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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예스터데이
2002-06-11

시사실/ 예스터데이

■ Story

한반도가 통일된 뒤인 2020년. 은퇴한 과학자들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와중에 이 사건에 투입된 특수수사대의 반장 석(김승우)의 아들까지 납치된다. 인질극이 벌어지던 현장에 뛰어들어간 석은 자기 아들을 쏘게 된다. 아들이 범인들의 옷에 싸여져 있었던 것. 석은 아직 죽지 않은 아들을, 완전히 회생시킬 의료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냉동보관시킨다. 1년 뒤 도심 한가운데서 경찰청장이 납치된다. 특수수사대는 이 일련의 사건이 과거에 국방부가 추진했던 비밀 프로젝트와 연관돼 있음을 알게 된다.

■ Review

‘SF’(공상과학)라는 말뜻에 충실하게 다가선다면, <예스터데이>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본격적인 SF영화다. <천사몽>이 미래와 과거를 넘나들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야기의 전제가 되고 갈등의 중심에 놓이는 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 마찬가지다. 과학의 발달이 아니라, 한국이 일본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는 과거사의 가정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해결점이 된다. <예스터데이>는 DNA 조작기술의 발달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또 정체성이라는, SF장르의 주된 모티브를 이야기 전개의 한축으로 삼는다. 화면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에 공중을 나는 광고비행선, 배경 하늘에 CG로 채워넣은 초고층 빌딩, 이와 대조되는 무국적 이미지의 슬럼가 등이 어우러져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살려낸다. 특수수사대가 사용하는 첨단 수사장비의 디자인이나 쓰임새도 그럴듯하다. 처럼 구구절절, 재차삼차 설명하지 않고 앞으로 치닫는 연출도 SF답다.

그러나 <예스터데이>를 SF의 성공적 출발로 보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우선은 연출의 리듬과 이야기 전달 능력이다. 도입부에서 범인들이 석의 아들을 납치해놓은 건물 안에, 석이 이끄는 특수수사대 요원들은 진입하기 전에 수류탄을 던져넣는다. 수류탄이 터져도 아이가 다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뭔지 제대로 설명이 되질 않는다. 이 무모한 작전을 보다보면 아이가 석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그걸 다시 확인하기까지 생각이 엉뚱하게 소모된다. 경찰청장이 납치된 뒤 특수대원들이 여기저기 막 뛰어다니는데, 그 이유를 알려면 스쳐가는 대사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 다 알아듣고 쫓아가도 문제가 있다.

범인을 쫓아갔더니 실제 납치범은 목이 잘려 잔인하게 살해돼 있다, 범인은 더 잔인한 놈이고 목적도 단순하지가 않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전반 40분은 이런 식으로 범인에 대한 공포감을 증폭시켜가기를 의도한 구성이다. 그게 효과를 거두려면 범인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도 줘야 한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한 관객의 합리적 추리를, 영화가 합리적으로 배반할 때 공포심과 신비감이 커진다. <예스터데이>는 정보를 나눠주는 데 인색하다. 영화가 말해주길 기다리는 동안 총싸움이 현란하게, 그러나 너무 길게 펼쳐진다. 총탄에 콘트리트가 덩어리째 떨어져나가고 바추카포에 차량이 폭파되는 액션장면은, 전후 맥락이 잘 정돈된 상태에서 벌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야기 전달의 부족함이 후반부에서 이야기의 부족함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절대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필요한 이야기의 부족, 그러니까 풍요 속의 빈곤이다. 범인들은 전 국경수비대원들이고, 그 리더는 골리앗(최민수)이다. 골리앗은 어릴 때, DNA 조작을 통해 인간을 개조하는 국방부 비밀 프로젝트에 끌려가 인간병기로 키워졌다. 경찰청장 납치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은 골리앗의 복수극이었고, 거기에 석을 끌어들인 건 석이 골리앗의 DNA를 복제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기억이 지워진 석이 기억을 복원해가는 과정과 골리앗과 특수수사대원들의 싸움이 후반부를 끌고간다. 그러나 이 미래사회가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이전에 어떤 세력이, 어떤 가치관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는지, 골리앗을 비롯해 어떤 아이들이 어떻게 프로젝트에 끌려왔는지 설명이 없다. DNA 조작, 인간복제, 인간병기, 기억 내지 정체성의 상실 등 SF의 중요한 재료를 두루 가져왔지만, 각각의 재료를 다듬지 않은 채 버무려 놓는다. 한국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를 한눈 팔지 않고 밀고간 건 신선하지만, 소재만 전시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캐릭터 내부의 갈등이 별로 없는 <예스터데이>는 종반부에서 석을 죽일지 말지에 대한 골리앗의 갈등을 부각시킨다. 자기를 복제한 인간에 대한 양가적 감정과 그 비극성을 그리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걸 중요한 위치에 놓으려면 인간복제가 만연하고 있는 사회를 먼저 설정했어야 했다. 그래야 그 갈등이 보편성을 얻는다. DNA 조작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DNA 조작이나 인간복제는 아주 예외적으로, 그것도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채 일어난 일일 뿐이다. 골리앗의 갈등은 예외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골리앗은 제거되고, 자기 아들을 복제할 생각을 했던 석은 그걸 포기하고 아들을 화장함으로써 인간복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실천한다. 이런 식으로 균열을 봉합하는 건 SF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흉악범이 됐다가 마침내 제거되는, 흔한 시리얼 킬러 무비와 닮았다. SF는 좀처럼 마이너리티를 홀대하지 않는다. 시스템에 자기 정체성까지 빼앗겨버린 존재가 연대할 대상은 마이너리티뿐이기 때문이다.임범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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