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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배즈 루어먼 감독 인터뷰
안현진(LA 통신원) 2022-07-05

“엘비스는 그 시대의 미국을 탐험할 수 있는 캔버스”

-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는 처음이다.

=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로 나는 전기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더 큰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사랑해왔다. 현대의 예를 들자면 <아마데우스>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데우스>를 보는 관객은 살리에리의 관점을 더욱 가깝게 보게 되고, 그의 질투심을 알게 된다. 신은 왜 모든 재능을 내가 아니라 저 남자(모차르트)에게 주었는가? <엘비스>를 통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뿐 아니라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미국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엘비스는 그 시대의 미국을 탐험할 수 있는 캔버스일 것이다. 왜냐하면 엘비스 프레슬리야말로 그 시대가 좋든, 나쁘든, 추하든, 혹은 비극이든 간에 그 시대를 관통하는 교차로이기 때문이다.

- 유튜브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찾아가 이웃과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다. 그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연들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 처음에는 이 영화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화가 감지됐다. 엘비스가 살던 시대를 돋보이게 만드는 건 위대한 아메리칸 에너지였다. 아메리칸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로 다양성이다. 모든 다채로움이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다른 것들이 모두 섞여서 새로운 것이 발명되고 창조됐다. 두 번째는 세일즈였다. 모든 것은 홍보되고 팔릴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세일즈가 불균형하게 커지는 걸 목격했다. 실제로 창작된 것보다 브랜드가 크게 보이고 그걸 홍보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세상이 됐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프로모터였던 톰 파커 대령을 보여주기에 딱 맞는 상황이다. 그는 톰인 적도, 파커인 적도, 심지어 대령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유튜브에서 봤다는 그 영상은 엘비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다. 그 영상은 사실 해킹당한 건데,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가 계속 유튜브에 올라와 있더라. 그 동네는 과거에 흑인 주거지역이었고 몇 되지 않는 백인 가정 중 하나가 엘비스의 가족이었다. 거기에서 어린 시절의 엘비스는 흑인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가스펠을 부르고 나중에 컨트리음악을 접하게 된다. 엘비스는 컨트리음악을 사랑했지만, 그의 뿌리는 언제나 가스펠이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엘비스는 종교적인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톰 파커 대령은 엘비스에게서 음악을 보지 않았다. 파커가 본 것은 엘비스가 10대 소비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었다. 그리고 대령은 그걸 팔겠다고 마음먹었다. 저 영향력을 브랜드로 만들어 팔고야 말겠다고. 그 서사는 궁극적으로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엘비스>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다.

-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 미국의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인종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들의 중심에는 가장 논쟁적이고 고통스러운 현재진행형의 불덩이가 있기 때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인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논할 수 없다. 20살에 트럭 운전사였던 엘비스가 톰 파커 대령을 만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됐을 무렵, 미국에서는 인종분리정책이 실시되고 있었다. 엘비스는 그 정책을 멈추고 싶었고, 정책이 중점적으로 실행되는 지역에서 비비 킹 등 친분이 있는 흑인 뮤지션들과 크로스오버 공연을 펼쳤다. 흥미롭게도 전후 10대 소비자가 그때 처음 탄생했다. 어린 소비자들이 레코드판을 사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사고, 공연에 갈 수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이런 시장에 맞춰 친근한 이미지로 만든 건 톰 파커 대령의 플롯이었다.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혹은 전달해야 하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나는 관객은 영화를 비추는 현대사회의 거울을 발견할 것이고, 그에 대해 논쟁할 것이고, 이 주제에 참여할 것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그거면 충분하다.

<엘비스>

-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무엇인가.

=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운영하던 영화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를 상영했다. 7살 때부터 토요일 저녁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는 걸 알게 됐다. 1970년대가 됐고, 점프슈트를 입은 엘비스는 여전히 쿨했지만, 나는 데이비드 보위에 더욱 끌리는 젊은이가 됐다. 내가 자라온 환경 덕분에 더 많이 엘비스를 접하고 생각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엘비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는 더이상은 엘비스의 팬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유명한 가수를 너머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할리우드 길에 가면 엘비스를 흉내내는 사람이 있고, 핼러윈에는 엘비스로 분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이상 우상이 아니라 먼지 속의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거다.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이 이렇게까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엄청난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

- 이번엔 로큰롤이다. 영화마다 촬영, 연출, 편집, 음악, 스타일이 바뀌는데 어떤 비밀이 있는지 궁금하다.

= 내 머릿속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모여 있고, 절대 떠나지 않는다. 이 아이디어들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가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다음은 무엇이 이 세상에 유용할 것인가다. 한번 어떤 아이디어를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그다음부터는 내 개인적인 취향은 최대한 배제한다. 그때부터 할 일은 내가 고른 보편적이면서 거대한 주제를,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게 할 것인가이다. 낯선 사람들을 극장에 앉히는 것, 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 오만한 생각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는 그 일에 대한 열정을 위대하게 느낀다. 영화는 여러 가지 예술의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음악은 그중 하나다. 나는 대사, 음악, 시각언어, 배우의 연기를 영화라는 거대한 음악을 만드는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한다.

- 엘비스 프레슬리는 문화적 아이콘이고 전설이다. 그레이스랜드를 방문하는 관람객 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스타덤이다. 이같은 스타덤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나.

= 참고로 그레이스랜드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사유지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도 그레이스랜드를 찾았을 만큼 그 인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엘비스가 아이콘이라는 사실도 변함없다. 사실 엘비스가 인간 그 이상이 된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는 이 영화에서 인간으로서의 엘비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오스틴 버틀러가 너무나 훌륭하게 해줬다. 오스틴은 이 역할을 위해 헌신했다. 오스틴은 엘비스를 그저 따라한 것이 아니다. 오스틴보다 엘비스와 닮은 사람을 찾으려면 찾았을 것이다. 오스틴은 엘비스의 정신을 보여줬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소년이 42살이라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신이 되었다. 정작 엘비스는 원한 적 없는 삶이었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로 사는 것에 지친다”고 말했다. 영화 속 대사 중에 그는 “나는 거의 마흔이 됐고, 누구도 내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아이콘이다. 나의 어린 아들은 말론 브란도도 알 파치노도 모르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안다. 게임 캐릭터 중 하나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누가 이런 스타덤을 누리고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누가 유명인 그 이상이 되어 불멸의 삶을 살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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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