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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약한영웅 Class 1’ 박지훈, “사연 있는 눈빛”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2-11-16

샤프펜슬로 급소를 노리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해 심리전으로 압박한다. 약한 영웅이라는 형용 모순은 연시은(박지훈) 앞에서 점차 치밀한 논리를 갖추어간다. 왜소한 체격에 굽은 어깨, 들뜬 기색이라곤 없이 늘 탈색된 낯빛을 지닌 전교 1등이 어떻게 싸움의 귀재가 될 수 있을까. 지극히 웹툰다운 상상력을 현실 한복판에서 실현한 배우 박지훈은 연시은의 집요함, 취약성, 그리고 살기 어린 전투력을 모두 눈빛에 담아냈다. 모든 것이 아직 미완이기에 비로소 비범한 영웅이 된 이 남자는 마치 무대를 장악하듯 교실이라는 이름의 카오스를 가뿐히 집어삼킨다.

-내내 미소 띤 얼굴로 리듬을 타면서 화보를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워낙 좋아하니까 화보 촬영장에 오면 혹시 직접 선곡해온 플레이리스트를 틀 수 있을지 여쭤본다. 촬영에 몰입하는 나만의 루틴이랄까. 좋아하는 노래들 속에 잠긴 채로 사진을 찍으면 확실히 좀더 편안한 얼굴이 나오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현장이 즐겁고 신나야 결과물도 잘 나온다고 믿는다.

-<약한영웅 Class 1> 촬영을 마치고 데뷔 후 첫 단독 콘서트 준비, 6번째 미니앨범 《디 앤서》 작업,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지금은 작품 프로모션까지, 올해 정말 쉼 없이 달렸다. 지금 돌아보니 어떤가.

=1월부터 액션스쿨을 다녔고 반년 정도 매달려 <약한영웅 Class 1> 촬영을 마쳤다. 직후에 앨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쇼케이스, 콘서트를 준비하다보니 말 그대로 몸이 두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솔로 콘서트여서 혼자 24곡을 채우고 중간중간 토크까지 하는 작업이라 큰 도전이었다. 원래도 힘들 때 홍삼을 챙겨 먹곤 했는데, 이번엔 하루에 두개씩 먹었다. (웃음)

-연시은은 자세로 성격을 설득한다. 책상형 인간답게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등과 어깨가 구부정하고 시선은 남들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다.

=기본적으로 체격이 왜소한 친구다. 그리고 친구 하나 없이 지내온 마음의 어두움을 몸의 자세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의기소침한 건 아닌데, 그래도 약간 슬퍼 보였으면 했다. 연시은의 뒷모습에선 숨겨진 사연이 읽히지만 그렇다고 제목처럼 ‘약해’ 보이진 않는다. 타고난 기운이 강한 사람으로 표현되길 바랐다.

-영빈의 계략으로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시은이 채점하다 말고 연신 자기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다. 과격한 손놀림과 달리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를 동안 거의 미동조차 없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처절해 보인다. 표출하기보다 억누르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

=초창기에 캐릭터 디테일을 잡아갈 때는 지금보다 과하게 표현했다. 이 사람이 숨겨둔 무서움을 제대로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보여주기식의 무언가는 전부 빼버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것들이 있지만 바깥의 표정은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아주 미세한 포인트만을 노출해야 했다. 그저 당면한 상황에 집중하기로 하고 캐릭터의 성격대로 움직였는데, 어느새 서서히 눈빛이 달라졌다. 촬영하면서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시은은 가끔씩 귀엽기도 하다. 의도한 건가. (웃음)

=하하, 귀엽지. 시은이 가지고 있는 은근한 귀여움도 마찬가지로 일부러 애써 연기해선 안되는 지점이었다. 그렇지만 관객이 보기엔 분명 시은이 의외로 귀여워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들었다기보다 수호(최현욱)와 범석(홍경)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작품 속 시은, 수호, 범석 3인방의 관계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나. 사람 박지훈은 누군가의 친구일 때 주로 어떤 모양의 우정을 나누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안 친해도 축구 한판 제대로 하고 나면 끈끈해지는 게 이 나이, 이 시절의 관계 같았다. 무엇보다 시은도 결국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친구를 원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실제의 나는 시은과 여러모로 다르다. 친구들과 게임 같은 걸 할 때는 주로 분위기를 이끄는 쪽이고, 대놓고 살갑게 표현하는 편은 못되지만 몰래 생일 선물을 챙긴다든지 하는 식으로 마음을 전하려 한다.

-촬영장에서 호흡한 세 배우의 실제 성향은 조화로웠나.

=최현욱 배우는 직진하고 거침없는, 홍경 배우는 단정하고 절제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각각의 상대방에게 맞출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연습생 시절에 막내 생활을 오래 해서 몸에 밴 습관이다. 여러모로 우리의 밸런스는 아주 적절했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배우는 정말이지 좋은 형, 동생이어서 무언가 힘들거나 부자연스러울 일이 없었다. 잠깐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두 사람이 나를 열심히 배려해주고 있었던 걸까? (웃음)

-후반부로 가면서 시은의 상태는 감정적 파국으로까지 치닫는다. 결과적으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지만, 과정에서 헤매는 시간은 없었나.

=물론 어려웠다. 시은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다다르는 장면을 연기할 때 왜 그런 폭발의 순간까지 나아가게 되었을지 스스로 계속 질문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뿐인데, 시은은 자신이 내어준 진심과 상대에게 받은 마음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기분을 느끼고 무너진다. 또래에 비해 조숙하지만 아이 같은 면도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이 연시은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였다.

-미니 앨범 《디 앤서》로 가수로서도 한층 성숙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엔 작사에도 관심이 있다고 밝혔는데.

=가끔씩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박힐 때가 있다. 내 마음속에 ‘저장’도 그렇게 튀어나온 거였다. 얼마 전엔 온통 책상이란 단어가 맴돌아서 ‘갑자기 왜 책상이지? 그런데 이 책상이란 단어로 뭘 해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엄청 했다. 그래서 작사가 내게 잘 맞는 일 같다. 아직은 많이 어설프고 부끄러운 수준이라 앞으로 조금씩 더 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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