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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원칙과 변칙으로 인질을 구출하라: 임순례 감독의 ‘교섭’
조현나 2023-01-19

<리틀 포레스트> 이후 5년 만이다. 임순례 감독이 차기작으로 택한 <교섭>은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자국민들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다.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한 채 홀로 귀가할 것인가. 모 아니면 도의 냉혹한 결과를 두고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교섭관은 신중하게 수를 펼쳐나간다.

버스로 이동하던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습격을 당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탈레반이 내건 살해 시한은 단 24시간. 교섭 전문 외교관 재호(황정민)는 소식을 접한 뒤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한편 현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 역시 상황을 전해 듣고 현장에 합류한다. 재호가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을 시점엔 이미 탈레반이 제시한 시간의 3분의 1도 채 남지 않은 상황. 1초가 시급한 때에 난데없이 치고 들어오는 대식의 말이 재호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재호는 크게 당황한다.

영화의 주요 공간은 사막 위로 햇빛이 작열하는 이국의 땅 아프가니스탄, 실제 촬영지는 중앙아시아의 요르단이다. 촬영 불가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을 대체한 장소인데 열기 가득한 이곳에서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춘 재호는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이방인 재호의 뒤를 자연스레 쫓게 된다. 재호의 시점숏이 극의 분위기를 빠르게 전환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낯선 풍경을 배경으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총기 액션이 펼쳐지지만 액션 신만이 긴장감을 추동하는 주된 요인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로지 인질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재호와 대식의 활약이다.

재호와 대식의 방식은 확연히 구분된다. 재호가 외교관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절대 넘지 않는 원칙주의자라면 대식은 인질을 구출할 방안을 물밑으로 탐색하며 변칙을 만들어내는 자다. 교섭이 어그러질 때에도 재호는 들끓는 속내를 갈무리해 내보낼 수밖에 없지만 대식은 가감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식이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 또한 대식이다. 때문에 극의 중반까진 두 사람의 입장이 충돌하고 교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굴곡이 이어지며 시선을 끈다. 중반 이후론 이들의 간극이 조금씩 좁혀지는데, 결국 인질을 살려야 한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이때 통역가 카심(강기영)은 재치있는 언변으로 숨통을 틔우며 둘의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이토록 개별 인물의 특성이 두드러짐에도 <교섭>은 캐릭터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힘을 쏟지 않는다. 가령 캐릭터의 전사도 짧게 암시하거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인질들의 사연도 구체적으로 노출하지 않는다. 요컨대 <교섭>이라는 제목이 주지하듯 영화가 보여주고 가고자 하는 방향 또한 명확한 것이다. 교섭 과정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카심이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통역으로 인해 대화가 딜레이되면서 맥락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의 긴장감이 심화되며, 이 입장은 대화 도중 수시로 반전된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다음을 대응하는 협상 과정은 시종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요르단 로케이션 촬영과 캐스팅 등의 요소 외에도 <교섭>은 여성감독이 처음으로 제작한 100억원 이상 규모의 영화라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커진 예산만큼 스케일 또한 넓혔지만,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임순례 감독의 일관된 특성은 <교섭>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협상 과정을 자극적으로 소화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질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 이 인본주의적인 특성이 <교섭>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결을 달리하는 요소이자 영화가 마지막까지 본연의 우직한 힘을 잃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 <교섭>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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