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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이’ 김현주, “크나큰 힘을 준 용병복”
김소미 2023-01-26

사진제공 넷플릭스

- SF·액션 장르에 처음 도전한 작품인데 출연 분량 내 액션 비중이 상당히 크다.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 TV드라마 작업이 주가 되면서 캐릭터에 다양성을 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었기에 늘 마음 한편에 갈망이 있었다. 그러다 <지옥>이 끝난 뒤 연상호 감독님의 새 프로젝트 <정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액션이 많다는 소리에 우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정이>를 계기로 가만히 되짚어보면, 말로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정작 내면은 폐쇄적인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비율적으로 조금 더 컸던 게 아닐까. 좀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이런 기회가 일찍 찾아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 세간에서 보는 이미지와 달리 배우 본인은 오랫동안 액션에 관심이 있었고 심지어는 잘하는 경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활약한 양자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동안 “긴 리허설”을 해온 셈이다.

= 훌륭한 기술과 편집의 도움을 받았지만. (웃음) 원래 격투기 종목을 굉장히 좋아한다. 집에서 TV로 자주 본다. 이런 거 저런 거 봐둔 게 많으니 연기에도 실제로 도움이 됐다. 직업이 배우인지라 알게 모르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감각을 흡수했달까. 워낙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전까진 내가 직접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잘 못했다. 아마 내 몸과 이미지가 액션과 안 어울릴 거라는 스스로의 편견 때문이었겠지. <정이>로 제대로 그 시험에 든 거다. 좋아하니까 그냥 해보자. 연습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기회였다.

- 전설의 용병 김현주도 복제된 AI 김현주도 낯설다. 우선 후자부터 이야기해보자. 테크닉이 필요한 연기였는데.

= 인간답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 것, 처음엔 그 개념이 가장 어렵고 애매했다. 누가 봐도 그저 ‘로봇 연기를 하고 있는 김현주’로만 보일까봐. 정이가 실험용 전투를 시작할 때마다 눕고 일어서는 동작, 작동이 꺼지고 켜질 때의 모습 등을 충분히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 다양한 전문직을 연기했지만 군인은 처음이다. 특히 무거운 용병복을 입고 연기하는 것은 어땠나.

= 이번 영화를 찍을 때 내게 크나큰 힘을 준 게 용병복이다. 입는 순간 갑옷처럼 무겁고 뻣뻣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서 액션 장면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현장에서 용병복을 입어야 비로소 힘이 나고 자신감이 생기는 묘한 경험도 했다. 영화에서 정이가 기계 모습 그대로 상반신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CG를 위해 용병복을 벗고 맨몸에 모션캡처 슈트만 걸친 채 촬영해야 했는데 하루 종일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슈트를 벗은 정이의 마음일 수 있겠다고.

- 전설의 용병 상태로 영원히 박제된 엄마를 연구하는 나이 든 딸이자 과학자 역할에 고 강수연 배우와 함께했다.

= 정이가 기계인 모습 그대로 상반신만 잘린 채 실험실에 불려오는 장면에서 강수연 선배님이 문득 “이런 네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 못 보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정이로서 감정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고 설정상 윤서연(강수연)이 나의 딸이라는 사실도 모르지만, 선배님은 나를 보며 온갖 감정을 한없이 느껴야 했으니 얼마나 애틋했을까. 그래서인지 선배님과 연기하는 어떤 신에서는 나도 불쑥 감정이 올라와 눈에 눈물이 맺혔었다.

- 강수연이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과 존재감을 생각하면 같은 여성배우로서 남다른 영향을 받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특히 내 나이대 여성배우들에게 그분은 꿈의 이름 아닌가. 선배님은 여전히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현장에서 똑같이 긴장감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나와 당신이 나란한 동료 배우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다. 큰 아우라를 스스로 깨트린 거였다. 캐릭터를 혼자 파고들면서 나만의 숙제처럼 안고 가야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정이>처럼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 옆에 있기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있다. 분위기를 잘 이끄는 성격은 못되는 내가 선배님이 만들어주신 자리를 빌려 관계 속에 차분히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선배님의 부재 이후 연상호 감독님과 류경수 배우를 비롯한 <정이>팀은 애도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돈독한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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