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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그게 무엇이든, 세상의 일부가 되어"
김소미 2022-06-09

-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H. 민)의 기억을 탐구하는 태도에 있어 <애프터 양>은 영화에 관한 영화로도 읽힌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소설 <양과의 작별 Saying Goodbye to Yang>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주목한 지점은 무엇이었나.

= 내게는 영화 만들기가 기억이 작동하는 과정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찍는 과정이란 무언가를 촬영하면서 특정한 몇 가지 버전을 시험한 뒤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 하나를 골라내는 작업이 아닌가. 와인스타인의 소설은 양의 기억을 생략한 채 아버지의 회상만을 제시한다. 바로 그 지점에 숨겨진 기회가 있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양의 기억을 새롭게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기억 장치를 디자인했다. 그 안을 탐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 ‘기억’이라는 개념에 관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서 작업에 임했나.

= 인간은 같은 기억이라도 머릿속에서 매번 다르게 떠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나. 기억한다는 것도 결국은 각자가 믿는 감정과 견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 카이라(조디 터너스미스)의 기억 속에 양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는 양이 울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이라 자신이 슬퍼져서, 양에 대한 과거의 기억도 좀 더 슬픈 형상으로 재연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은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내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찍을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지금 녹화해두면 앞으로 이 기록을 평생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겠지만, 만약 찍지 않고 그저 내 머릿속에 저장해 둔다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억은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자라날지도 모를 일이다.

- 인간의 기억법과 기계(카메라)의 기억법, 또 나아가 둘 사이의 간극이 어떻게 영화의 눈(키노-아이)과 만나는지 <애프터 양>은 인상적으로 제시한다. 가족이 사진을 찍는 장면, 제이크(콜린 파렐)-카이라 부부가 양을 떠올리는 대화 장면들이 그렇다.

=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에선 인물들의 맞은편에 카메라가 있고 그 옆에 안드로이드 양이 있다. 실재하는 기록이며 언제든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카메라, 양의 기억 장치는 비슷한 데가 있다. 양과 제이크가 차에 대해, 양과 카이라가 나비에 대해 대화하는 신에서 인간만의 기억 방식을 색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치 누군가 자기 기억의 장소로 접속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느껴지도록, 기억이 층층이 충돌하거나 반복되는 느낌으로 묘사했다.

- 감독이 직접 편집했기에 편집술의 고유함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언급한 차 신, 나비 신의 흐름은 단정하게 나열되는 양의 기억과 달리 매우 주관적이고 약간 혼란스럽다. 촬영 과정에선 어떻게 접근했나.

= <애프터 양>의 대부분의 장면들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정적인 숏을 추구했고 촬영 분량별로 구체적인 방안이 정리돼 있었다. 언급한 두 신은 달랐는데, 그건 감독인 내가 편집자였기 때문에 후반작업에서 몽타주를 재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능한 시도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편집할지 알았지만, 결과물이 어떤 모습일지 동료들에게 완벽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촬영감독에게 신 전체를 글라이드캠으로 한번에 촬영하면서 테이크마다 조금씩 움직임을 다르게 가달라고 요구했다. 배우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편집할지 알리지 않은 채 테이크마다 약간의 변화를 주라고만 부탁했다. 그렇게 몇번 찍고 나니 편집본이 제대로 작동할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 꽤나 마술적인 과정처럼 들린다. (웃음)

= 그런가? 이번엔 확실히 즉흥적인 데가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대강 이러저러한 재료가 필요하다는 계획을 세운 뒤, 그 재료들이 적당량 구해지면 그걸 자르고 손질해서 ‘음, 이 정도면 좋은 라멘이 나오겠군’ 하고 점치는 식이랄까.

- 제이크 가족이 사는 집 역시 전작 <콜럼버스>에서 보여주었던 모더니즘 건축물에 대한 취향을 보여준다. 로케이션을 구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 뉴욕을 샅샅이 뒤지다가 한 아이클러 하우스(Eichler homes, 부동산 개발업자 조셉 아이클러가 미국 일대에 남긴 가정집들로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효시라 일컬어진다.-편집자)를 찾았다. 부동산에 나온 매물이었는데 거의 버려져 있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바닥과 벽면이 모두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미장센을 위해 준비된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였지. 뉴욕 중심부와는 거리가 먼 외곽이어서 배우들을 위해 바로 근처에 있는 집을 하나 빌렸고 결국 그 집도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촬영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친해졌다.

- 피사체로서 미국의 모더니즘 건축물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현대 건축은 일면 매우 차갑게 느껴지지만 모더니즘 운동은 그 기원에 인간의 진실과 의미를 탐구하려는 열정을 품고 있다. 종교의 시대가 저문 뒤 서구 예술은 삶의 공허함을 탐구했고 그 감상을 건축 디자인에서도 전하기 시작한 셈이다. 대안적 사고, 동양적 사상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인 내게 영화의 배경으로서 모더니즘 건축이 적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비어있는 공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기도 하다. 실존과 무(無)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게 모더니즘 건축은 유행 이상의 의미가 있다.

- 한국계 미국인 감독, 한국계 미국인 배우(저스틴 H. 민)가 함께했지만 <애프터 양>은 중국인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인의 고유한 헤리티지보다는 ‘아시아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싶었던 걸까.

= 디아스포라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조국 바깥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양이 중국인이란 정보는 진짜라고 볼 수 없다. 안드로이드 양은 우선 아시아인의 외양으로 제조된 다음,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제이크 가족에게 중국인 역할을 하도록 설정되었을 뿐이다.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의 처지도 일면 그러하다. 우리는 국적이나 민족과 관계없이 우선 아시아인으로 묶여 분류된다. 아시아계 디아스포라들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음에도 많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고 자연스럽게 서로 상호적인 정체성이 형성된다. 양이 제이크에게 자신도 차에 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또한 전세계의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헤리티지에 대해 느끼는 갈망과 비슷할 거라 본다.

-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오리지널 스코어 <Glide>를 핵심 테마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내게 소외감, 외로움, 그리움이라는 감각을 강하게 남겼다. <애프터 양>의 대본을 쓸 때 재밌게도 머릿속에는 온통 <Glide>가 재생되고 있었고, 어느 순간 이 음악을 영화에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래 가사처럼 <애프터 양>은 단지 인간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저 존재하면서 어떤 형태든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 당신은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는 비경제적이라 할 수 있는 잉여의 숏을 사랑하는 감독이다. 비디오 에세이스트로 보여준 탁월한 몽타주의 감각이 <콜럼버스> <애프터 양>에도 깃들어 있다. 풍경과 공기, 누군가의 자취,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한 인서트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보나.

= 인생은 끊임없이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해 탐구할 수밖에 없다. 양이 한번에 단 3초만 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곧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놓치고 마는 아주 작은 것에 주목한다는 사실이 제이크를 눈뜨게 한다. 나는 제이크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는 양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의 아름다움, 딸과 가족에 얽힌 아주 평범한 순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번은 <콜럼버스>의 진(존 조)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는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눈을 통해 자기 아버지가 가치 있게 생각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항상 더 크고 바깥의 것, 다른 세상의 것에 흥분하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정작 우리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앞에 있을 수도 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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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왓챠, 영화특별시S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