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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무가’ 배우 박성웅, “연기의 한과 흥”
김수영 사진 최성열 2022-10-12

마성준 법사, 일명 ‘마법사’는 무당 학원에서 굿을 배운 청담도령이나 신남과는 급이 다르다. 13살에 내림굿을 받고 30대에 최고 박수무당이 된 마성준은 전매특허 소원굿으로 이름을 날렸던 화려한 과거가 있다. 왕년의 ‘신빨’이 떨어져 이제는 ‘술빨’로 버티고 있는 40대 퇴물 무당 마성준을 완성하기 위해 박성웅은 한달간 면도도 하지 않고 살도 찌웠다. 일생일대의 굿판을 벌이는 <대무가>에 정경호, 윤경호, 오대환을 합류시킨 것도 박성웅이다. 될 자리를 알아보고 판 벌일 줄 아는 영험한 배우 박성웅의 새 도전은 이렇게 완성됐다.

-원작 단편영화에는 마성준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점이 출연을 결심하게 했나.

=대본이 좋았고 이한종 감독의 단편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3천만원의 제작비로 이런 단편을 만들어내다니. 이 감독의 연출 역량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재능 있는 감독의 미래에 투자하는 편이라 내가 참여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에게 박수무당이라는 캐릭터도 새로운 도전이잖나.

-마지막 굿판 촬영을 위해 3개월 넘게 소리와 춤을 연습했다고.

=춤 연습을 하면서 가사를 달달 외웠다. 툭 찌르면 나올 정도로 계속 했다. 랩은 각자 느낌 가는 대로 했는데 나는 두 배우들을 쫓아간다 생각하고 따라했다. 같이하다보면 나아지지 않겠나 하고.

-박수무당은 새롭게 연기해보는 직업이지만 마성에 취해 있는 마성준 캐릭터는 배우의 원래 모습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극중에 살짝 멜로가 있는데 이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나는 무당이잖나. 무당이 연애를 해? 신부는 아니니까 금기시되는 건 아니지만 무당의 세계에서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무당이라고 사랑의 표현이 따로 있을까? 마성준답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면 되겠지. 이미 마성준 캐릭터가 잡혀 있는 상태라 능글능글하게 하게 되더라.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붉은 화장이 인상적이다.

=약간의 애드리브가 들어갔다. 얼굴에 빨간 줄을 쫙 그렸더니 인디언 같더라. 극중 내가 알코올중독자잖나. 술을 안 마시면 수전증이 있을 테니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렸더니 희한한 무늬가 됐다. 원래 코쪽에는 화장이 없었는데 조금씩 내려 그려보니 ‘독수리 오형제’ 같기도 했다. 옛날 잘나가던 시절에는 얼굴에 화장선이 반듯한데 마지막 굿할 때는 일부러 삐뚤빼뚤 칠했다. 입술도 시커멓고 빨갛다. 괴기스러운 느낌이 더해져 좋았다.

-이현종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이 감독은 단편을 만들고 장편까지 쭉 밀고 왔다. 그만큼 자기 생각과 확신이 분명했다. 갸우뚱하게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얘기를 듣다보면 감독 말이 맞는 것 같더라. (웃음) 그러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좋은 장면과 결과물을 보기도 했다.

-어떤 장면이 그랬나.

=마지막 굿판은 다 원테이크였다. 3일 동안 10번 넘게 촬영해서 그런 장면이 나왔다. 이미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10번 넘게 테이크를 가도 필요한가보다 하고 따라가게 됐다. 그러다 굉장히 고무적인 순간이 있었다. 보조 출연자 50, 60명 앞에서 처음 리허설을 했는데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그분들이 함성을 치면서 오래 박수를 쳐줬다.

극중에 없는 장면이고 그냥 리허설이었는데 그렇게 해주시더라. 그래서 커튼콜하듯이 정성스럽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마성준은 굿을 한과 흥으로 설명한다. 어쩌면 연기도 그렇지 않을까. 연기하면서 흥을 느낀 건 언제부터였나.

=처음! 흥 때문에 이제까지 버틴 거다. 데뷔작인 <넘버3> 때부터 현장이 너무 좋았으니까. 그땐 신인이라 한은 없었다. 무명 생활 10년을 하고 나니 한이 생겼다. 드라마 <태왕사신기> 때 죽기 살기로 연기하다 말에서 세번 떨어지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한이지. (웃음) <신세계>의 이중구도 한이었다. 인생에 세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는데 두번의 큰 기회가 오는 듯하다 잘 안됐다. 만약 전작에서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면 얼굴이 알려져서 이중구 역이 내게 오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최민식, 황정민이랑 기 싸움을 하는 저 사람 누구야? 어디서 혜성처럼 나타났어?’라고 했던 그때 이미 나는 14년차 배우였다. 한이 다른 식으로 분출되면 피곤한데 연기로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무가>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 노래다. 배우 박성웅이 <대무가>를 쓴다면 어떤 가사가 담길까.

=참 잘 버텼다. <신세계> 이후로도 수많은 작품을 하면서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다. 그것까지 잘 버텼다. 어렸을 때 잘 안 풀린 게 이제는 고맙다. 그때 잘됐으면 그냥 내가 잘나서 잘됐구나 하고 왕관을 버틸 모가지의 힘이 없었을 거다. 씌워줘도 삐뚤빼뚤. 마흔 넘어 잘되고 나니 사람들하고 같이 가는 법도 알게 되고 삶의 무게도 버틸 수 있겠더라. 오늘도 스탭들이 “화보 찍고 인터뷰하고 힘드시죠”라고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알리고 인터뷰하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대무가> 속 20대 신남은 사회생활을 시작도 못하고 낙방을 거듭한다. 30대 청담도령은 최고가 되어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들이 후배라면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나.

=영화를 두세번 보고 나니 <대무가>가 20대, 30대, 40대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더라. 20대도 신남처럼 취업난이 심각하잖나. 30대는 어느 정도 일해왔으니까 성공에 더 집착하게 되고 40대, 50대라면 IMF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신남에게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고, 30대 청담도령에게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40대 마성준에게는 누구나 실패는 하는 법이며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내가 잘하는 일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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