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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영화 ‘애프터 미투’ 대담 ②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이자연 사진 백종헌 정리 윤현영(자유기고가) 2022-10-06

<애프터 미투>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과의 대담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이후 다양한 여성 관련 이슈가 있었다. 그중 미투 운동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유가람 일단 미투 운동이 지닌 폭발력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내가 묵시하고 눈감고 있었던 것만 같아 죄책감과 부채감이 컸다. 그런 의미에서 연대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미투 운동이 영화계, 문화계, 체육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여성감독의 협업으로 다루면 기존 언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박소현 2018년 어느 날, 용화여고 학생들이 창문에 붙인 포스트잇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다.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가 이제는 수면 위로 올라올 때가 됐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동시에 주변인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들이 많아 자연스레 스쿨 미투를 조명하고 싶었다.

소람 <그레이 섹스>는 내 경험에서 시작됐다. 한때 서로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은 그 사람과 스킨십을 하며 사귀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갑자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굉장히 불쾌했다. 그러다 2018년 미투 운동이 퍼지기 시작할 때 이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그 사람은 나와 달리 그날을 재미있는 하루로만 기억할 것 같아서 그대로 문자를 보냈다. 네가 한 행동이 성추행이라고. “그 사람과 잘되려고 너도 노력하지 않았어?” 하고 반문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와 연인이 돼야만 그 사람이 나를 성적 대상으로 이용한 게 아니라고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문제의 핵심은 불쾌한 감정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애매함에 있다.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솜이 기억이 증거가 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를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중 행복 선생님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피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하고, 그 이후 자신을 돌보고 치유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MeToo는 먼저 발언한 사람을 향한 동조이자 화답이다. 이 말이 피해자 사이의 공감을 형성한다면 #WithYou는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까지도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만큼 미투 운동은 연대가 중심에 선 일이었다. 이러한 감각을 제작 과정에서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소현 <여고괴담>에 이런 장면이 있다. 포스트잇이 모자라서 반마다 돌아다니며 포스트잇을 모으던 친구에게 출연자가 “너 진짜 멋있다”고 말을 건네니까 그 친구가 웃으면서 “너도 해”라고 답한다. 그 둘은 그때 처음 말해본 사이였는데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화답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왜 그렇게 #WithYou가 많았을까? 아마 친구들이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발언을 넘겨 듣고 외면했던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강유가람 학교 안에 피해자가 있는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른다는 선생님의 말에 “전부예요!” “우리가 알잖아요!” 하고 외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사실 다 알고 있었는데 말하지 못했던 거였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이후의 시간>을 촬영할 때는 전주의 한 대학교수 성희롱 사건 재판이 있어서 찾아갔는데 학생들은 물론 여성단체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법정에 앉아 있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각각의 현장에서 다들 생존의 방식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법정 내부는 촬영이 불가해 영화에 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아주 많은 걸 느낀 순간이었다.

이솜이 사실 우리 모두 네 작품을 하나의 갈래로 엮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각자 머릿속에 그려둔 구체적인 그림은 있지만 텍스트나 말로 완성이 안되는 미묘한 지점이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 미투 운동이라는 주제로 의기투합해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연대의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박소현 그러고 보니 울컥한 순간이 또 있다. <여고괴담> 참여자들이 학교에서 명예훼손을 걸지 않을까 걱정해서 변호사를 소개받아 자문을 구하게 됐다. 변호사님이 무료로 우리를 도와주셨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용화여고 졸업생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소름이 쫙 돋았다. 결론적으로 문제될 건 없었지만 혹여나 문제되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며 독려해주셨다.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그 목소리에서 모두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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