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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돈을 아쉬워 마라
2002-07-03

영화 만드는 일이 참 어렵다. 아직 제대로 한편 만들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이 나올 정도라면 촬영과 개봉하는 과정까지 거친다면 오죽하랴 싶다. 영화제작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상해서 시나리오 쓰고 카메라 빌리고 배우 데려다 찍어서 극장에 내다 걸면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영화를 보고, 그러면 돈도 많이 벌게 되고… 뭐 이런 일이 절대 아니지 않은가. 영화 한편 만드는 데 프로듀서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집행하는 일이 무려 2만번이 넘는다는 말처럼 영화제작이란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기획에서부터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공정과 수십억원의 돈이 들어갔다가 회수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사람 몸의 피가 실핏줄을 따라 심장을 오가는 것에 견줄 만하다. 게다가 제작 공정은 자동화가 불가능해 수백명의 사람 손(사실은 머리)을 거쳐야 한다는 점 때문에 생산력에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게임이 안 된다. 이처럼 영화가 산업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태생적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기술력에 의지한 산업논리, 경제논리가 개입되면 소화불량이 뒤따르게 되고 결과의 부침이 커지는 건 필연적인 결과다. 장광설의 요지는 영화 만드는 일이 돈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쪽에 큰돈이 본격적으로 몰리기 시작한 대략 3년 전쯤부터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요리하는 투자자들을 적잖게 만났다. 대개 영화쪽에 투자를 하려고 하는데 자문을 좀 해달라는 사람들이었다. 영화쪽이 ‘물’이 좋다고들 하는데, 일하는 방식에 워낙 ‘구린내’가 나고 사람들이 당최 미덥지가 않아 망설여진다는 게 그들의 고민이었다. 돈냄새를 풍기기만 하면 ‘업자’들이 마치 불나비처럼 달려들어 청사진을 펼쳐놓는 통에 도리어 주춤거리게 된다고들 했다.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손’도 있고, 지금은 영화쪽에서 제법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당시만 해도 대놓고 그들에게 몇십억원씩을 수업료로 까먹으면서 배우든가 아니면 내가 시키대로만 하라고 오만을 부리기도 했다. 영화 몇편 대박 터뜨려서 목돈 챙겨볼 속셈이라면 일찌감치 딴 데 가서 알아봐라… 최소한 5년 뒤에 손익을 따지겠다는 자세로 길게 봐야 한다… 적어도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실무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합리적인 관리에 주력해라… 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런 훈수에 무릎을 치며 호응하던 사람들도 영화쪽에 투자를 시작하고나면 태도가 돌변했다. ‘우리야 돈만 대고 일은 영화쪽에 계신 분들이 하셔야…’라고 하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모니터랍시고 주말드라마 감상평 같은 천박한 주문을 해대고, 촬영용어 몇 마디 섞어가며 전문가 행세를 하곤 했다. 한때 대기업에서 발령받고 영화일을 시작했던 몇몇은 지금도 영화쪽 일을 하는 이유가 ‘영화만큼 만만한 일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별 성과도 못 내고 이런저런 뒷말만 낳고 물을 흐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결국 망신살이 뻗친 건 당연하고.

영화쪽에서 돈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느닷없는 일은 아니지만 예상보다는 상당히 앞당겨진 현상이다. 돈의 힘으로 뭘 해보려던 사람들은 동요하겠지만 큰 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최근에도 25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만든다는 사람을 만났고, 몇년 전에 했던 조언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빠지는 돈이 있으면 들어오는 돈도 있게 마련이다. 글이 선명하지 못해 오해의 여지도 있으나, 투자자나 제작자들을 비아냥대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영화쪽에 투자를 하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고,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제발 언론에서는 호들갑 좀 떨지 말기 바란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