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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고가에서
2002-05-29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지난 주말 새벽, 청계고가도로 위에서는 영화 같은 이벤트가 벌어졌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촬영현장. 자정 무렵부터 모여 준비를 마친 제작진과 꽉 막힌 도로를 재현하는 데 필요한 100여대의 자동차가 순식간에 동대문 평화시장 앞 청계고가도로를 점거해버렸다. 이때 시각 새벽 3시,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며 예정보다 3시간이나 빠른 새벽 6시경에 촬영을 마쳤다. 서울 도심 대로에서 이처럼 몇 시간 동안 차량 통행을 막고 영화촬영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물론 무단점거는 아니고 유관기관의 허가를 받았으며, 경찰이 통제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9년에 개통한 청계고가도로를 공식적으로 막고 영화를 촬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제작사에서는 지난 4월5일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아 속을 태우기도 했다. 경찰은 청계고가도로가 서울 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핵심 도로여서 통제할 경우 차량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던 것. 마침 영화촬영에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하는 서울영상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원군이 생겼고, 제작사에서 차량 통행량이 적은 일요일 새벽으로 일정을 조정하면서 이날 촬영이 실현된 것이다.

제작진들에게 눈도장이나 찍겠다고 촬영장을 찾았다가 졸지에 차량 대열 꽁무니에 차를 대고 ‘소품’으로 출연까지 했다(대열 맨 끝이라 ‘점연기’조차 불가능했음). 촬영 내내 통제 시점까지 왔다가 얼떨결에 다른 길로 돌아갔을 시민들의 불편을 상상하면 조바심이 났다. 솔직히 영화 찍는 게 뭐 대단하다고 시민들이 그런 불편을 감수하도록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시민들이 그까짓 불편 정도야 즐겁게 양해할 수 있는 명분을 영화로 제공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도 온갖 달리기 대회 하느라고 길 막아도 크게 나무라지 않는 것처럼 영화촬영 때문에 조금 불편해도 박수 쳐주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고 기대한다.

지난 칼럼에 대한 변명

<위 워 솔저스>를 본 소감을 빌려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슬로우 불릿> 이야기를 쓴 지난 칼럼으로 제 영화 홍보했다고 욕을 좀 먹었다. 한 제작자는 “혼자 지사인 척하더니 칼럼에서 자기 영화 홍보나 하고 있다”는 힐난도 했다. 아무리 개인적인 의견을 쓰는 칼럼이라고 해도 자사 홍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려 깊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무조건 사과한다. 하지만 쌍심지를 켠 비난과 힐난에 대해서는 해명을 좀 하고 싶다. 사실 원고를 넘긴 뒤 편집진으로부터 구설 걱정을 들었으나, 당장 개봉할 영화도 아닌데다 아직 시나리오 완고도 안 나온 영화, 제목 몇번 들먹인다는 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큰 반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홍보할 요량이었다면 겨우 그런 식으로 쓰지도 않았을 테고. 자평하자면, 그 칼럼의 행간에는 신출내기 프로듀서의 애환과 약간은 과장된 패기가 스며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기획하는 영화 준비작업이 예상과 달리 진도가 너무 더뎌 조바심은 나지만 의연한 척해야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절절한 애환이고, 할리우드영화보다 더 잘 만들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동력을 유지하려는 자가발전인 셈이다. 좌우지간 비판의 소리는 잘 간직하고 있을 테니, 초보 프로듀서의 자기 채찍질로 이해하고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