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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험의 지평을 넓힌다
조현나 정리 이다혜 2022-07-21

한국영상자료원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 상영작 소개

2008년 5월 시네마테크KOFA가 개관한 이래 한국영상자료원은 매년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을 개최해왔다. 바로 이전 해에 발굴, 수집 과정을 거쳐 복원된 한국영화들과 해외의 고전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다. 7월1일부터 8월25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은 KOFA 복원-애니메이션, KOFA 복원-클래식 복원, 이창동 리마스터링, 인 메모리엄, 장단편_극장전, 특별공연, 해외 복원 등 총 7개 섹션에서 41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1961년’이 키워드였던 지난해 상영작들에 비해 올해는 보다 현재 시점에 가까운 영화들이 선정됐다. 또한 지난해 기획전에선 러시아 국립 아카이브 고스필모폰드에서 수집해 복원을 완료한 한국 초기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면, 이번 기획전은 복원된 해외영화들과 한국 애니메이션 복원 사업으로 디지털 작업을 시행한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영화를 수집하는 과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원 차장의 설명이다.

부대 행사 중 눈에 띄는 것은 독일 무성영화 <노스페라투>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 공연이다. 황진아 거문고 연주자와 이시문 기타리스트가 <노스페라투>를 재해석하고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새롭게 구성해 연주할 예정이다. 공포영화인 <노스페라투>의 기괴한 이미지와 동서양의 현악기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공연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KOFA 복원-애니메이션’ 섹션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디지털 심화복원을 거쳐 4K 버전으로 상영하는 5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홍길동>과 한국 최초의 인형극 영화 <흥부와 놀부>, <홍길동전>에서 조연이었던 호피와 차돌바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피와 차돌바위> 등 흥미로운 복원작들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번 기획전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극장전’이다. ‘장단편_극장전’ 섹션에서는 인천의 애관극장과 부산의 국도예술관을 다룬 <보는 것을 사랑한다> <라스트 씬> 두편을 상영하며, <라스트 씬> 상영 후에는 서이제 소설가와 연출을 맡은 박배일 감독의 시네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이창동 리마스터링’ 섹션에서는 <초록물고기>부터 최근작인 단편 <심장소리>까지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전편을 상영한다. ‘복원의 재구성: 이창동 전작 4K 리마스터링 포럼’에서는 이창동 감독과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박홍열 촬영감독, 조해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장, 신정민 영상복원 전문가가 참여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영화 제작 현장이 바뀌면서 다소 소외된 2000년대 영화들의 디지털 작업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을 논의할 예정이다. ‘인 메모리엄’ 섹션은 섹션명이 의미하는 대로 방송인 송해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이론가 사토 다다오, 배우 모니카 비티 등 2021~22년에 타계한 6인의 인물을 기린다.

“복원 사업은 한국영상자료원의 가장 주요한 사업 중 하나다. 훼손된 영화 자료들을 오리지널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고 그런 영화들을 관객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료원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오성지 차장)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 기획전은 과거의 유산인 영화를 단순한 기록물로서 보관하는 대신, 복원 과정을 통해 관객과 접점을 만들며 극장에서의 영화 경험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홍길동>

신동헌 | 한국 | 1967년 | 70분 | KOFA 복원-애니메이션

기획전의 슬로건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은 아마 <홍길동>일 것이다. 작품은 2007년 일본에서 기적적으로 발굴된 후 2016년에 한차례 디지털화한 바 있다. 영화를 복원한다는 건 유한한 필름의 물성을 디지털의 무한함으로 바꿔 영생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때, 2016년의 복원이 보존으로서 영생을 얻었다면, 이번에 4K로 복원돼 공개된 <홍길동>은 단순한 영생이 아니라 제목과 크레딧을 모두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꾸고, 한국어 사운드를 더해 우리가 상상하는 원본을 구현해냄으로써 그야말로 영구집권할 새 생명을 탄생시켰다 할 만하다. 발굴과 복원, 그리고 재창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원본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복원되어 재창조된 <홍길동>은 최초 등장했던 1967년의 영화와 동일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그때를 채취해 고도로 방부 처리를 함으로써 과거 영광을 가장 원본과 가깝게 상상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 뿐이며, 지금은 그 영광을 만끽할 때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복수는 나의 것>

이마무라 쇼헤이 | 일본 | 1979년 | 140분 | 해외 복원

<큐어> 이전에 <복수는 나의 것>이 있었다. 최근 국내에 최초로 정식 개봉한 <큐어>가 9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로 도래한 ‘잃어버린 10년’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냈다면, <복수는 나의 것>은 그 거품의 시작점인 1960년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실존했던 연쇄살인마 니시구치 아키라의 행적을 재가공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특유의 적나라한 묘사와 인간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거쳐 오래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현재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직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지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인마의 유골이 약간 흐린 듯한 날씨의 하늘을 배경으로 움직임을 멈출 때, 이때 멈춘 것은 유골뿐만이 아닌 일본 그 자체로 보인다. “난 사라지겠지. 당신은 살아갈 거고. 하지만 당신도 죽어”라는 살인마의 말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

김수정, 임경원 | 한국 | 1996년 | 80분 | KOFA 복원-애니메이션

복원이란 시각적/역사적 인식 경험의 변화를 지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교적 온전한 자료를 고해상도 디지털로 변환하는 복원에서는 그 결과물과 원본 사이 시각적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마주하는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도 과거에 보았던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새로움을 느낀다면 그건 기억의 불완전한 속성 탓에 기억과 불일치하는 장면이 주는 위화감과 이야기를 향한 우리의 새롭게 다져진 인식 관습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초능력을 이용해 악당과 대결하는 둘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슈퍼히어로인데, 마블 시리즈 영웅들에 익숙한 지금의 관객에게 둘리는 영웅의 원형처럼 비친다. 또 도우너의 타임 코스모스로 시공간을 여행하는 광경은 요즘 더욱 친숙한 메타, 멀티버스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영웅과 다차원의 시공간은 무수히 반복돼온 이야기임에도 현재 마치 새로운 개념인 것처럼 부각 또는 강조하는 현상은 사유의 대상이 된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피막>

이두용 | 한국 | 1980년 | 93분 | KOFA 복원-클래식 복원

한 아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어른들은 영험한 무당을 수소문한다. 무당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이 벌인 일이라는 말을 하며 굿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라는 말을 하며 반신반의하지만 계속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는 <곡성>이 아니라 <피막>의 줄거리다. ‘피막’은 죽음을 앞둔 환자나 아이를 출산하려는 산모가 머무는 장소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샤머니즘적인 장소다. 지역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 토속적인 공포를 그린 영화는 오늘날에도 넘쳐나지만, <피막>은 그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이며 그래서 여전히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고 빛난다. “하계와 이승의 중간 정거장”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다채로운 색감을 활용해 감각적으로 구현해낸 이두용 감독과 한반도 어딘가를 떠돌아다녔을 한 맺힌 영혼들의 사연을 창작해낸 윤삼육 각본가의 협업으로 완성된 짜임새 있는 장르영화이며,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만다라>

임권택 | 한국 | 1981년 | 105분 | 인 메모리엄

올 3월 타계한 일본의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하스미 시게히코와 함께 일본 영화평론계의 두 거목으로 지목된다. 이론가이면서 학자의 풍모를 지닌 하스미 시게히코와는 다르게 전화기 수리 공장을 다니면서 잡지에 글을 기고하다 평론가의 길로 들어선 사토 다다오의 평론 세계는 감독의 활동성과 현장의 생동감에 주목한다. 또 한국영화에 큰 애정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한데, <한국영화와 임권택>(2000) 등의 저서는 애정의 크기를 증명한다. 우리에게 그는 당시 거의 유일하고도 최초로 임권택 감독을 알아봐준 일본 영화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1981년 마닐라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만다라>와 조우한 사토 다다오는 “깊디깊은 슬픔의 아름다움”이라고 평했다. 그가 표현한 대로 <만다라>에 등장하는, 웅장하기보다 숭고에 가까운 자연 풍광 아래 작은 점에 불과한 승려 법운과 지산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초라한 인간 삶에서 반복되는 번민과 깨달음 사이에 흘러내리는 슬픔은 막아내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암흑가의 세사람>

장 피에르 멜빌 | 프랑스, 이탈리아 | 1970년 | 140분 | 해외 복원

전현직 범죄자 세 사람이 보석 가게를 털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실행에 옮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평범한 한줄의 로그라인으로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은 훗날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친 누아르-케이퍼 무비를 만들어낸다. 원제인 ‘붉은 원’(Le Cercle Rouge)은 불교와 관련된 용어로 필연적으로 얽히게 될 인연을 암시하지만, 영화엔 이렇다 할 상징적인 기표가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들의 과거 사연 역시 제시되지 않는다. 마치 그런 것에 집착하는 영화는 촌스럽다고 말하는 듯하다. 대사와 카메라 움직임을 최소화한 연출 스타일과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오직 사람의 액션만으로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그것을 여전히 훔치지 못한 최근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알랭 들롱, 잔 마리아 볼론테, 이브 몽탕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무비 스타 삼인방이 ‘어셈블’하여 선사하는 20분 넘는 보석 가게 강도 시퀀스는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일 것이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나이트메어 앨리>

에드먼드 굴딩 | 미국 | 1947년 | 111분 | 해외 복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1947년에 나온 영화의 리메이크란 사실에 놀랄지 모르겠다. 해외 복원 작품으로 이번 기획전에 선보이는 <나이트메어 앨리>는 1946년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동명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당대의 액션 스타 타이론 파워가 주연을 맡았다. 미국 클래식 누아르로 평가받는 영화는 4K 디지털로 복원된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최근의 기예르모 델 토로 작품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모든 복원 작품들이 그러하겠지만 필름의 질감을 품은 디지털영화로서의 <나이트메어 앨리>와 오늘날 기예르모 델 토로 작품과의 대조는 다양한 면에서 통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컬러와 흑백의 대비, 소설 원작에 대한 해석과 구현의 방법, 배우들의 연기 방식의 차이, 카메라의 시선과 조명의 역할 등 오래된 현재와 새로운 과거로서 복원 작품과 최근작을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은 복원의 의미를 재차 음미하도록 이끈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엘리지의 여왕>

한형모 | 한국 | 1967년 | 98분 | 인 메모리엄

19살에 데뷔해 10년도 채 되지 않아 1960~70년대 가요계를 평정한 가수 이미자의 1967년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엘리지의 여왕>이라는 제목은 같은 해에 발표한 앨범 《엘리지의 여왕/동백 엘리지》에 수록된 노래의 제목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자의 별칭이다. <자유부인> <여사장> 등을 연출한 한형모 감독의 유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앞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서 벗어난 인물을 그린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윤여정 배우가 불과 1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의 ‘바깥일’을 지지해준 두 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던 것을 떠올리면, 미자의 이혼을 다룬 영화의 후반부 갈등 서사만큼은 과거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실제 이미자 본인이 등장해 “직접 출연하지 못함”에 대한 사과와 자신의 대역을 맡은 남정임 배우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수많은 전기영화들의 태도에 영향을 줄 만하다.

김철홍 영화평론가

<뱀파이어>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 독일, 프랑스 | 1932년 | 73분 | 해외복원

해외 복원 작품의 하나로 소개될 <뱀파이어>는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을 재발견하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영화사에서 초기 또는 고전영화를 말할 때 뤼미에르 형제, 멜리에스부터 그리피스,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을 거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르네 클레르 등까지는 자주 접한 것과 달리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에 관해서는 생소한 관객이 있을지 모른다. 그는 내용 면에서 종교적 구원의 테마에 천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형식적으로는 초기 고전 영화군에서도 남다른 클로즈업 효과와 불분명한 시점을 구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같은 특징을 근거로 장 루이 코몰리와 장 나르보니는 그의 작품이 영화 속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내파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뱀파이어>에서는 구원의 모티프뿐 아니라 이후 영화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의 예로 <뱀파이어>에서 등장하는 시체 시점의 카메라 시선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서도 발견된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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