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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우황청심환 세병
윤덕원(가수) 2022-08-04

지금 ‘브로콜리너마저’는 전국 투어 공연 중이다. 매년 치러오던 여름 장기 공연 ‘이른 열대야’의 일환인데, 새로운 기획인 ‘전국 인디-자랑’이라는 컨셉으로 치러진다. 간단히 취지를 설명하면 각 지역에서 공연하면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특징이라면 오프닝 무대를 따로 갖는 것이 아니라 공연 중간에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팀을 소개하고, 공연 중에 관객 참여를 통해 그 회차의 우승자를 결정한다는 거다. 방법과 과정은 공연 연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함께하는 팀들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에서 좀더 빛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이 자리를 통해 자랑하고 싶다.

참여하는 팀들과는 공연 전에 따로 만나거나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을 정해서 한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전하는 콘텐츠도 만드는 한편 우리 입장에서도 같이하는 팀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서로의 애환을 토로하기도 하고 작은 조언을 건넨 것도 좋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공연하면서 즐겁고 뭐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별개로, 나 역시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끼고 얻는 점이 많다.

10회에 달하는 공연 회차만큼 함께하는 팀들도 많은데, 그러다 보니 그 면면도 다양하다. 최근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고 인디 음악 리스너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는 팀이 있는 반면에 지역 신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팀도 있고 음악 활동 경력에 비해 팀 결성이 늦어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팀들도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예전에 내가 느꼈던 것들이나 아쉬웠던 것들을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득하기도 하지만, 현재 나의 고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으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나 역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세종에서 함께 공연했던 팀은 ‘두명인간’이라는 듀오다. 각자 활동은 했지만 팀은 새롭게 시작하는 음악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전에서 버스킹과 통기타 라이브로 오래 활동했던 상호와 남길은 ‘세명인간’을 거쳐 지금의 팀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공연 무대에 서는 것이 긴장된다고 했다. 게다가 오늘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 사인회도 예정되어 있었다.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에게도 코로나 기간 중에 한동안 없었던 일이라 감회가 새로웠는데, 두명인간에게는 첫 사인회라 특히 더 긴장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공연 직전에 브로콜리너마저의 드러머인 류지가 이들을 우리 대기실로 부르더니 사인회 대비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을 하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사인회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사인이 없다니, 얼른 사인을 정합시다 하고 다그치기도 하고 팬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 어떻게 응대하면 좋은지 설명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하다가 우황청심환을 세병이나 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자신의 공연을 대하는 능숙한 모습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두명인간은 속으로는 긴장했는지 모르지만 무대를 무사히, 능숙하게 잘 마쳤고 사인회도 안정적으로 치러냈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상호의 등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많이 긴장하고 애썼구나 하는 생각에 내 마음도 뭉클해졌다.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오늘 아내가 공연을 보러 왔다고 했다. 마음이 쓰일 만했네,

공연하느라 고생했다고, 미발표곡도 좋았다고 꼭 잘 완성해서 발매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런 공연 한번이 그 친구들에게 특별한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사실 확신할 수는 없다. 돌아보면 그때그때 다가오는 모든 일들에 의미가 있었고 또 없었으며 이런저런 가능성들은 있다가도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음원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에 팀 소개와 사진을 꼭 올리고, 곡을 발매할 때는 곡 소개를 잘 작성하면 좀더 기억에 남을 거라는 말을 이 지면을 통해 한번 더 당부한다. 이를테면 싱글 <일단 떠나자>는 취업에 실패하고 음악도 잘 안될 때 태백에 충동적으로 무전여행을 가서 쓴 곡이라는 이야기도. 좀 부끄럽게 느껴져도 스스로를 더 많이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 신곡은 가사를 다듬으면 좋아질 부분이 많이 보이니까 같이 고민해보기를. 그렇지만 완전히 만족하지 못해서 발매를 너무 미루지는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나둘 이야기하니까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네.

아 참, 그리고 두명인간에게 청심환 먹었다고 놀린 류지도 처음 공연에서 청심환을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알려주고 싶다. 파이팅!

<일단 떠나자>- 두명인간

일단 멀리 떠나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 혼자 떠나는 길이

결코 외롭진 않으니

내가 계획한 대로

계획없는 여행을

떠나가보면 언젠가

나를 찾을 수 있겠지

일단 멀리 떠나자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는 길 험할지라도

결코 괴롭진 않으니

내가 계획한 대로

계획없는 여행을

떠나다보면 언젠가

나를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