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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2’, 혼자도 괜찮지만 함께하면 더 좋은
이자연 2022-11-17

멀리 돌아갈 줄 모르고 정면 돌파만을 정답으로 아는 탐정,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가 돌아왔다. 두 오빠에게 예측불허 말썽쟁이로만 여겨졌던 전편과 달리 에놀라는 제 이름을 건 탐정 사무소를 차리며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어느 날 실종된 언니를 찾아달라는 소녀의 부탁을 받은 에놀라는 런던을 중심으로 성냥공장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예측하지 못한,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진상을 맞닥뜨린다. "가끔은 내가 널 너무 독립적으로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넌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그런데 힘을 합치면 끝내주게 더 잘할 수 있어.” 어머니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에놀라는 작은 점들을 선으로 이어나간다. 그 연결 끝에 에놀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뭘까. 지리멸렬한 정반합이 만들어낸 진일보는 여성 노동자의 역사로, 여성 중심의 이야기로 조용히 완성된다.

여성 참정권과 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싼 첫 사건을 해결한 후 에놀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혹독하다. 탐정이 아닌 비서 취급을 하거나,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여자라서 탐정 경험이 부족할 거라는 비난의 말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 지쳐 사무실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베시(세라나 수 링 블리스)가 에놀라를 찾아온다. 높은 짐에 얼굴이 가려 안 보일 정도로 작고 어린 여자아이다. 그는 같이 살던 언니 세라가 실종되었으니 찾아달라는 부탁을 전한다. 첫 작전은 라이언 성냥공장 잠입 수사. 에놀라는 베시와 세라의 일터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한다. 온갖 임기응변을 부려 세라의 자취를 좇던 중 에놀라는 놀라운 사실을 직면한다. 600명에 육박하는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성냥공장에서 의문의 죽음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장은 전염병 티푸스 때문이라며 아침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증상 확인 단계를 거쳤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에놀라 홈즈>가 여성 참정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에놀라 홈즈2>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와 그 역사를 바탕으로 에놀라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원인 불명의 죽음에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공장장의 언어폭력,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이 일상이 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이에 조금씩 적응하여 무기력해져갔다.

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 ‘브리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 투쟁은 성냥 원료인 백린의 치명적인 위험성과 열악한 근로 환경에 저항하는 여성들에 의해 일어났다. 672명의 여성 노동자가 참여한 이 투쟁은 기금도, 조직도 없어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주간의 파업 끝에 결국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독려한 여성들의 연대와 사회적 지지, 여론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놀라 홈즈2>는 성냥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을 다루며 스토리의 중심에 무엇을 두어야 할지 명민하게 살폈다. 주인공으로서 에놀라의 능력과 힘을 부각하기 위해 다른 여성을 뒤로 두지 않고, 오히려 사건 조사를 위해 부지런히 활보하며 마침내 이들을 발견해내는 역할을 에놀라에게 부여했다. 그들의 눈부신 투쟁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게끔 주요 장면에서 에놀라가 한 발짝 물러선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놀라는 성인이 되었다. 어머니 유도리아의 품을 떠나 어엿한 에놀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는 두발로 자립했다. 예상치 못한 셜록(헨리 카빌)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 이제 그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판단 기준으로 세운다. 그렇다면 에놀라 다음의 세대적 공백은 어떻게 채워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맨 처음 장면으로 다시 돌아간다. 돈 한푼 없으면서도 사라진 언니를 찾기 위해 탐정 사무소를 찾은 꿋꿋한 베시. 경찰이나 유명한 탐정보다 자신의 두려움과 걱정을 알아줄 여성 탐정을 먼저 떠올린 영리한 소녀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세대적 연대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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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