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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역사 마감한 미장센단편영화제⋯ 끝이 아닌 시작을 위해 뜨겁게 안녕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2-06-09

이현승 집행위원장에게 듣는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시작과 끝

“2002년 7월4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 시작을 알렸던 미쟝센단편영화제가 5월6일부로 엔딩 크레딧을 올립니다.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엔딩 크레딧에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단편영화 앞에서 가장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시점이라 판단했습니다. 지난 20년간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악착같이 단편영화의 편에 서려 했고, 아낌없이 단편영화를 사랑했습니다. 단편영화 곁을 떠난다는 생각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고, 후회스러운 순간도 많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단편영화와 함께한 지난 20년의 시간에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2022년을 끝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엔딩 크레딧을 올리기로 한 이 결정을 모두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2022년 5월6일 미쟝센단편영화제의 홈페이지에 고별을 고하는 글이 올라왔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지난 20년간 한국 단편영화의 소통 창구이자 감독들의 등용문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엔딩은 그저 한 영화제가 문을 닫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소리이자 다음 시대를 위한 변화의 신호다. 20년을 달려온 영화제의 마무리를 이렇게 조용히 흘려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이에 <씨네21>에서는 이현승 집행위원장을 만나 미쟝센단편영화제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았다. 본래 좋은 엔딩이 잘 만든 오프닝보다 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작별을 고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송별의 인사를 건넨다.

이현승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대한민국이 들썩일 때 이상한 영화제가 문을 열었다. 2002년 7월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관객과 만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출발부터 독특한 영화제로 입소문을 탔다. 코미디, 액션 스릴러, 멜로, 공포 판타지, 사회 드라마 5개 섹션으로 나눠 진행한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계의 판타스틱 영화제’로 소개되며 작지만 개성 있는 영화제로 주목받았다. 당시 단편영화가 장르를 표방한다는 발상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이목을 끈 건 감독들이 감독들을 선정하는 영화제라는 점이었다. 이현승 감독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박찬욱 감독이 사회 드라마, 김지운 감독이 공포 판타지, 허진호 감독이 멜로, 봉준호 감독이 코미디, 류승완 감독이 액션 스릴러의 집행위원으로 선정돼 각 부문 상영작을 심사했다.

그야말로 감독을 위한, 감독에 의한, 감독의 영화제였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이런 미쟝센단편영화제의 목적지를 ‘지지와 응원’이라 표현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주었다. 단지 미쟝센이라는 이름 하나로 제안한 건데 이 정도까지 꾸준히 곁에서 지원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모레퍼시픽에 장기적 투자의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많은 준비를 했는데, 다 듣지도 않고 당연하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그게 결국 20년간 이어진 거다. 대충 계산해도 45억원이 넘는 거금이다. 게다가 아무 대가나 홍보를 바라지 않았다는 점도 대단하다. 4회 정도 맞았을 때 이 정도면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겠다는 생각에 광고나 안내 문구라도 넣자고 우리가 먼저 제안했는데 오히려 완강하게 거절했다. 장기적 안목으로 믿고 투자하는, 2000년대 초반에는 이런 낭만이 있었다.”

제4회 미쟝센단편영화제를 찾은 임필성 감독, 송강호 배우, 봉준호 감독(왼쪽부터).

시대정신의 호명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몇회 지나지 않아 명실상부 대표적인 단편영화제이자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만큼 열망이 뜨거웠고, 필요한 역할이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영화계는 급격한 성장세에 있었던 만큼 관리되지 못한 사각지대도 많았다. 특히 예술영화나 감독의 비전을 구현하는 영화들이 점차 위축되는 시기였다. 흔히 한국영화가 예술성과 작품성이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 않나. 그 시기에 나온 감독들이 박찬욱, 봉준호 등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영화감독들에게 충무로의 도제식 시스템과 대기업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현재 한국영화를 이끄는 대표 주자들은 특수한 시기의 혜택을 받은 면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색깔이 녹아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반면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면서 흐름은 급격히 산업과 자본쪽으로 기울었고, 감독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색깔의 영화를 선보일 자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북아메리카의 선댄스영화제처럼 제작자들에게 이름을 알릴 검증의 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물론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스스로 이런 역할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건 아니다. 그저 선배 감독들이 후배 감독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아모레퍼시픽처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기업의 투자를 신인감독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마련된 지원금에서 최소한의 운영비만 제외하고 다 감독들에게 지원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당시 내가 프로덕션을 맡았던 영화사의 회계 직원이 사무직이자 스탭을 겸했고 상근하는 인력을 거의 두지 않았다. 감독들의 도움으로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일종의 품앗이 같은 영화제였다.”

대중과 작가 사이, 즐겁고 치열하게

2000년대 초반 영화인들의 조직이 체계화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단체가 새롭게 출범했다. 영화감독조합의 전신인 ‘디렉터스 컷’도 그중 하나다. “비공식적 모임이었지만 당시 감독협회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몫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그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 구심점 역할을 맡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영화계 전체가 젊은 에너지로 가득하던 때다. 기존의 시스템이나 관습에 부딪혀 균열을 내고, 필요하면 없는 걸 만들어가면서 오늘의 기반을 다졌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크지 않은 규모에 비해 빠르게 자리 잡고 대중적으로도 각인되었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지만 그중에서도 배우와 감독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행사나 영화제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분들이 기꺼이 오랜 시간 함께해주었다. 친구들의 영화제 같은 느낌도 있다. 올해 안되면 다음해, 다음해가 안되면 그다음해, 각자 가능할 때 편하게 와서 동료들과 어울렸다.” 해를 더할수록 운영하는 감독들도 빠져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컸다. 2005년 나홍진 감독이 <완벽한 도미 요리>를 출품했을 때 봉준호 감독이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너무 잘하는 감독이 있으면 미리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절반쯤은 진심이었을 거다. 사실 나홍진 감독은 <완벽한 도미 요리> 이전에 중편에 가까운 작품을 먼저 연출한 적이 있는데, 그땐 영화는 좋지만 너무 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절치부심 연출한 9분짜리 단편영화는 그야말로 완벽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그렇게 서로 자극받고 만들어내는 즐거운 에너지로 가득했던 영화제는 어느덧 감독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윤종빈, 나홍진 등 걸출한 감독들이 201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시대의 소명을 다했다.

고난과 영광의 순간들

힘겨운 시기도 있었다. 영화제를 위한 영화제를 원치 않았던 이현승 집행위원장의 의지에 따라 순수한 축제, 감독들의 상상력을 펼칠 무대가 만들어졌지만 그 자유분방한 기운이 고스란히 한계로 작동하기도 했다. 상근직을 두지 않는 방침에 따라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면이 있었고 영화계 안팍의 환경도 바뀌기 시작했다. 한창 성장세였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괜찮았지만 초기 멤버가 언제까지나 일을 도맡을 수 없는 점도 문제였다. “횟수가 쌓여가면서 피로감이 컸다. 자연스럽게 차기 집행부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점차 크고 작은 문제들도 쌓여갔다. ‘장르의 상상력’을 표방하기 때문에 대중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도 있지만 미쟝센은 산업과 자본에 대한 저항과 반작용으로 유지되는 영화제였다. 제작자나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감독들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점차 영화산업이 자본의 영향력에 포섭되는 지형도 안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점점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미쟝센을 지키고 사랑했던 이들은 아직 철이 좀 덜 든 친구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이런 의미에서 돌이켜보니 힘겨웠던 만큼 행복하고 무모했던 일들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색깔이 제각기 다른 감독들을 모아놓으니 좋은 의미에서 엉망진창이었다. (웃음) 한번도 상대의 의견에 순순히 따르거나 설득되는 법이 없었다. 심사할 때 이틀 동안 꼬박 마라톤 토론을 한 적도 많다. 그만큼 애정이 넘친 거지. 한번은 각자 맡았던 부문이 아니라 장르를 바꾸어 심사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이 멜로를 맡았는데, 허진호 감독이 뽑았던 따뜻하고 애잔한 드라마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심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고백, 취향의 충돌에 가까운 시간이 이어졌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그게 그렇게 행복하고 좋았던 시절이었다.”

변화된 시대의 끝자락에서 문을 닫다

“역할을 다했기에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려 한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20회를 마지막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를 마감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담백하지만 냉철한 답변을 내놓았다. 2000년의 시작과 함께 문을 연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새로운 상상력의 소통 창구가 되어 가능성을 발굴하는 기능을 맡았지만 2022년 현재, 그 소용이 다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후원이 끊어진 게 아니다. 지속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분들은 그동안 역사가 쌓였는데 이걸 유지하는 이 좋지 않으냐는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다. 물론 전통을 이어가는 가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제를 위한 영화제를 하고 싶진 않다는 게,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애초에 감독들의 자유로운 제작을 지지하기 위한 마음으로 출발했으니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맞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의 분석처럼 2000년대 초반에는 극장을 통한 단편영화 상영이 보편적이고 유효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OTT 등 새로운 플랫폼 이 등장하고 짧은 콘텐츠는 온라인 상영 등 여러 통로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는 만큼 단편영화 역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2020년 한국단편영화배급사네트워크에서 미쟝센단편영화제 온라인 무료 상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자체 점검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담당자의 미숙한 대응과 오해로 벌어진 일이다. 온라인 상영에 대한 인식이 안이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충격도 받았다. 미쟝센은 애초에 수익을 내기 위한 영화제도 아니고, 극장 상영분의 이익이 나면 고스란히 감독에게 전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영화제의 갑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둘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다시 태어나거나.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일단 멈추는 길을 택한 거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현승 집행위원장은 현재 영화제들을 향한 쓴소리도 이어갔다. “1990년대 말에 생기기 시작한 영화제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보자는 필요와 열망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주변을 둘러보면 관성에 기대어 가는 흐름이 없지 않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건 대단하지만 달리 보면 그 뒤를 잇는 흐름이 부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영화계 수많은 자리에 아직도 선배 세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종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 안정감과 원숙함은 인정한다. 하지만 솔직히 한국영화계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 지금 한국의 영화제들이 발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해외 영화인들이 한 작품을 탐색하기 위해 한국의 영화제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한참 됐다. K콘텐츠, K무비 이야기를 다들 하지만, 무르익은 과실을 지금 따는 것일 뿐 새로운 나무를 심는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야말로 착각이다. 공백이 생기면 위태로울 것 같지만 의외로 금세 메워지고 해결된다. 2000년 초반 젊은 에너지로 등장한 이들은 기성세대나 체제를 반발하며 균열을 냈다. 그런데 그때 그 세대가 이제 기성세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여전히 머물고 있는 건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정체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새로운 변화에 호응하기 위한 파괴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문을 닫는 미쟝센은 적어도 두 가지 교훈을 남기고 떠난다. 하나는 명확한 방향의 제시가 폭발력을 낳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를 지지해줄 장기적 관점과 투자가 필요하는 것이다.” 때로 변화는 파괴와 결핍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장르적 상상력으로 대중과 작가의 접점을 마련했던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고자 스스로 문을 닫는 길을 택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공백은 또 다른 물결로 메워질 것이다. 새로운 파도가 당도할 때까지 당분간 쓸쓸하겠지만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머지않아 하나의 문이 닫힌 자리에서 곧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현승 집행위원장이 꼽은 그때 그 영화

<남매의 집>

"지난 20년간 소개한 1171편의 경쟁부문 상영작 중 한두편을 고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다시 되돌아보니 먼저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첫째는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다. 초창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는 지독할 정도로 대상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감독들의 취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의 애정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자리인 덕분이기도 했다. 그 엄격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준을 다 뚫고 대상을 차지한 영화가 <남매의 집>이었다. 설명되지 않는 불균질함, 설명하고 싶지 않은 불투명함, 그러면서도 보는 이를 확실히 뒤흔들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영화다. 단편영화가, 아니 영화가 무엇을할 수 있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 요리>다. 단편의 호흡과 압축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완벽에 도전하는 단편영화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주길 소망한다."

<완벽한 도미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