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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의 오늘은 SF] 엉터리지만 괜찮아
이경희(SF 작가) 2022-08-18

내가 쓴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의 작가의 말에는 이런 멘트가 써져 있다. “SF는 반드시 과학을 다루는 장르는 아니며, 이 이야기는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다.” 그렇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과학기술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일부러 말이 되지 않게끔 비틀어놓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적어도 SF처럼은 보인다. 놀랍게도 SF는 과학과 무관한 장르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007 영화 속 첨단 무기들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매번 언급하다보니 이제는 그냥 SF 장르에서 빼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어쨌든 <스타워즈>에서 제대로 된 과학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병사들에게 얼굴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헬멧을 씌우면 명중률이 급감한다는 통계적 사실 정도가 그나마 <스타워즈>에서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제다이들이 광선검을 ‘부딪치며’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그들이 사용하는 초능력이 더 말이 된다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괜찮다. 멋있으니까. 우주의 기사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화려한 광선 검투를 벌인다는데 과학이 뭐가 대수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광선무기 이야기부터 해보자. 은근슬쩍 미래의 과학인 척하며 거의 모든 스페이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이 전쟁 기술은 존재부터가 난센스다. 당연하지만 광선총에서 발사되는 건 광선이 아니다. 어쩌면 ‘빛’조차도 아닐 수 있다. 정말로 빛을 발사하는 거라면 날아가는 궤적이 보일 리가 없을 테니까. 여하튼 빛나는 무언가를 쏘는 이 장치들은 화약으로 밀어내는 납탄보다 느린 투사체를 발사한다. 그렇다고 파괴력이 더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대개는 옷만 좀 그슬리고 말더란 말이지.

비슷한 빈도로 등장하는 보호막 기술도 마찬가지다. 광선무기와 쌍벽을 이루는 이 기묘한 테크놀로지는 대체 어떤 원리로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는지 알기 어렵다. 대체 이 역장(force field)이라는 것들은 그래서 무슨 힘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전자기력? 핵력? 주파수가 어떻고 패턴 정렬이 어떻고 말들은 어찌나 청산유수인지 보다 보면 깜빡 속는다. 요즘엔 자주 볼 수 없는 연출인데, 예전에는 이 보호막이라는 물건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금이 가거나 유리처럼 깨지기까지 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야 원래 그런 장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장르를 스페이스 판타지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마저 있으니까. 그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작품들은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까? 요즘 공모전 수상 작품집에 반드시 하나쯤은 포함되는 ‘마인드 업로딩’이나 ‘가상현실’ 소재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아무도 이 기술의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슨무슨 기계와 뇌를 연결하면 기억이나 세계를 디지털로 재현할 수 있다는 내용 이상의 설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공각기동대> 속 기계 신체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고스트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해킹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빠와 딸 사이에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장면들을 보며 겉으로는 잘난 체하며 ‘오, 상대성이론을 잘 적용했네’ 했지만 여전히 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가 왜 생기는지 잘 모른다. 심지어 내가 직접 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조차 나는 정확한 원리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중엔 과학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위치에 놓인 작품은 배명훈의 단편소설 <엄마의 설명력>인데,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이 완벽한 소설은 세상의 권력을 움켜쥔 지동설주의자들의 음모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천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명명백백한 과학적 진실이 철저하게 은폐된 디스토피아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응? 거꾸로 쓴 거 아니냐고? 아니다. <엄마의 설명력> 속 세계에서는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며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갖은 실험적 방법을 동원한다. <엄마의 설명력>은 정말이지 앞뒤가 딱 들어맞는 과학적인 소설이다. 만약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맞다면 말이다. 이 소설은 과학적으로 엄밀하다고 해야 할지, 혹은 완벽하게 엉터리라고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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