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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②] 소문난 잔치 속 천만 영화는 왜 사라졌을까?

여름 한국영화 빅4 결과 분석 및 투자배급사·제작사의 고민

“<범죄도시2>를 보고 시장이 되살아났다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다.”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최악의 시장이었다.”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로 이어지는 여름 한국영화 빅4의 스코어가 구체화되면서 산업 관계자들이 내놓은 평가는 냉정했다. 2019년 7~8월 총 4672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올해 같은 시기 관객수는 총 3124만명으로, 3년 전 수치의 67%만을 회복했다. <범죄의 재구성>(관객수 212만명), <타짜>(684만명), <전우치>(613만명), <도둑들>(1298만명), <암살>(1270만명) 등 한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던 최동훈 감독은 한국영화 역대 최다 제작비가 투입된 <외계+인> 프로젝트로 첫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한산: 용의 출현>의 경우 손익분기점은 돌파했지만 전편 <명량> 스코어(1761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애초 천만 관객을 점쳤던 기세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다. 한재림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이 출연한 <비상선언>은 손익분기점 500만명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성적(204만명)으로 극장 상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헌트>의 주연배우들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고 3주차 무대 인사까지 이어가며 발로 뛰는 홍보마케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손익분기점 돌파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상반기 최고 흥행작 <범죄도시2>의 기록(1269만명)에 비견할 스코어는 하반기에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캐스팅 단계부터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대작들의 연이은 실패로 시장 자체가 내상을 입고 투자가 위축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티켓값 인상에 따른 소비 행태의 변화

기대치에 비해 완성도가 아쉬운 작품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안될 작품들은 아니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외계+인>은 “마블 시리즈가 10여년에 걸쳐 쌓았던 세계관을 한번에 만들어내려고 한 점이 기획의 착오”(제작자 A)였다는 지적도 있지만 만듦새에 비해 흥행 성적이 너무 저조했다는 게 중론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까지 영화를 깎아내리는 일종의 마녀사냥 혹은 영화를 본 분들이 협소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생긴 왜곡”(제작자 B)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비상선언>은 높은 제작비 덕분에 시도할 수 있었던 새로운 기술과 흥행에 대한 압박이 서로 충돌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스토리를 놓고 “상업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다”(제작자 C)는 쪽과 “한재림 감독의 특기는 신파가 아닌데 높은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업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하지 못한 것 같다”(제작자 D)는 정반대 의견이 모두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이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제작자 E)며 <비상선언>이 전체주의 사상을 담은 영화로 매도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창작자도 있었다.

<범죄도시2>의 흥행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설 연휴 및 여름 시장이 부진한 것을 두고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가설은 티켓값 인상에 따른 영화 소비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투자배급사 책임자 F는 “가족 단위로 영화를 보면 10만원이 넘게 드는 시대에 유명 감독과 배우, 선호되는 장르라는 공식이 허물어졌다”고 평가했다. 티켓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소비자는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게 됐고, 눈높이는 높아지고, 관객 반응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작자 G는 “아침에 개봉한 영화를 두고 SNS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이 퍼지는 것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예매를 취소하면서 그날 저녁 바로 예매율이 하락한다”며 냉정한 분위기가 놀랍다고 전했다. 평균적으로 홍보마케팅을 6주에서 8주, 규모가 큰 영화의 경우 10~12주까지 진행하는 것을 감안할 때 입소문 마케팅은 너무 빠르게 영화의 성패가 판가름나게 한다. “특히 젊은 관객 중심으로 평이 좋지 않은 영화에 저항감이 커지면서”(제작자 A) <범죄도시2> <탑건: 매버릭> <한산: 용의 출현>처럼 이미 검증된 속편을 보려는 경향도 커졌다. 제작자 E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영화라는 서비스는 이제 고관여제품(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제품. 가격이 비싸거나, 본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제품 등이 해당된다.-편집자)이 됐다”고 주장했다. 선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평가가 부정적인 영화를 소비 후보에서 아예 제외하면서 한번 낙인 찍힌 영화가 반등의 기회를 노리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인위적으로 생긴 부정적 여론이 있더라도 맞불을 놓아줄 사람들이 있으면 만회가 가능했다. 지금은 그런 우군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제작자 H는 극단적인 영화평이 입소문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했다. “가령 CGV 에그지수는 좋다, 별로다라는 이분법적으로 영화를 평가한다. 평론의 힘이 죽은 게 가장 큰 원인이고,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하며 만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너무 짧아졌다.” 최근 영화계에서 제기된 바이럴 마케팅 업체의 역바이럴 작업 의혹은 이같은 초반 입소문의 무게와 결부되면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영화를 헐뜯는 조직적인 행태가 교묘하게 진화하면서 거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가 입는 타격 역시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이 우려를 표했다. 과거 포털 사이트 네티즌 평점이 별점 테러를 당했던 것처럼 CGV 에그지수 역시 조작될 수 있다고 문제 제기하는 창작자들도 적지 않았다.

달라진 관객의 취향

하지만 티켓값 상승에 따른 소비자의 변화, 입소문과 (역)바이럴의 영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너무 편리한 접근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먼저 실관람객의 만족도를 계량화한 CGV 에그지수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특히 대작일수록 모수가 크기 때문에 어떤 세력이 의도적으로 수치를 조작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작자 I는 “재미있으면 보고, 잘되는 영화는 잘된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바이럴인지 역바이럴인지 판단할 수 있다”며 바이럴 논란이 과장되어 있다고 전했다. 투자배급사 출신의 제작자 J는 “바이럴은 2차적인 문제”이며 <탑건: 매버릭> <헤어질 결심>이 입소문으로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 역시 착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재미가 가장 중요한데 이번 여름 영화는 전부 재미없었다. 이들만 한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관객이 쏠린 것이다. <외계+인>이나 <비상선언>이 재미있었다면 앞선 영화들이 롱런에 성공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선호하는 영화의 양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그다음 스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배급사 책임자 K는 “감정을 강요하는 콘텐츠, 기존의 캐릭터나 서사를 설명하는 연역적 문법이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여름 시장을 통해 확인했다고 전한다. 제작자 H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서사 라인이 직관적이지 않거나 복잡한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쪽으로 영상 콘텐츠 소비 경향이 바뀐 것을 발견했고, 제작자 G는 “영화의 외형적인 사이즈를 키우는 것보다 관객이 원하는 지점을 소구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극장산업 회복을 기대했던 여름 시장에 1주 간격으로 대작이 개봉하면서 불가피했던 출혈 경쟁은 고려돼야 한다. 투자배급사 책임자 L은 “천만 영화가 2편 나왔던 2015년에는 올해처럼 한국영화가 줄줄이 사탕처럼 개봉하진 않았다”며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했음을 언급했다. “새로운 작품이 연달아 개봉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에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년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게 사실이다.” 투자배급사 출신 제작자 J는 <범죄도시2> <마녀 Part2. The Other One> <헤어질 결심>이 2주 차이로 개봉하며 서로 윈윈할 수 있었던 점을 언급하며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가 개봉 전략을 잘못 짰다고 지적했다. “오판이었다. 팬데믹 이전 여름 시장에서 1주 간격으로 대작이 개봉한 것은 시장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장에도 예의라는 게 있는데 자충수를 둬서 서로 피해를 본 상황이 됐다.” 20년 동안 업계에서 일한 제작자 M은 올해 시장이 가장 최악이었다고 평가한다. 제작자 E 역시 “2등을 해서는 안되는 영화들이 동시에 들어온 것이 패착”이었다고 꼬집었다.

프로듀싱의 부재가 야기한 문제들

지난 <씨네21> 1371호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에서 다뤄진 주요 화두 중 하나는 상업영화 내 작가-감독의 창작과 프로듀싱의 관계였다. 비평 대담에 참석한 평론가들은 거대 제작비가 투입되고 톱배우들의 멀티캐스팅을 자랑하는 프로젝트를 힘 있는 ‘스타감독’들이 연출하면서 공정 과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완충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제작자 A는 한국 상업영화가 “제작비라든가 영화의 만듦새라든가 영화의 기획적인 측면 등을 좀더 치밀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프로듀싱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건 맞다”고 평가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여름 영화 중 모니터링 시사회를 아예 진행하지 않은 작품이 있었음을 언급했다. 요컨대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서 관객이 어떻게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고 그걸 토대로 수정 사항이 나오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된 것”(제작자 B)이다. “상업영화를 만들면서 공격을 많이 받다보니 관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늘 궁금하다”는 제작자 D는 “신별로 점수를 내서 높은 신은 살리고 낮은 신은 빼든지, 보강을 해서 더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모니터링 시사회를 아예 하지 않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모 영화에 대해 “‘내 작품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천명한 셈”이라고 코멘트했다. 반면 이러한 진단은 결과론적인 얘기라는 의견도 있었다. 투자배급사 책임자 N은 “흥행으로만 답할 수는 없잖나. 결국 시나리오가 좋아서 선택했고 감독을 믿었고 편집본도 내부에서 괜찮다 싶어 완성된 영화일 텐데, 뛰어난 감독들의 영화가 충격적이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제작자들은 “대중이 그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다른 쪽에 있었던 거다. 창작자의 새로운 도전이었고 관객과 소통이 안됐을 뿐,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기획 의도는 드러났기 때문에 프로듀싱의 문제로 볼 순 없다”, “결과를 떠나 작품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준비 공정과 조율에 관한 것 역시 프로듀서의 능력이라 그 역할이 부재했다고 말할 순 없다”며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아쉬움 속에 여름 시장이 마무리되고 예년보다 빠르게 도착할 추석 연휴에는 JK필름이 제작한 <공조2: 인터내셔날>만 출사표를 던졌다.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대작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본래 기대했던 방식의 회복은 요원해졌다. 기약 없이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누적되면서 투자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불과 석달 전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 영화계는 희망을 읽었고 이는 연초 설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을 때 제기된 위기론을 뒤집었다. 그만큼 올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은 낙관과 비관을 섣불리 단정짓기 힘든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첫날 관객수가 각각 18만명, 11만명에 그쳤던 <탑건: 매버릭>과 <헤어질 결심>의 장기 흥행을 보며 제작자 O는 “결국 영화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작품만 좋다면 입소문으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고무적이라고 답했다. 한편 대부분 극장 수익에 의존하는 기존 비즈니스 구조에 근본적인 한계를 느낀 일부 플레이어들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주목할 것은 영화인들이 통상적으로 정의할 ‘시장’과 ‘산업’의 범주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느냐다.

2022년 한국영화 타임라인

2022. 01 - 설 연휴 극장가 부진

<해적: 도깨비 깃발> <킹메이커> <특송>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코로나19 국면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2022. 04 -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영화관람료 1천원 인상 발표

7월부터 적용되어 주말 1만5천원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2020년, 2021년에 이어 3년 연속 인상이다

2022. 05 - <범죄도시2> 개봉

최종 스코어 관객 1269만명을 동원한 <범죄도시2>가 개봉해 극장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2022. 06 - <브로커> <헤어질 결심> 개봉

칸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두편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첫주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2022. 07 -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개봉

이전 여름 영화들보다 1주 앞당겨 <외계+인> 1부가 먼저 개봉하면서 여름 극장가의 문을 열었다.

2022. 08 - <비상선언> <헌트> 개봉

200억원 이상 투입된 한국영화 대작 4편이 한주 간격으로 연달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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