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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스포일링의 배려
김겨울(유튜버) 2022-07-14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영화 <헤어질 결심>이 개봉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헤어질 결심>이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 두 인물이 어떤 만남의 곡절을 겪는지, 결말에 이르러 어떤 인물은 진실을 알고 있고 어떤 인물은 진실을 모르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에는 쓰지 못하지만 결정적인 스포일러도 더 알고 있으니, <헤어질 결심>을 볼 때 아이폰을 끄고 들어가야 한다는 정보 정도는 그냥 생활 꿀팁이다. 여기에 김신영의 천재성과 대사를 얼마나 친절하게 썼는지와 언어유희적 대사(정확한 멘트까지 알아버린)를 버무리면, (결코 평론은 아니겠지만) 대충 평론 같아 보이는 패러디 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소셜 미디어 때문이다. 트위터고 페이스북이고 인스타그램이고 재빠르게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 각종 스포일러를 버무려놓은 감상평을 스포일러 경고 없이 올리는 바람에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온갖 정보를 다 알아버린 것이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은 캡처 사진을 보자마자 재빨리 스크롤을 내리지만 미리 보기가 없는 스토리로 올린 내용에는 속수무책이고, 트위터에서는 키워드를 뮤트하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꼭 감상에 “헤어질 결심”이라든지 “헤결”이라든지 “박찬욱”이라든지 하는 키워드를 넣는 것은 아니다. 뭔가 내가 모르는 사람 이름이 두개 나오면 대충 그 영화구나, 하고 흐린 눈으로 넘어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다다. 아휴 참, 개봉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영화에 이럴 일인가.

스포일러는 언제부터 스포일러가 아니게 되는 걸까? 이를테면 <기생충>이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했을 때는 대부분의 관객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적어도 3일보다는 더- 스포일러를 지키는 분위기였다. 그런가 하면 1999년 개봉한 <식스 센스>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남한산성>을 두고도 스포일러에 대해 논쟁하는 일도 있다. 모든 영화가 영원히 보자기에 싸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칼 같이 스포일러 허용일의 기준선을 정해둘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동안은 스포일러에 대해 스포일러라고 밝혀주는 것이 다른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극장에서 내려가더라도 진행에 결정적인 내용이라면 고지를 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일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헤어질 결심>을 보지도 못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한 관객의 한 섞인 푸념이며, 나는 이 글을 쓰고 오늘 바로 <헤어질 결심>을 보러 갈 계획이다. 스포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빠른 관람인 법. 차라리 이 모든 게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음모라면 아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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