꼭 보려 하고, 마찬가지로 여성 뮤지션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빌리 홀리데이>도 보고 싶다. 그 밖에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더 스파크스 브라더스>와 예전에 재밌게 본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고. 마지막으로 한편 더 꼽자면… <싱글즈>? (웃음) 보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다.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부터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댄싱퀸> <오로라 공주> <해운대>, 최근작인 <오케이 마담>까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항상 새롭고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영화의 경우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

=배우들은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 흥미롭게 읽히고 캐릭터가 욕심이 나면 한다. 최근작인 <오케이 마담>은 이야기가 재밌고 무엇보다 액션을 해보고 싶던 차에 만난 반가운 작품이었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됐고, 잘 만들어지면 정말 재밌는 하이재킹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에 선택했다.

-앞으로 어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나.

=가능한 한 여러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장르를 불문하고 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 작품의 아주 작은 파트를 맡아 연기해보고도 싶고. 남자배우들에 비해 여자배우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니, 여자배우들과 같이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엄정화를 떠올리면 ‘음악과 연기 사이에서 오랜 시간 균형감 있게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필모그래피상으로도 아주 초반부터 가수,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동시에 시작했다.

=처음엔 가수 활동을 먼저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유하 감독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에 캐스팅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가수이자 배우로서 데뷔하게 된 거다. 생각해보면 초반엔 가수 활동에 마음이 더 기울었던 것 같다. 앨범 활동으로 너무 바빴고 어린 마음에 ‘난 가수니까 연기는 좀 못해도 된다’ 싶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 초에 내가 나온 작품을 보는데 연기를 너무 못하는 거다. 그래서 1994년, 95년에는 계속 연기만 했다. 뭐든지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은 시기였고. 감사하게도 그럴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덕분에 현재까지 가수와 배우라는 두 길을 꾸준히 걸어올 수 있게 됐다.

-가수와 배우로서의 삶의 즐거움은 어떻게 다른가.

=확실히 다른데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연기는 할수록 힘빼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매번 고민이 많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연기도 음악도 너무 힘이 들어가면 안되는데, 할수록 더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좋아해서 잘하고 싶고, 그렇기에 더 어렵다.

-2011년에 진행한 한 인터뷰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엄정화의 10년 후를 묻는 질문에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열심히 길을 닦고 있지 않을까. 50대가 되어서도 자신을 믿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세대의 중심에 서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 인터뷰를 읽으며 예언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웃음)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웃음) 정말 어른들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 인터뷰를 한 게 벌써 10년 전이라는 거 아닌가.

-이 자리에서 엄정화의 10년 후를 다시 한번 예언해보면 어떨까.

=일단 많이 늙어 있지 않길 바라고, (웃음)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에너지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항상 꿈꾸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배우 엄정화가 좋아하는 음악영화를 소개해준다면.

=첫째로 <사운드 오브 뮤직>. 내가 가장 처음 봤고,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음악영화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쯤 봤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음악영화들은 가능하면 무조건 보려고 했다. <왕과 나> <물랑루즈> <시카고> 같은 뮤지컬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한국 뮤지컬영화인 <영웅>도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 그럼 나도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다. 잘할 것 같지 않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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