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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 주인공 모지민 "영화를 보고 내 삶이 정말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2-06-30

“나의 활동명인 모어는 ‘털 모(毛)에 물고기 어(魚)’를 쓴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하기 애매한 존재, ‘털 난 물고기’. 나를 명시하는 정확한 단어라 생각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한 모지민은 그 뒤로 스무해 넘게 드랙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쇼를 진행했다.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으로 인해 방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 시절을 토양 삼아 공연과 글, 영화를 통해 '모어'만의 이야기를 전한다.

- 드랙 아티스트이자 안무가, 뮤지컬 배우로서 다양한 무대에 섰지만 영화 출연은 <모어>가 처음이다. 이일하 감독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 2017년에 도쿄에서 공연을 했는데 당시 내 공연을 기록해준 사진작가가 이일하 감독님의 전작 <카운터스>의 출연자였다. 감독님이 내 사진을 보고 당연히 일본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한국인인 것을 알고 당장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더라.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 누군가의 동료, 연인, 가족으로서의 삶을 예상보다 훨씬 솔직하고 내밀하게 보여준다. 자신을 드러내는 촬영 과정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총 3년간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는데 감독님에게 부모님을 소개하기까지 1년이 걸렸으니까. 그것도 나는 계속 반대했고 감독님이 끊임없이 설득해 성사된 결과였다.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워낙 심하다보니 가족에게까지 화살이 향할까봐 정말 걱정이 많았다. 영화 완성본을 본 지금에 와선 그때 왜 더 솔직하지 못했을까 싶다. 부모님을 영화에 등장시키고, 부모님께 남편 제냐를 소개하는 자리 전부가 정말 아름다운 순간들이더라.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하고 후회가 됐다.

- 중간중간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시퀀스들이 흥미로웠다. 그런 작업은 사전에 감독과 얼마나 계획을 세워두고 진행했나.

= 처음 미팅할 때부터 감독님은 뮤지컬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게 노래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못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하길 정말 잘했지. (웃음) 지금 같은 퀄리티가 안 나왔을 테니까. 이랑과는 워낙 친해서 감독님이 이랑의 음악을 쓰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이랑이 흔쾌히 허락해줬다. 감독님도 나도 즉흥적인 편이라 작업 성향 면에선 잘 맞았다. 그러니 이런 이상하고 난데없고 기이한 작품이 나온 거겠지?

- 의상과 분장도 다 혼자 준비한 거라고.

= 100% 내가 다 했다. 전부 한겨울에 야외 촬영이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아쉬움도 남지만 그 와중에 손꼽히게 좋은 장면들도 있다. 눈 쌓인 숲에서 춤춘 장면이나 꽃나무 아래에서 전에 자살 시도를 했던 이야기를 하는 장면, 그중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경운기에 오른 신을 1번으로 꼽고 싶다. 엄마는 옆에서 밭을 매고 계시고 그 옆을 우리가 유유히 지나가고, 그런 신은 어떤 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지 않을까.

- 2019년엔 뉴욕에서 열린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에도 섰다. 스크린 너머로 벅찬 감정이 전해져왔다.

=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선 정말 어마어마한 행사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같은 배우들이 섰던 공연장에 오른다니, 그 꿈의 무대에 선다니, 정말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다름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감독님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좀더 남아 있기로 했는데 그때 친분이 있던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의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을 준비하며 23년 만에 토슈즈를 신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도 공연할 때 토슈즈를 자주 신고 오르더라.

= 발레는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계속 발레리나가 되기를 꿈꿔왔는데 그럴 순 없었고, 발레리노는 토슈즈를 신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시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오르게 됐으니 정말 <모어>는 여러모로 반드시 찍었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 “드랙은 내게 애증덩어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지겹고 지난함에도 어떤 점에 매료되어 드랙 아티스트로서 계속 무대에 오르나.

=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드랙 아티스트는 겉으론 화려해도 속으론 애달프고 외롭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예전엔 여장 남자 정도로 비하될 때가 많았다. 술집에서 공연을 하다보니 과격한 상황이 발생하곤 했고. 또 아무리 고된 날에도 무대 위에선 웃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내겐 그런 점들이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큰 사람이다. 드랙 퀸은 매일 스스로 변화하고 아름다운 상태로서의 자신을 보여주지 않나. 그런 순간들이 행복하다. 삶이 힘들어서 울 때도 많았는데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내 인생의 중요한 스토리가 됐고 그것으로 책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쓰고 영화도 찍었다.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여태까지 살아 있었던 건가 싶다. 클레식 발레만 계속 했다면 이런 인터뷰를 할 기회도 없지 않았을까. (웃음) 그동안 내 삶이 특별하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내 삶이 정말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 앞으로 또 어떤 것에 도전해보고 싶나.

=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전시를 하거나 관련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곧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책을 낭독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인데 그 자리도 무척 뜻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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