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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평론가의 '범죄도시2'

거울의 영화

인물은 세상의 악을 모두 물리치겠다는 욕망을 분출하고, 관객은 주먹의 효과음에 도취된다. <범죄도시2>를 보는 데는 어떠한 상상력도 필요하지 않다.

마석도 형사(마동석)는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으러 베트남으로 떠난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바탕인 영화인데 분위기는 유쾌하다. 슈퍼히어로급 인물이 주인공이니 두려운 마음이 생길 틈이 없다. 유머러스함은 되레 늘었다. 마 형사가 용의자와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타지라서 ‘진실의 방’을 찾지 못한 그는 음향과 분노라는 새 방식을 구한다. 그가 탁상을 두드리면 엄청난 음향이 울려 퍼진다. 어디서 공룡이 다가오나 싶은 소리, 그 분노의 소리에 기겁한 용의자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범죄도시2> 제작진은 전편과 비교해 훨씬 강력한 사운드 효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듯하다. 그 결과, 리얼리즘 영화가 속편에 와 <원펀맨> 수준의 판타지로 변했다. 마동석은 짧은 시간에 스스로 장르를 일군 배우다. 관객이 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바와, 그가 연기하는 인물이 발휘하는 효과는 거의 일치한다. 거대한 몸이 내뿜는 세디센 힘, 이어 그의 주먹에 나뒹구는 악당들. 이러한 공식을 염두에 두더라도 <범죄도시2>의 영화적 가치는 게으른 쪽에 가깝다. 옛날 게임처럼, 마석도는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린다. 걸림돌은 전부 주먹으로 내려치고, 그것을 실감하도록 어마어마한 음향효과가 뒷받침한다. 그러니까 이건 음향 포르노그래피다. 인물은 세상의 악을 모두 물리치겠다는 욕망을 분출하고, 관객은 주먹의 효과음에 도취된다. <범죄도시2>를 보는 데는 어떠한 상상력도 필요하지 않다.

몸의 자신감, 그것이 전부

<라운드 미드나잇>(1986)의 주인공은 이런 말을 듣는다. “넌 너무 거칠어서 인정받지 못하는 거야.” 1950년대를 사는 재즈 연주자에겐 거친 스타일이 문제일지 모르지만, 2022년 한국에서는 거친 남자가 인기를 휩쓰는 중이다. 이상한 일은, 마동석이 초기에 출연한 스릴러의 성격이 근작들보다 훨씬 야만적이라는 점이다. 만듦새가 서툴기는 해도 어두운 인물의 뒤틀린 심리에 접근한 작품들인데, 관객은 그런 마동석에게 전혀 관심을 베풀지 않았다. 이후 마동석은 거칠면서 복잡미묘한 성격의 인물보다, 비슷하게 사나우면서도 단순한 궤도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 인물의 현재형이 <범죄도시2>에 있다. 이전까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구실이 있었다면, <범죄도시2> 속 마 형사의 행동에서는 더이상 이유를 찾기 힘들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사, 상관에게 골칫거리인 형사는 사실 흔한 캐릭터다. 그렇다면 그런 유형의 대표격인 현대 영화- <폴리스 스토리>와 <리쎌 웨폰> 시리즈의 형사는 마동석의 선배일까. 일견 비슷하지만, 성룡과 멜 깁슨은 보통의 신체를 지닌 인간을 연기했다. 악당과 싸우다 다치거나 고통을 받는,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음을 전제로 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행동은 의지나 노력으로 불리겠지만, 절대자처럼 구는 마 형사의 행동에는 위에 썼듯 욕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영화의 역사에서 액션으로 일가를 이룬 배우들은 덩치로 승부하지 않았다. 덩치형 액션배우의 이미지는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활약한 1980년대에야 익숙해진 편인데, 그들조차 극중 액션에서 기댄 것은 신체가 아닌 미국산 무기들이다. 즉, 몸으로 싸우는 거대한 몸뚱이로서 마동석은 액션영화의 세계에서도 유난하다. 영화 내내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데도 다치기는커녕 어떤 육체적 고통도 느끼지 않는 마 형사는 신체적 황홀경을 안겨준다. 습관처럼 악당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는 그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서 기가노토사우루스와 기어코 싸워 이기는 티라노사우루스에 다름 아니다. 몸의 자신감의 결정체인 그는 자기보다 강한 인간은 두고 보지 못한다. 그게 그의 행동을 부른다.

영화가 둘러대는 마 형사의 행동 이유는 다르다. 마 형사의 거침없는 행동에 난처해진 반장이 왜 그러냐고 따지자, 그는 얼핏 숭고한 일성을 내뱉는다. 그의 목소리는, 위험에 처한 누구라도 한국인이라면 그의 구조를 받을 것이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범죄 도시는 세계로 확장되고, 마 형사는 한국인을 지키는 세계경찰에 오른다. 그러나 모두를 구하겠다는 호언장담은 곧 모두를 구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변명에 불과하다. <범죄도시2>에서 그가 온갖 난장판을 벌인 끝에 구해낸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그가 찾아낸 시체는 ‘아버지의 재산으로 외국에서 흥청망청 놀아나던 남자’였고, 그가 납치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뒷거래하는 사채업자’였으며, 그가 범인에게서 기어코 돌려받은 돈은 ‘사채업자의 두 번째 부인’에게로 한푼도 빠짐없이 전달된다. 추악한 존재라고 해서 보호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지하세계와 연결된 사채업자는 한국 범죄 조직을 현지로 보내는 급의 거물이다. 마 형사가 한국과 베트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가며 구한 것은 그런 자이고, 보호한 것은 그런 자의 돈이었는데, 왜 영화를 본 관객은 통쾌하다고,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할까. 마 형사가 우리 편이라는 괴상한 동질감에서 오는 착각이 나는 신기하다.

손해는 생각하지 않는 시대

이쯤에서 영화의 도입부를 기억해보자. 웬 불한당이 동네 슈퍼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는 중이다. 뒷문으로 들어간 마 형사는 한방으로 범인을 제압한다. 그 과정에서 좁은 가게의 물건은 바닥에 흩어지고, 가게 주인의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재벌 수준 사채업자의 목숨을 구하고 거액을 지킨 것에 비해 영세한 가게는 난데없이 봉변만 당한 셈이다. 가게의 손해는 누가 보상해주는가. 마석도와 강해상(손석구)의 일전으로 누더기가 된 버스는 누가 복구하는가. 둘이 싸울 동안 주변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는가. 그들은 범인 체포 현장을 목격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럴싸한 격투 현장에 환장하는 것인가. 영화는 그런 것들이 마땅한 지불 비용인 양 어떤 신경도 쓰지 않는다. <범죄도시>에서 마 형사는 어지러운 현장을 떠나며 “많이 망가졌으니까 정리 좀 해줘”라고 말하고, 반장은 ‘시설물 손해배상’ 요구 앞에 난처해진다. 그런 말, 그런 배려는 <범죄도시2>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행태를 보다 얼마 전에 뽑힌 대통령의 웃기는 제스처를 떠올렸다. 유세 때 ‘어퍼컷’ 자세로 재미를 본 그는 아직도 그 맛에 취해 간혹 그걸 시전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듣기로 술 취한 검사들이 즐기는 놀이라는데, 강한 남자의 폭력성을 주고받는 자들의 그림이 머릿속에 선하다. 그런 인간형의 자랑질인 어퍼컷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를 향해 날리는 것일까. 대답을 듣지 않아도 마 형사의 세계경찰론과 다르지 않을 터, 나는 5년 내에 그의 주먹이 나를 위해 사용될 일 따위는 없을 것임을 단언한다. 그런 나라에서, 어떤 형사가 미치도록 주먹질을 해대는 영화가 이렇게 잘 통하고 환영받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범죄도시2>는 거울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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