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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 영화제 - <처녀의 샘>
2001-03-26

<처녀의 샘>

Jugfruk llan/ The Virgin Spring

1959년, 출연 막스 폰 시도, 군넬 린드블롬

북구의 중세 전설을 토대로 만든 <처녀의 샘>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제7의 봉인>과 “신은 과연 침묵하고 있다”고 p>말하는 <침묵>(1963) 사이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이건 <처녀의 샘>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역사적 시기의 측면뿐 아니라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 이 영화가 취하는 태도의 측면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처녀의 샘>은 부조리하게도 순결한 영혼이 오히려 고난을 겪어야만 하고 그런데도 신은 그저 방관하고만 있는 이 사악한 세상을 통탄할 것처럼 진행된다. 순정한 영혼을 지닌 소녀 카린은 교회에 가던 도중 양치기 형제들을 만나 그만 겁탈을 당한 뒤 살해당하고 만다. 이 사실을 안 카린의 아버지 퇴레는 양치기 형제들을 모두 죽인다. 퇴레의 이 ‘잔인한’ 복수는 과연 침묵하고 있는 신을 대신한 정당한 정화(淨化)의 행위였을까? 마지막까지 신의 존재 여부는 증명되지 못했건만 영화는 퇴레가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처녀의 샘>이 종교적인 주제에 대해 이처럼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은 베리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베리만이 술회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를 만들 때쯤에 그의 종교적 갈등은 이미 상당히 미약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영화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관심을 끈 것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강간과 복수 같은 극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카린이 강간당하고 또 퇴레가 복수를 행하는 난행(亂行)들을 영화는 또렷이 지켜본다. 퇴레가 양치기 형제들을 살해하는 장 같은 경우는 아예 카메라 앞에서 이뤄질 정도다. <처녀의 샘>은 세상의 난폭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이런 장면들 때문에 개봉 당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예컨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 영화에 대해 미국의 평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역겹다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일부 장면들에 대해 불쾌감을 갖는 어떤 이들이라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풍기는 우울하게 신비로운 ‘북구적’ 정조(情調)만은 쉽사리 거부하긴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