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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2-06-25

미야자키 할아버지! 아직 거기 계셨군요...^^

■ Story

열살의 소녀 치히로, 그리고 식구들은 이사가던 중 길을 잘못들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치히로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가자고 조르지만 엄마, 아빠는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낯선 곳에 차려진 음식을 먹던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해버리고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을 만난다. 마을 온천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는 궂은 일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사람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는다. 한편, 온천장엔 밤이 되면 신들이 모여드는데 이름을 '센'으로 바꾼 치히로는 가마할아범, 린 등과 어울려 생활한다. 치히로는 자신을 돌봐준 하쿠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그를 돕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쿠가 목숨을 잃을 기미를 보이자 치히로는 죽음의 기차를 친구들과 함께 탈 것을 결심한다.

■ Review

참 낡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런 첫인상을 남긴다. 3D 애니메이션이 득세하는 시대에 이 작업은 시대착오로 보일수 있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일본 전통문화의 흔적이 배어있는 캐릭터들, 전형적인 판타지 구조. 어딜 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몇걸음 거리를 두고 있다. 컴퓨터 작업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속도감 있는 몇 장면에선 컴퓨터 작업의 흔적과 정확한 계산력이 돋보이는 구석도 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섹시하고 윤기나는, 그리고 게임을 닮은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는 요즘, 낡고 기이한 애니메이션이다.

첫인상엔 이유가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이다. 1970년대 <미래소년 코난> 등의 TV 애니메이션에서 <이웃집 토토로>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까지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눈팔지 않고, 한길을 걸어왔다. 그의 작업방식은 늘 같다. 수공업적 방식을 선호하고, 셀 애니메이션의 색감을 사랑하며 비행(飛行)과 유토피아의 모티브를 작품에 각인시킨다. “난 언제나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철학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몇십년 동안 되풀이했던 이야기다.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발언도 근래 들어 그가 즐겼던 엄포성 멘트다. 모든 건 같은 선로에 있고, 커다란 변화는 없다. 그런데 기묘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여전히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아놓는다. 우리 마음 속의 무언가를 움직여 놓는다.

사진설명

주인없는 가게에서 탐욕스레 음식을 먹던 치히로의 부모는 돼지로 변한다. 그리고 치히로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에 머물게 된 치히로가 구해야 하는 것은 부모님만이 아니다. 용이 된 하쿠가 위기에 처하자, 치히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애정이 싹튼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소녀 치히로의 모험담이다. 소녀는 극히 평범하고 눈에 띄는 구석이라곤 없다. 부모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랐다는 것 외엔. 아이의 부모는 주인 몰래 잔치상에 차려있던 음식을 먹고는 돼지로 변한다. 치히로는 부모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기 위해 고심한다. 동화와 민담에서 우리가 익히 만났던 이야기다. 교훈적인 이야기 아닌가, 싶은 편견을 허물어주는 건 재미있는 캐릭터다. 치히로가 일하게 된 온천장은 (우리 식으로 이해하자면) 정령들의 집합소. 온천장 입구를 지키는 개구리, 가면 쓴 귀신,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마녀에 이르기까지 진기한 캐릭터가 모습을 비춘다. 캐릭터들의 아기자기한 장기자랑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훈훈한 웃음으로 채워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본 적 있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선 <이웃집 토토로>에 나왔던 숯검댕이 캐릭터가 나온다. 후에 이름을 ‘센’으로 바꾸는 치히로와 하쿠의 우정과 사랑은 미야자키 감독이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귀를 기울이면>의 후속편 같다. 토착신앙의 영향권 내에 있는 일본적 판타지라는 점에선 <원령공주>, 그리고 어른들 몰래 정령 세계와 소통하는 아이의 이야기는 <이웃집 토토로>와 닮은 꼴이다. 다시 말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제까지 해왔던 일을 다른 모양새로 바꿔 솜씨좋게 주무른 형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래된 신념을 담는다.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이곳에선 필요없다”는 것이 온천장을 지배하는 모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돼지같은 동물로 변한다. 고전적인 노동 예찬론이다. 신도(神道)라는 전통신앙의 흔적도 있다. 치히로가 일하는 온천장엔 기이한 정령의 출입이 잦다. 심지어는 오물신이라는 존재도 등장해 몸에 묻은 오물을 온천물로 씻어내려고 한다. 자연 만물에 혼이 깃들어있다는 토착신앙의 믿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미즘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일본적 애니메이션이다.

사진설명

치히로가 파이프를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치히로는 가마할아범을 졸라 일자리를 얻는다. 여기서 치히로는 숯을 나르는 일을 하며 가마할아범을 돕는 숯검댕이(<이웃집 토토로>에 나왔던)들을 만난다.

얼굴없는 정령 가오나시는 황금으로 치히로를 꾀려 하지만 치히로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이 따뜻하고 신나는 모험의 끝자락에는 가오나시를 위한 해피엔딩도 준비되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고답적인 길을 밟는다. 애니메이션이 관객을 감동시키는 경로는 복잡하지 않다. 그중 하나는 움직임의 테크닉. 치히로는 소동극을 벌이다가 건물 바깥에 위치한 파이프를 타고 달린다. 아래는 캄캄절벽이다. 잰걸음으로 달려가지만 파이프는 곧 모양이 휘어버린다. 아이의 걸음은 더 빨라진다. 그리고는 앞에 버틴 벽에 폭 감싸이듯 부딪힌다. 유머감각이 배인 캐릭터 움직임으로 미야자키 감독은 부드러우면서 유연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이건 확실히 거장의 실력이다. 황금으로 자신을 꾀려는 어느 정령의 유혹에 치히로는 “난 받을 수 없어.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은 이게 아니야”라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화려함 대신, 소박함과 잘 드러나지 않음의 미학을 품고 있다. 마치 사랑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수 있지만 일단 내뱉고 나면 의미가 하찮아지듯. 미야자키 하야오는 불투명함이 가득한 애니메이션으로 관객들 마음의 온도를 슬며시 높여놓는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세련되고 힘있는 판타지”라는 평을 얻으며 금곰상을 수상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센과 치히로..> 배경, 다테모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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