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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송길영(Mind Miner) 2022-07-07

지금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한 종이 매체에 이 글을 얹고 있음에 감사한다. 조간신문이 우리집과 옆집 마당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활자로 남겨진 정보를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보고 듣는 매체가 달라지면 전달 방법과 메시지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기사를 보려 수페이지의 광고를 넘겨야 했던 수고로움도 사라졌다. 글 읽기를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동영상 콘텐츠가 포털의 정보량 이상으로 늘어났다. 단 몇분의 영상도 길다는 이들을 위해 ‘숏폼’이라는 짧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가장 인기 있는 전달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다보니 전통적인 소구 방식인 광고로 상품을 알리던 기업들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예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소비자의 삶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케팅 기법은 ‘깊은 고객 경험’이다.

최근 세계적인 브랜드가 갤러리로 쓰이던 매장의 일부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단장해 한달간 극소수의 고객들에게 색다른 미식 경험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산업시대의 유물이 가득한 동네에 감각적인 디자인의 명품 매장이 정원과 카페와 함께 들어섰다. 지나가던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독특한 그 무엇, ‘WOW’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특별한 경험들이 소셜 미디어에 하나씩 쌓여나간다. 고객들은 자발적으로 발품을 팔고 각종 미사여구와 해시태그를 달아 여기저기 퍼 나른다. 업체는 단 한푼의 광고비도 지불하지 않았으니 이보다 유기적이고 신뢰를 주는 마케팅 방법이 있을까? 이처럼 공간과 매체가 결합된 채널을 ‘리테일 미디어’라 부른다. 매장이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는 공간을 넘어 고객이 찾아와 브랜드의 철학과 의미를 경험하는 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판매의 장소에서 문화의 전시장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감미로운 음식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어지며 호텔의 형태로 며칠간의 깊은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도 속속 등장한다.

이제 종이의 경쟁 상대는 유튜브, 숏폼에 그치지 않는다. 고객의 삶을 파고드는 섬세한 기획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매장도 경쟁 대열에 가세했다. 새로운 공간들은 소소하지만 반복적인 사람들의 일상 속 경험들을 더 밀도 있게 가꾸어준다.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를 독려하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일상이 다채롭고 더욱 아름다워지도록 새로운 경험을 기획하고 제공하는 그들의 시도는 광고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달로 확장되어진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기에 더 찬란하길 바라는지 모른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매일을 소중히 여기려는 우리의 소망에 더 큰 놀라움을 더해주는 이들의 노력에 사람들의 화답이 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