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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그러니까 넌 나에게 숙제가 되지 마
윤덕원(가수) 2022-06-09

얼마 전 중간고사 기간이 끝났다. 이번 학기도 이제 후반부에 들어섰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에 출석 수업에 참석하고 과제나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니, 그럴 것이다.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출석 수업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기말고사도 원래는 출석을 해서 본다고 하는데, 지난 학기 마지막에야 출석 시험이 가능했다. 그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출석 수업은 줌을 이용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된다. 원래 녹화된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과정이라 잘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나마 중간에 있었던 출석 수업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슬아슬했다. 이번 학기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벌써 몇 학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하고 싶었다. 첫 학기에는 중간 이후에 바빠지면서 전혀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기말 과제 제출 날짜를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다음 학기는 나름 더 열심히 해보려 했지만, 한 과목만 남기고 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학기를 시작하면서는 약이 올랐다. 학기 초에 억지로 시간을 더 내어 수업을 들었다. 권장 진도보다 빠른 속도로 들었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하고 두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이 정도면 학기가 끝날 때까지 2회 공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중간고사 전에 바빠지면서 벌어놓은 시간은 사라졌고, 중간 과제 마감도 간신히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바쁜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항상 마음에 들게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부족하게 과제를 제출해도 괜찮은 걸까 생각하다가 마감을 놓친 과제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글 쓰는 것을 어려워 하는 터라 교수님은 가볍게 내주셨을 과제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잘 모르기 때문에배우고 공부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고 찾아보고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핑계를 대자면 주입식 교육으로 유년기를 보내며 정답을 답안 중에서 고르는 것만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어릴 적 했던 대학 생활도 비슷했던 것 같다(그래서 음악을 하는 길로 온 건지도 모르지만).

꼭 과제를 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을 할 때도 그렇다. 노래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연주하는 일은 나에게 보통 다음과 같다. 1. 메모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2. 그것들을 이어서 노래로 만들고 3. 멤버들과 의논하면서 곡을 완성한 다음에 4. 음원을 발표하고 5. 또 앨범을 낸다. 그러니까 일단 최소한 5가지 단계를 거치고 나서 음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속에는 나 스스로의 가장 강력한 안티팬들이 존재한다.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 평생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꼰대 상사들이 너무 많다. 이대로 노래를 만들어도 될까. 이대로 발매해도 될까. 이대로 앨범에 실어도 될까.

오래 일을 한다는 것이 더 좋은 것을 만드는 것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는 눈이나 듣는 귀는 예민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의 실무진은 비슷한 역량을 가진 채로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상사들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첫 앨범을 낼 때는 노래 비슷한 것을 만들면 그냥 발표했었는데. 3집을 앞두고는 열심히 잘 만들어놓은(그리고 꽤 괜찮은) 7곡을 단지 ‘처음에 생각했던 컨셉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내버려두고 새로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4집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 것 같다. 다만 3집 때는 4단계에서 멈췄다면 지금은 2단계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

그래서 중간 수업 과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아쉬운 부분은 포기한 채로 제출했다. 60점 정도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냉정하게 보면 55점 언저리일 것 같다. 대학원에서 직장과 병행해서 공부하며 조교도 하고 있는 친구의 말로는 그래도 뭐라도 내야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잘했다고 한다. 내가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에 대해서도 그렇겠지. 60점만 맞자고 생각을 하면 곡 발표도 더 쉽게 할 수 있을까? 잘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마무리를 못한 노래들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질 때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음악이라는 숙제를 서두르기로 했다. 아니 숙제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교 과제를 내고 나서 신기하게 다시 수업을 들을 마음이 생긴 것처럼.

<방학숙제> _뮤지컬 <내츄럴 본 헤이터> O.S.T

아무 말없이 내 곁을 떠났어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라던데

순서만 바꾸면 전혀 다른데

죽음도 그렇게 한순간이데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

영원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그런 건 위로가 될 수 없어

돌아서면 짓누르고

눈감으면 생각나는

끝나지 않는 그런

방학숙제 같아

Don’t be a matter to solve

그러니까 넌 나에게 숙제가 되지 마

Just be a start to revolve

뜨거운 여름 안에 나를 혼자 남겨두지 마

방학숙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